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2학년이 된 아들이 있다. 1학년 때까지 공부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성적도 최하위권을 맴돌던 아이였다. 그런데 새학기가 되면서부터 공부를 하기 시작하는데 엄마로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심을 낸다. 내심 공부에 대해서는 아예 포기한 마음도 있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바닥에서 하늘로 뛰어 올라가려는 듯한 아이의 비상에 많은 것들을 깨닫는 중이다. 하나님의 뜻을 지켜보면서 말이다.

『하나님께 앙갚음한 사나이』로 알려진 존 그린 한닝은 어렸을 때부터 불과 같은 성격을 지녀서 싸움을 좋아하며 반드시 앙갚음을 하려고 했다. 16세 되던 해 아버지와 싸우고는 그 앙갚음으로 아버지의 담배창고에 불을 지르고 가출했다. 리오그란데 강변으로 도망쳐 카우보이 생활을 오래하면서 거친 서부의 사나이가 된다.

9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어느 날 트라피스트 수사들의 삶을 본 후 큰 감동과 매료를 느껴 수사가 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의 강한 기질과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아버지와 약혼녀 메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이에 앙갚음을 하기 위해 결혼을 포기하고 36세에 트라피스트 봉쇄수도원에 입회한다. 수도원 생활도 불과 같은 성격을 바꿀 수는 없었다. 메리 요아킴으로 이름을 바꾼 그는 자기를 괴롭히는 수사를 향해 건초갈퀴를 휘둘러 앙갚음을 하려 하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깬 접시 값을 보상하라는 수도원장에게 덤벼들기도 한다.

40세의 어느 날, 수염을 깎아 주던 그에게 수도원장이 “자네는 거만해. 언제쯤 겸손을 배울 것인가.”라고 주의를 주자 면도칼을 휘두르며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까지 베어버리겠다.”고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그러나 곧 수도원장을 찾아가 무릎 꿇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부끄럽습니다. 저의 기질, 저의 오만, 격렬한 피가 저를 망치고 말았습니다.” 하고 용서를 빈다.

그리고는 자신에게 거칠고 교만한 성격을 주신 하나님이야말로 앙갚음과 복수를 해야 할 최고의 대상임을 깨닫고 “이제야말로 하나님께 앙갚음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내 주 예수여, 저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차례입니다. 이제는 당신이 저를 십자가에 매달아주십시오.” 하고 기도한다. 결국 하나님의 은총에 순종하면서 겸손하고 가장 온순한 성인이 되었다.

강한 기질이 하루아침에 덕스럽게 바뀌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은혜만으로 강한 집념이 자동적으로 덕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강한 집념의 은혜와 그 은혜에 대한 인간의 협력이 있어야만 덕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효과를 얻거나 충만케 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다. 미약한 인간은 그 자유 의지에 따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선물인 은총을 영광으로 돌릴 수도 있고 전능하신 분의 능력을 헛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초자연적인 공로가 되는 것은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작용할 때 되는 것이다. 은총 없이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인간의 협력 없이 은총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거의 마음에서 포기하다시피 했던 아이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에 요아킴 수사님의 앙갚음이 떠올랐던 것은 대견한 마음에서 비롯된 부모의 흐뭇함이었다.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향해 불같은 마음으로 쏟아 붓는 아이의 열정은 하나님께로 갔던 요아킴 수도사와 어쩌면 흡사하다고 느껴졌다.

‘저렇게 달려가면 되겠구나. 포기하면 안 되겠구나. 주님도 내게 그러시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아주 조그만 것도 내키지 않으면 하기 싫고, 금세 포기하고 절망하는 나였다. 주님은 오직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데, 나는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보며, 내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님께서도 내심 포기하고 싶으신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과 인내를 주님께 드릴 때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셔서(롬 8:2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화의 길로 도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신다. 다시 우리의 선한 싸움을 위해 달려가야겠다. 훌쩍 뛰어올라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가야겠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우린 뛰어올라서 훨훨 날아오를 수도 있다. 드높으신 주님의 자비와 사랑 앞으로….

장봉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