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속의 진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말하기를 교회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인위적으로 미소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다들 그렇게 하고 있어서 자기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살짝 웃음을 머금고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표정하거나 표정이 어두우면 시험 중에 있는 것처럼 보이니, 다들 만면에 웃음을 띠고 환하게 인사하고 교제하는 모습이 우리에겐 참 익숙한 풍경입니다. 오래토록 교회생활을 해온지라 진심인지 가짜인지도 잘 구분이 안 되는 외식적인 신앙의 틀을 저마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는 활짝 웃고 있는 하회탈 속에 정작 실제의 얼굴, 진실은 숨긴 채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보다 굴절된 사람의 시선과 평가가 더 두려워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면을 썼다가 벗습니다. 때로는 그 가면에 너무 익숙해져 자신의 얼굴과 가면이 동일시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면을 몇 개씩 아니 수십 개씩 쓸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명품 매장에나 있을 법한 고가의 가면을 쓸 때도 있습니다.

직분과 체면의 가면을 쓴 채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사랑 없이 가식적으로 교제를 하고, 진심 없는 찬양과 기도를 드리고, 믿음이 좋은 양 은근슬쩍 거드름을 피우고, 영성생활을 잘 하는 양 겉모습만 하얀 백조일 때도 있고, 선한 명분을 내세우며 입술에 하얀 우유를 바를 때도 참으로 많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어두움에 감춰진 것과 마음의 뜻을 다 나타낸다고 하셨는데, 아무리 두꺼운 가면을 쓴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명품 가면을 쓴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가면은 가면일 뿐 그 어떤 것도 거룩하신 주님 앞에서는 진실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감추지 않고 어린 아이들처럼 있는 그대로 솔직한 모습으로 진실하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설 수는 없을까요. 물론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고자 자기를 부인하는 태도의 밝은 모습은 외식이 아닙니다. 항상 마음 중심이 중요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를 이기기 위해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다른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려 하는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책망 받은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외식적인 신앙이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눅11:43-44).

아무리 아름다운 가면을 쓰더라도 결코 그것은 우리의 얼굴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이 있는 것처럼 그럴싸하게 포장하지만, 속에는 각양 탐심과 세상의 오물로 가득 찬 가짜 크리스천은 아니었는지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지만 형식과 절차에 연연하다 보니 은혜보다는 규모와 시스템을 먼저 살피게 되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주인 없는 잔치인 예배를 진심 없는 마음으로 지루하고 따분하게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목청은 높였지만, 정작 기회만 주어지면 이 땅에서 자녀의 출세, 물질의 복, 헛된 명예에 연연해하지는 않았는지요. 아주 작은 일을 하고도 마음이 우쭐해져 이웃들의 인사를 받으려고 은근슬쩍 자신이 한 일들을 흘리면서 다니지는 않았는지요. 우리의 모습은 회칠한 무덤과 같은 바리새인과 닮은꼴인 듯합니다.

많은 무리 속에서 은닉하는 신앙으로 예배가 끝나면 자취를 감추기에 바쁘고, 홀연히 왔다 홀연히 가는,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세상에 있어 영적으로 위태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동구 밖 신앙인들도 있습니다. 어떤 누구도 실족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그것만 치중하다 보니 사람 중심의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있습니다.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있고 교만한 공작새가 꽁지를 활짝 펴건만, 겉으로는 양의 탈을 쓰고 겸손의 깃털로 위장한 채 이웃의 것을 탐할 때도 있습니다. 아닌 척하면서도 직분을 탐하고, 남들보다 좀 더 돋보이는 일을 탐하고, 하늘의 칭찬보다 사람의 칭찬을 탐하니 말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 꼭꼭 숨겨둔 미움과 시기, 불편한 마음, 교만, 욕심을 감추기 위해 쓴 모든 가면들, 허례와 위선으로 쌓은 모든 행실들은 다 불에 타버릴 공력, 상 받지 못할 열매이기에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겉을 화려한 옷으로 가리고 치장을 한들, 화려한 색조로 페인트칠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은 육체는 썩어 없어질 만물의 찌끼에 불과한 것이거늘 말입니다. 속사람을 가꾸는 데는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헛된 허영과 허례와 위선에 깊이 빠져 있는 이 악한 세대를 보시고 주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요.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은 잘도 하지만, 육체의 가면을 벗는 그날에 한쪽으로 치켜 올라간 비뚤어진 입술, 일그러진 얼굴과 오물로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서 보실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두렵고 떨립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을 셈하는 그날, 가면 속에 숨겨진 우리의 모든 진실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모든 가면을 벗고 우리의 입으로 직고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 우리 주님은 겉모습을 단장하기보다는 우리가 속사람을 단장하길 원하십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4:16). 안을 닦는 일에 더욱 더 힘써야겠습니다. 봄 햇살이 가득한 이날, 모든 체면도 명예도 재물도 다 포기하고, 얍복강 가에서 허례와 위선의 가면을 벗어버린 채 처절하게 울부짖던 야곱을 만나고 싶습니다. 성령의 맑은 물로 닦고 또 닦아 생명과 진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