요 나의 눈물

 

지난 해 2011년 12월, 마지막 한 주를 사이에 두고 여러 가지 일들이 연달아 계속 일어났다. 오랫동안 함께 일을 해왔던 간사님이 갑자기 사임을 한다는 소식. 비록 많이 낡기는 했지만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었던 티코가 사라진 일이었다. 한 동안 마음이 어렵고 힘들어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 시간이 빨리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공부를  끝나고 나오는데, K목사님께서 “눈길 조심하라”고 하시면서 평소와 다르게 문까지 나오시면서 기도를 해주셨다. 하지만 ‘뭐 별일 있으려고’라면서 도로에 들어섰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발이 점점 세게 날려 시야가 조금씩 흐려지는데, 앞에 차량 한 대가 보였다. 순간 당황하여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런데 눈길에 미끄러져 브레이크가 전혀 들지 않았다. “어, 어~ 어떡해!” 외마디 비명만 지를 뿐 속수무책이었다.

그 순간 꽝!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며 손발이 떨렸다. 앞 차량의 운전수가 차문을 열고 나오시더니만 대뜸 “보험처리 하시지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자 차종이 무엇인지 확인을 해보라고 하였다. “아저씨, 차종이 뭐예요.” “벤츠예요. 차 뺀 지 일주일 밖에 안됐는데…”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앞이 캄캄해졌다. 마치 모든 시간이 멈춰 버리고 나만을 향해서 쫓아오는 듯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매한 죄인을 깨우는 방망이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보험처리를 한 후 놀란 가슴으로 찌그러진 차를 가까스로 몰고 돌아오는데, 눈길로 인해 이곳저곳이 막혀 있었다. 차를 되돌려 다른 길로 돌아가는 차량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나도 돌아서 갈까?’라고 망설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지막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 했다. ‘언제까지 내 낯을 피해 요나처럼 도망만 다니려느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다시 유턴해서 돌아오라.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 있지 않으면 말라비틀어지듯 내 영혼도 나의 시간 속에 머물지 않으면 모든 시간이 멈춰 버린 것과 같다.’

여러 가지 사역으로 한 주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마음도 분주하고 몸도 고달프게 느껴졌다. 힘겹고 부담스러운 일보다는 좀 더 쉽고 편안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 생각이 점점 깊이 파고들더니만, 어느새 하나님의 낯을 피해 멀리 달아난 요나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새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머리로 계산기만 두들기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수지타산이 맞을까? 도리어 영적으로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충실한 일꾼인 마냥 “공동체 일을 열심히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를 하였다. 하지만 허울만 좋을 뿐 힘든 일은 뒤꽁무니를 뺀 채 무화과나무 잎으로 적당히 가린 채 살아가고 있었다.

‘주님 이곳이 좋사오니 이곳에서 초막을 짓겠나이다’라면서 잠쟁이 세 친구를(기독도가 만난 자만, 나타, 천박) 만나 벤치에 앉아 마냥 노닥거리고 있었다.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서는 그날, 홀라당 타버릴 지푸라기로 초막(草幕)을 짓고 있는 지도 모른 채 말이다. 마귀는 “다른 일들을 더 열심히 하면 돼! 걱정 마. 내가 도와줄 게”라면서 속살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나의 마음에 내키는 일만 하자 급격히 게을러지고 말았다. 이로 인해 숱한 시간들을 정욕의 배 밑창에서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요 근래 주님께서 이러한 어리석은 죄인을 깨우시기 위해 여러 가지 환경들을 통하여 계속 무언의 경고장을 보내셨다. 하지만 잠깐 눈을 껌뻑거리며 잠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너 웬 잠을 그리 자느냐 위험한 데서. 그러다가 너 등가죽이 거북이처럼 되겠다. 이제는 정신 좀 차리고 ‘나타’랑 작별을 고할 때도 되지 않았니?”라면서 흔들어 깨웠지만 그 소리마저 귀찮아졌다. 도리어 벤치에 몸을 바짝 붙이고 꾸벅꾸벅 졸면서 “무엇이 위험해. 내 일은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해”라면서 자만과 천박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이러다가 크게 혼쭐이 날 텐데’하면서도 여전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안락하고 편안한 벤치에서 잠쟁이 세 친구와 노닥거리다가 벤츠를 박고서야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뿔싸, 순간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후회한들 무엇 하리! “아무도 자기 때를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무자비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듯, 사람 역시 자기에게 닥치는 예기치 못한 불운의 덫에 걸릴 때가 있다”(전9:12).

정욕 가운데 푹 빠져 살아가던 요 나(我)를 하나님께서는 큰 방망이로 두들기며 흔들어 깨우셨다. 그제야 자다가 벌떡 일어나 깜짝 놀라며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일이 잘 해결되게 해주세요. 다시는 거짓되고 세상의 헛된 것을 따르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구더기만도 못한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세요. 다시는 제 고집대로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주님, 제발 숨어 계시지만 마시고 저 좀 살려주세요.”

어리석게도 이 죄인은 물질적인 손해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심하게 마음고생을 한 뒤에야 비로소 그동안 흘리지 않았던 통한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배가 파손 되어 구멍이 나서 창수가 흘러 들어오고 큰 고통을 겪고 나서야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삶 가운데 수많은 폭풍우를 만나게 하신다. 이는 요 나(我)인 자아를 완전히 가루가 되기까지 깨트리시기 위함이다. 마치 믹서에 넣어 모든 자아가 분쇄되기까지 연단의 도가니에 집어넣고 계속 갈으신다. 때론 숨이 탁탁 막히고 아무런 희망도 없어 보이는 스올의 뱃속으로 집어 던지시지만 그곳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그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 즉 광야연단과정이 없다면 결코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부대껴도 조금만 힘들어도 조금만 피곤해도 무지한 이 죄인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것이 족쇄처럼 느껴져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낯을 피한 삶은 무의미하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더라도, 아무리 동분서주 뛰어다녀도, 하나님의 뜻과 어긋난 일은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폐차처럼 멈추어 버린 시간들과 같다.

12시, 마지막 때를 알리는 종이 울려 퍼지고 있다. 올 한 해는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자. 어떠한 큰 아픔과 손해와 희생과 고통을 치루더라도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과감하게 유턴하자. 곧 전무후무한 대환난의 바람이 불어 닥칠 것이다. 더 이상 머물 거릴 때가 아니다. 홀연히 재앙이 임하기 전에 어서 빨리 환난의 때를, 주님의 오심을 깨어서 준비하자.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