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꿈을 꾸는 교회

실로암 교회에 처음 와서 게시판을 꾸미는데 “꿈꾸는 교회”라는 문구가 가슴에서 내내 떠나질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감이라는 생각이 들어 게시판 맨 꼭대기에 ‘꿈꾸는 실로암 교회’ 라는 문구를 꾸며 넣었습니다. 서로 말은 안 했지만 설립기념예배를 드리면서 각자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크게 부흥되고 성도님들도 많아지고 교회가 활성화 되어서 할 수만 있다면 큰 규모는 아니더라도 반듯한 건물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교회로 발전하는 꿈 말입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말이 있듯이 같은 곳,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과 나는 다른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유형의 교회가 좀 더 발전하고 흥황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성전”(고전3:16)인 저의 심령이 좀 더 정결해지고 성장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엡1:2)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유형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과 기관으로써의 기능과 더불어 그 안에 가라지도 섞여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의 집합체를 의미하지만, 무형교회는 천국에 들어갈 알곡 성도들로만 구성된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한 교회의 외적인 성장보다는 개개인의 영적 성장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있어야 가정도 있고 교회도 있듯이, 한 개체가 건강하고 성전으로써의 기능을 잘 발휘할 때 가정도 교회도 발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원리입니다.

어떤 분들은 유명한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큰 교회에 출석하기 때문에 마치 나의 성전이 잘 지어져 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기도 합니다. 너무나 작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요.

교회가 양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면서 달려가다 보면 개개인의 영성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개개인의 영성이 무너지게 되면 그 교회가 겉으로 보기엔 성장한듯 하지만, 내부가 약하니 서서히 붕괴되는 위험요소를 안게 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개인의 내적인 부흥과 성장을 위해 교회가 존립할 때, 그 교회는 건강하고 튼튼한 교회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 사업은 영적으로 높이 성장하신 장성한 겨자나무들을 통해 일구어 나가셨음을 볼 때에, 개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곧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예배의 흥미롭고 다채로운 프로그램, 음악, 건축미, 교인 사이의 우정이 넘치는 사교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다. 과연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성도님들의 영혼을 위한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 속에서 도리어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세속화되어가고, 정작 중요한 자신의 영혼을 돌볼 겨를은 없다는 것이지요. 합력하여 공동의 영적인 사업도 추진해야 하겠지만, 개개인의 영혼을 돌볼 수 있도록 마음과 시간의 여유도 안배해 주어야 하는 것이 교회의 마땅한 역할입니다.

일을 주인삼아 달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일이 없을 때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 같은 느낌을 느껴보셨는지요. 주님은 일 보다는 내 개인의 영성을 키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성을 살리는 길은 자기 내면생활의 깊이를 파고드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생활과 성경읽기, 영적 독서, 절제생활 등 외적행실뿐만 아니라 내면을 닦아가는 일에 매진하여 영혼이 살찌우고 성장해 나가는 것을 주님은 무엇보다도 꿈꾸고 계십니다.

부와 사치로 중세 교회가 극도로 세속화되어갈 때 하나님은 청빈의 사도, 프랜시스를 세워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셨습니다. 비록 설교는 어눌했지만, 향락과 사치로 찌든 아르스의 교회를 비안네 사제는 엄격한 절제와 회개의 눈물로 깨웠습니다. “오, 주님! 저로 하여금 물질과 명예와 영광이 내 앞을 가리지 말게 하옵소서. 나의 혼을 빼내시고 예수님의 혼을 넣어 나로 아주 미치게 하소서.”

나로 인해 주님의 영광이 가려질까 노심초사 기도하고 경계하며 절제하던 목회자가 그리운 시대가 요즘입니다. 교회마저 세상 기업들처럼 세습을 하고, 자기들만의 영역을 구분 짓듯 지 교회만의 수련원이나 교회묘지도 만듭니다. 내 교회가 제일인 세상이 되어 이기적이고 독선적입니다. 정작 주님의 방법과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주님을 외치는 모순을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화려한 교회건물과 교세만 자랑하는 오늘날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교회에 나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화려하고 크고 웅장한 교회 건물을 보려고 나왔더냐.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고 책망하지 않으실까 심히도 두렵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이 심히도 가까운 이 때에 교회 공동체가 무엇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 거룩한 내면의 성전을 이루어가도록 힘써야겠습니다(엡2:21). 교회 안에 다시금 영성의 바람이 불어오길, 거룩한 꿈을 안고 오늘도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