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와 황금 알

 

흔히들 무슨 큰일이 생기면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패러다임(Paradigm)이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말한다. 즉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시각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각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는’ 것이다. 패러다임이란 어떤 것 자체가 아니고, 그것에 관한 의견이나 해석이다. 낡은 패러다임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이런 우화가 소개되어 있다. 옛날 어떤 가난한 농부가 어느 날 자기가 기르는 거위 우리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알을 발견했다. 처음에 농부는 이것을 일종의 속임수라고 생각했다. 그가 거위알을 치워버리려고 할 때, 그 알을 일단 조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위알은 진짜 순금이었다. 농부는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음 날도 거위가 황금알을 낳자 농부는 자신의 행운을 더욱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농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우리로 달려가서 또 다른 황금알을 찾아냈다. 그 결과 농부는 놀라울 만큼 굉장한 부자가 되었다.

그는 재산이 늘어감에 따라 점차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성급해졌다. 마침내 농부는 매일 하나씩 낳는 황금알을 기다릴 수 없어서 거위를 죽여 한꺼번에 모든 황금알을 얻고자 작정했다. 그러나 그가 막상 거위를 죽이고 배를 갈랐을 때, 뱃속에 황금알은 한 개도 없었다. 이제 농부는 더 이상 황금알을 얻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농부는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여 버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농부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이 우화에서 보여주듯이 진정한 효과성이란 다음의 두 가지 요소의 함수관계에서 나온다. 첫째는 생산되어지는 것 즉 황금알이고, 둘째는 생산하는 능력인 거위이다.

만일 우리가 거위를 무시하고 황금알에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생산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황금알을 얻으려는 목표 없이 단지 거위만을 돌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활하고 또 거위를 키우는데 필요한 것(동기부여)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효과성은 생산과 생산능력 사이의 균형에서 나온다. 이 균형은 우리의 생활에 매우 중요한 원리를 제공한다.

가령 딸아이가 자기 방을 깨끗이 정리정돈 하기를 원하는 엄마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때 정리된 방은 생산 즉 결과인 황금알에 해당된다. 이를 위해 딸아이가 자기 방을 깨끗이 치우는 것을 원한다면 이것이 생산능력(거위)에 해당된다. 딸아이야말로 황금알을 낳은 거위에 해당하는 생산능력이요 자산이다.

만약 엄마가 ‘생산과 생산능력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면, 딸은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이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을 깨끗이 청소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방 청소를 자기의무로 알고 있고, 또 의무를 완수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딸아이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자산이다.

그러나 이 엄마의 패러다임(사고방식, 관점)이 생산물 즉 방을 깨끗이 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다면, 엄마는 딸이 자기 방을 깨끗이 하도록 잔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엄마는 원하는 황금알을 얻기 위해 청소하지 않는 딸에게 고함치며 위협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 딸아이는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몇 번은 방청소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잔소리가 결과적으로 거위의 건강과 행복을 점차 약화시키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딸아이는 청소는커녕 엄마에게 신경질과 원망, 불평을 늘어놓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실제 이런 일이 우리의 주변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과 생산능력의 균형 관계를 잘 음미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닮은 의사로서 유명한 장기려 박사님은 그의 나이 30세에 경성의전을 떠나 평양 기독병원의 외과과장이 되었다. 그 무렵 그의 성실한 연구도 인정을 받아 마침 맹장염을 일으키는 세균에 관한 연구로 나고야 대학의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를 가진 의사는 혼자뿐인지라, 앤더슨 원장이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그에게 원장직을 물려주었다. 외과과장으로 근무한지 10개월 만이었다.

비록 박사 학위가 있으나 나이도 적은 데다, 의사의 경력도 짧고, 부임해 온지 얼마 안 된 그가 원장직을 맡게 되자, 세브란스의전 출신의 의사들이 시기와 모함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장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하여 의견충돌이 잦으며, 의사들을 경성의전 출신들로 교체하려 하고, 신사참배를 조장한다는 루머였다.

어느 날 놀러 온 경성의전 선배에게 좋은 내과 의사가 있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을 누가 엿듣고는 살을 덧붙인 것이다. 급히 소집된 이사회에서는 도로 외과과장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이로 인해 월급도 삭감되었고, 원장 사택마저도 비우게 되어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도 억울하게 누명을 쓰시고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묵묵히 인내하였다. 의사의 사명은 환자를 올바르게 진료하는데 있지, 어떤 직책과 무관한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런 소문이 퍼지자 다른 병원 몇 군데에서 원장으로 오라는 요청도 받았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에 충실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은 환자의 치료뿐만 아니라 의학연구에도 많은 성과를 거두게 하셨다. 1943년, 당시 불가능한 간암을 수술하여 최초로 성공하자 의학계는 깜짝 놀랐다. 시간이 지나자 결국 그를 시기하던 세브란스 출신의 의사들은 오직 인술의 길로 말없이 걸어가는 그에게 점점 고개를 숙였고, 개인적인 문제도 의논해 올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당연히 원장으로 복직되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았지만, 대적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에 충실했다. 동료들인데 함께 치고받고 하면 피차간에 덕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게 지혜라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인 황금알 즉 지위, 대가, 보수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가? 무엇이 우선인지 덕과 지혜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그 결과를 창출해내는 주체를 배려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거위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황금알을 낳든지 말든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계속적으로 거위를 돌볼 수 있는 동기부여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생산과 생산능력 간에 균형이 필요하다. 이것을 어떤 분은 ‘덕과 지혜’라고 표현하기도 하셨다. 우리에게는 황금알도 필요하고 또 황금알을 계속 낳는 거위도 건강해야 한다. 황금알과 거위는 불과분의 관계다. 기존의 패러다임이 황금알 중심, 자기중심이라면 이제 우리는 ‘덕과 지혜’라는 새로운 하나님 중심의 패러다임을 가져야 한다. 거위가 황금알을 잘 낳을 수 있도록 잘 돌보는 덕과 지혜가 아주 많이 필요하다. 장기려 박사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