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

인내심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중국 사람을 돼지우리에 들어가게 했다고 합니다. 제일 먼저 튀어나온 사람은 한국 사람이었고, 얼마 후에 일본 사람이 뛰쳐나왔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곧바로 중국 사람이 뛰쳐나올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 중국 사람은 안 나오고 돼지가 먼저 뛰쳐나왔다고 합니다. 중국 사람들의 인내심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중국 사람들은 진득하고, 여유가 있고, 인내심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즐겨 쓰는 말이 ‘만만디’ 입니다. 우리말로 ‘천천히’라는 뜻입니다. 무엇이든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만만디’의 여유가 중국 사람들의 민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의 대표적인 민족성은 ‘빨리 빨리’의 조급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무슨 일이든지 진득하게 하지 못하고 서둘러서 끝내려는 조급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10년, 15년 걸려 만드는 큰 다리를 우리는 2-3년 만에 만들어 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내 영혼의 조급함이 영혼성장을 더디게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귀는 우리가 일상생활로 분주하게 만들어 주님을 주목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도 잠시, 기쁨도 잠시, 생활의 굴레 속에서 고민하고 염려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수법입니다.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문제, 아이들 교육 등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에서 삶에 대한 근심 걱정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소망과 새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 추억해 보면 누구에게나 마음 아프고 괴로웠던 일들이 있습니다. 영혼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던 사건들을 그냥 덮어버리고 내면 깊은 곳에 간직한 채 오랜 세월이 흐릅니다. 그 고통과 두려움의 씨앗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의 분주함과 조급함 그리고 포악함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공포와 불안함은 일에 대한 열정으로 둔갑하여 자신을 감춥니다. 쉽게 가족들에게 짜증을 잘 내고, 화를 내는 일이 빈번해집니다. 환경을 통해 배후에서 마귀가 자극하면 화를 내는 도를 넘어서서 광패를 부리기도 합니다. 마음에 두려움과 고통의 씨앗이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내면을 성찰하면서, 그 고통의 뿌리들을 없애버려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후딱 후딱, 속전속결로 하다보면 일을 건성건성하게 됩니다. 또 때에 임박해서 빨리하면 되지 하는 맘으로 일을 미루게 되어 나태해지게 됩니다. 단시간 내에 무슨 일을 마치려 하니 속이 복잡하고 조밀해집니다.

빠르지 않으면 둔하고 미련하게 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내에서의 조급함이 물량주의로 치닫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치중하기 쉬운 것입니다. 예배도 1부, 2부, 3부 대충 후딱 후딱 드리고 세상에 묻혀 교회에서의 모습과는 다른 이중적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기도응답도 즉각즉각 해 주시지 않으면 기도의 열정을 스스로 꺼뜨리고 맙니다.

이제는 조급함을 고치면서 내면의 성숙함으로 나가야할 때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를 대비하여 순간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내면의 욕망으로 인한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영적투쟁을 하여야 합니다.

영혼의 기틀을 단단하고 견고하게 다지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영성을 배워야 함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나태함과는 다른 느긋하고 여유가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조급하면 마음도 좁아집니다. 많은 일로 인하여 분주하던 마르다가 불평불만을 쏟으며 예수님 곁에 머물고 있던 마리아를 질타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마음이 좁아지면 영혼도 힘을 잃고 근심 걱정이 산더미처럼 불어납니다.

그러나 급욕을 버리고 인내를 하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가지게 됩니다(고후6:9-13).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약5:10). 조급함은 잠깐의 부귀는 누릴 수 있지만, 인내는 내세의 영광을 가져다줍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안겨줄 것처럼 마음에 조급함을 불러일으키는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속지 맙시다.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진정한 평화는 단시일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 40년을 통하여 3차례의 큰 시험의 불을 통과한 후 마음과 행실이 정결해져야만 합니다. 천년을 하루같이 한결 같은 마음으로 오래 참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본받읍시다. 오늘의 인내가 내일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