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교만의 껍질을 벗겨내심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도 오만과 교만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에 섬기던 교회의 예배는 1, 2부가 있었다. 1부 예배에는 성가대가 서지 않고 솔로로 찬양을 했다. 4명을 정해놓고 돌아가면서 하는데, 늘 하던 찬양곡이라 연습 없이 1부 예배를 섰던 어느 날이었다. 피아노 반주는 계속되는데 악보가 하얗게 아무런 글씨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가 겨우 찬양은 시작되었고 나는 떨기 시작했다. 목사님조차도 당황하는 것 같았다. 겨우 찬양을 마쳤는데 마음속에서 ‘네가 그렇게 잘났니? 네가 나를 위해 찬양을 드린다고 하면서 아무런 연습도 없이 준비되지 않는 찬양을 하려고 들다니, 나는 준비되지 않은 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 체험 이후에는 실력도 없지만 꼭 준비된 찬양을 하게 되었다.

신학교 3학년을 마치자 나를 위해 기도해주시던 목사님께서 전도사로 오라는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내가 전도사는 해서 무얼 해. 나는 졸업만 하고 다시 사업을 시작 할 텐데…’하고 거절을 하였다. 그러자 목사님께서는 그냥 와서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셔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승낙을 하고 교회를 옮겼다.

어설프지만 전도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목사님께서는 나이가 많으니까, 수요일 설교를 하라고 단을 내어 주셨다. 밤을 새워가며 설교준비를 하면서 열심을 내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준비하면서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목사님께서는 “나이 먹고 전도사 생활하기 힘들지? 그러니까 잘 나갈 때 하나님을 찾아왔으면 좀 좋아?” 하고 웃으셨다. 이제 주일 오후까지 맡아서 하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나님은 실수와 그릇된 오해를 통해 나의 오만과 교만의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계셨다.

갈등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능하신 손길

2009년 가을 부흥회 때의 일이다. 강사 목사님이 기도를 하시던 중 갑자기 “여기 목회 일을 안 하고 사업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기도하고 계신분이 있다고 하는데 누구십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손을 들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조금 후에 기도를 받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부터 꿈에 부풀어 신학원만 졸업하면 내겐 사업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찰나 면소재지인 황간에서 주유소를 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어 사업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래도 유학가 있는 딸에게도 학비를 보내줄 수 있다는 희망에 마음이 요동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교회생활이 즐겁고 주일 설교준비를 하는 그 시간이 신이 났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새벽기도와 자정기도 때마다 딸아이의 학비를 간구했다.

이제 6월말까지 학비를 보내지 않으면 딸아이는 귀국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다. 자식이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말씀이 부딪혀 왔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다른 것으로는 하나님께 떼를 써보지 않았지만, 그러나 자식 문제만은 달랐다. 아무리 어려워도 돈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이인데, 딸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돈 안 되지?” “그래. 어떻게 하냐? 아빠도 이제는 한계가 온 것 같은데 정리하고 나와야 되겠다. 미안하구나.” “아빠! 괜찮아. 내가 가서 1년 벌어서 다시 나오지 뭐.” 풀이 죽은 아이의 목소리에 마음이 아팠다.

몇 날을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으면 목이 메어서 기도를 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딸아이가 한국으로 나와 학비를 벌어서 다시 학업을 마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성실한 딸아이는 현지에서도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쓰고, 먹고 사는 일까지 스스로 해결을 하였다. 한국에서도 학비를 벌기 위해 1년 동안을 하루에 세군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목표한 학비를 다 마련해 놓고 다시 유학을 떠날 때는 필요 경비 외에 나머지 돈을 편지 봉투에 넣어놓고 “열심히 살자!”는 글을 적어놓고 혼자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착한아이였다. 떠난 후에 편지를 보며 나는 아픈 현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었다. 그러한 아이였기에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다시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만이 불일 듯 일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아이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가 밝았다. “아빠! 나 안 들어가도 돼, 여기에서 학비를 대어 준다는 사람이 생겼어.” 놀라움과 동시에 혹시나 나쁜 곳으로 빠지는 것은 아닌지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나! 멜버른에서 알바 했던 곳 사장님이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대준다고 벌어서 갚으래. 그리고 또 하나는 중국 친구 있잖아? 내가 이제 한국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했어. 그랬더니 친구가 엄마하고 상의를 한 모양이야. 그래서 그 친구 엄마가 나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다 대준다고 가지 말라고 해. 또 하나는 권 선생님이 학비 대준다고 가지 말라고 해. 그런데 어느 사람 돈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국내도 아닌 외국에서 일어나기 힘든 기적을 하나님은 일으키셨다.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믿음가운데 발을 내딛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미련한 나에게 주님의 손길을 펴셨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허종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