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과 젖

단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사탕을 유독 좋아합니다. 조카 역시 사탕을 좋아하여 마트에 가면 늘 사탕을 집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원하는 사탕을 사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몸에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기에게 필요한 젖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에게 아무리 젖이 좋다고 해도 한 돌이 지나면 엄마는 젖을 뗍니다. 젖만으로는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밥과 반찬을 먹어야 아이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면역력이 길러져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아이도 알게 됩니다. 젖으로는 충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어느 부모님의 마음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가 바른 신앙 안에서 단계에 맞추어 잘 성장하길 바라십니다. 늘 사탕과 젖만을 찾는 어린아이의 신앙에 멈춰있지 않길 바라실 것입니다. 그런데 달콤함만을 좇아가는 우리는 주님께 늘 기도합니다. “주님! 오늘도 저에게 달콤함을 충분히 채워주세요. 그래야만 즐겁습니다. 제가 즐겁고 기뻐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럼 주님께서는 “얘야, 단것만 먹으면 건강에 나쁘니까 입에는 조금 쓰지만 매운 것도 좀 맛보지 않으련?”하고 물으십니다. 그럼 우리는 당장에 대답합니다. “주님! 저를 사랑하지 않으세요? 왜 저에게 이렇게 쓰고 맵고 단단한 음식만 주시려고 하세요. 저는 달콤한 주님의 사랑만을 원해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골고루 섭취하여 그것을 잘 씹어 소화시켜 장성한 믿음으로 성장하길 바라십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각자의 취향대로 말씀을 걸러내어 내가 싫은 것은 뱉어버리고, 내 입에 즐거움만을 찾아 받아먹을 때가 많습니다.

혹 머리는 크나 몸은 아이로 멈춰 있는 기형의 모습으로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갓난아이마냥 이러 저리 뒤뚱거리며 “주님, 저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옵소서”라고 외쳐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쩌다 은혜를 받으면 “주님, 저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용서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그럼 주님께서도 이번 기회를 통하여 성장하길 바라시는 마음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바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방법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붙여 주기도 하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이나 손해 보는 환경 가운데 우리를 집어넣으십니다.

그래서 원수까지도 온전히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점점 만들어 가십니다. 연단의 풀무불 속에 넣으셔서 영혼을 단련시키십니다. 영혼의 성장은 결코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하더라도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몫입니다. 연단을 통하여 주님을 더 확실히 체험해 갈 때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가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주님 올해는 좋은 날씨만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한해 농사가 끝나고 수확을 했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모두 쭉정이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농부가 하나님께 원망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이것보세요. 알곡은 없고 쭉정이 밖에 없네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비와 바람을 구하지 않았다”라고 답하셨습니다.

곡식이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결코 좋은 날씨만으로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햇볕과 구름, 바람과 적당한 비 그리고 서리가 내려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야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아무리 옥토라 하더라도 좋은 날씨만 계속 된다면 결국에는 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비옥하고 좋은 땅이 되길 바라신다면, 입에 달콤한 음식만 찾을 것이 아니라 바람과 눈과 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대저 젖은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이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