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흐르는 물이라면


냇물 가에 앉아 흐르는 시냇물에  글씨를 씁니다

아무리 손가락을 물속에  깊숙이 넣고 써 보아도

흐르는 물에는 글자를 새길 수가 없습니다

흔적까지 지우며 흘러가는 물을 보며

문득 우리 마음도 흐르는 물 같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던져지는 어떤 냉정한 눈빛에도,

멸기에 찬 어떤 비아냥거림에도,

힐끗거리는 어떤 험한 표정이나 어떤 모함 어린 비판에도,

아무런 자국이 남겨지지  않는 물 같은 당신의 마음처럼,

우리 마음도 흐르는 물 같다면  좋겠습니다.


냇물 가에 앉아 흐르는 시냇물을 바라봅니다.

아무리  오랜 세월을 흘러도 변하지 않는 초연함으로,

아무리 돌멩이가 막아도 부딪히지 않는 부드러움으로,

아무리 틈이 많아도 그  빈자리를 채우는 풍요로움으로,

아무리 다른 틀에 담겨도

자신의 모양을 고집하지 않는 겸손으로,

그렇게 감싸며 흐르는 물을 보면서

우리 마음도 흐르는 물 같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저께나 오늘이나 한결같은 당신의 초연한 마음처럼,

덜 갈린 마음의 무거운 돌덩이 녹이시는

당신의 부드러운 마음처럼,

빈틈  빈자리마다  드러나는 허물 채우시는

당신의 풍요로운 마음처럼,

어떤 마음자리에도 아무 틀 없이 드시는

당신의 차별 없는 마음처럼,

그렇게 낮은 데로 임하시는 물 같은

당신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 마음도 겸손하게

흐르는 물 같다면   좋겠습니다.


생명이 있기 위해서는 흐름이 멈춘 채 괴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솟아나는 샘물이 시냇물을 끊임없이 흐르게 만들듯이,

영혼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산 샘물이 늘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영생으로 인도 하기 위해 우리 속에서 생수를 계속 쏟아내어

남을 시들게 하는 이기심,

남에게 생채기를 내는 질투심,

남을 가시처럼 찌르는 교만,

모두 쓸어버리고 흐르게 하는 생수의 샘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흐르는 물에는 자국을 남길 수 없습니다.

너무 금방 아물어 자국이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물에는 아무 것도 새길 수 없습니다

칼로 새겨도 아무렇지도 않게 합쳐져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흐르는 물에는 그 무엇도  숨길 수 없습니다

흐르는 물살은 떠내려 보내지

그 무엇도 가라앉게 하지 않을 것이기에


오늘도 물 같은 당신의 마음 닮고 싶어

시냇물 가에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 살아남는 이들" 즁에서.  정혜경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