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성숙해지는 조심성
지난 3월부터 집안 곳곳의 공사가 한 참 진행 중이다. 지금은 시멘트 콘크리트를 붓고 단단하게 굳히는 작업을 위해 두 주간 공사를 잠시 멈춘 상태이다. 날씨가 좋고 따뜻하면 한 주간으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총책임자 목사님은 안전함과 견고함을 위해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해 가신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많이 지치고 힘이 드실 텐데도 항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신다. 자매들 중에서도 힘에 지나도록 봉사를 하는 분들도 계시고, 심지어 막내 그룹에 속하는 몇 몇의 자매들도 공사와 식사 보조 도우미를 오가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섬기고 있다. 나는 체력이 약하다고 엄살도 살금살금 피우고, 이래저래 공사에 큰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함과 부끄러움도 일어나지만 함께 하는 동료 분들에게 참 감사하고 고맙다. 
예전과 달리 서로의 모습 속에서 조심성과 배려가 엿보인다. 내가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상대방의 등을 떠밀며 닦달질도 하지 않고, 나만 왜 이 일을 해야 하냐고 짜증을 내거나 크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서로 자기주장을 하며 분열하고 크게 다투지도 않는다. 체력이 약한 사람들을 먼저 배려해주고, 조금씩 양보하고 기다려주고, 서로의 형편을 공감해주는 모습들이 눈에 많이 띈다. 숱한 번민과 아픔의 시간들을 통해 울퉁불퉁한 자아들이 점점 깨어져 조심성이 더 많이 생겨난 자매들을 보면서 감동과 함께 ‘나도 좀 더 겸손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겠구나.’라고 결단하는 계기가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분쟁을 책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권면을 한다.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고전3:10).
은혜를 받은 사람의 증거는 말과 지식을 자랑하며 내 고집대로, 내 방식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일들을 아집적으로 강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결과보다 순간순간 마음의 동기와 상태를 살피며 하늘의 상급에 주목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한 일을 계산하며 남에게 부담감과 무거운 짐을 안겨 주는 게 아니라 주변에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다.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그리스도의 터 위에 조심성을 가지고 기초를 단단하게 다져가는 사람이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일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성과 진심어린 섬김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던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세 자녀가 목도했는데, 그들은 상반된 행동을 하였다. 함은 아버지의 과오를 즉시 밖으로 나가서 소문을 낸 반면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서 장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해 얼굴을 돌린 후 옷으로 덮어주었다. 그들의 조심스러운 작은 행동은 후대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함의 자손은 저주를 받고 셈과 야벳의 자손은 축복을 받았다. 얼굴을 돌이키고 뒷걸음쳐서 가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불편함이 따른다.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기 위해서는 조심성이 필요하다. 사랑이 있을 때 사려 깊은 행동이 나타난다.
우리는 저마다 자라온 환경이나 기질이나 성격이나 체질이나 믿음의 성향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바라볼 때가 많다. 그로 인해 이웃의 작은 과오나 허물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고 정죄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조심스럽게 살피지 않고 조급히 행동할 때가 있다. 때론 사랑이 결여된 조심성 없는 행동과 말로 상대방의 허물을 더 들추어내어 큰 상처와 고통을 주기도 한다. 이웃의 약함과 부족함을 덮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랑이 담긴 조심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프랜시스와 형제들이 리보또르또의 움집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이었다. 한 형제가 큰 소리를 지르면서 깨어나 “아이고 죽겠다. 아이고 나 죽는다.” 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모두들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프랜시스는 불을 켜라고 말한 뒤 “지금 소리친 형제는 누굽니까?”라고 물었다. “접니다.” 그때 한 형제가 괴로운 얼굴로 일어나며 대답했다. “내 형제여! 어디가 그렇게 아픕니까?” “배가 고파 저도 모르게 소리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솟아오르는 욕망을 억제하려고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며 단련하고 있었다. 프랜시스는 즉시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하여 굶주린 형제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도록 모두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프랜시스가 조용히 말했다.
“사랑하는 내 형제들이여, 각자의 체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적은 음식으로 몸을 지탱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더 필요한 형제가 다른 형제와 꼭 같이 적게 먹을 의무는 없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것은 조심성의 성장이다. 조심성이 점점 확장 되어가는 것이 영적 성장이다. 여러 가지 시험 풍파 속에 시달리다가 얻게 되는 중요한 소득이 바로 조심성이다. 그렇다고 조심성이라는 것이 늘 나약하고, 포기해야 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포기해야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조심조심하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에 강력하게 돌진해야 되는 경우도 있다. 그 가운데서 우리가 언제든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는 조심성이다. 그러면서 모든 덕이 나타나는 법이고, 어떤 일에 좋은 성과가 나타나고, 다양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마더 데레사도 분명히 말한다.
“생각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말이 되니까. 말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행동이 되니까. 행동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습관이 되니까. 습관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성격이 되니까. 성격을 조심하세요. 언젠가 운명이 되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신은 단지 우리가 노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어느 곳에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당신이 있어야 할 곳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일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고 있느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업적을 원하시는 게 아니다. 업적이나 일을 앞세우다 보면 과다한 경쟁과 교만과 포악과 시기로 분쟁하기 쉽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풀과 나무와 짚과 같은 헛된 공명심이 아니라 금이나 보석이나 은과 같은 사랑과 온유와 겸손으로 쌓은 순수한 공력이다.
마음의 동기와 상태를 밝은 빛 가운데 매일매일 성찰하며 생각과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빛의 열매를 맺자.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반석과 같은 집을 건축하기 위해 매일매일 성실히 최선을 다하자. 하늘나라 보석 집을 소망하며 이웃에게 더 한번 미소를 지어주고, 조금 더 기도하며, 조금 더 참아주며, 조금 더 사랑하며 행복하게 달려 나가자.
“조심성을 잃지 마세요.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기도할 시간을 가지며, 웃는 시간을 가지세요. 그것은 영혼의 음악입니다. 바쁘고 성실하게 살면서 불행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적은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마더 데레사)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