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날씨로 접어든 요즘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아침 바람을 가르며 맑은 공기와 꽃잎들을 맞으며 달리니 마음이 상쾌하다. 도로를 지날 때는 쌩쌩 달리는 자동차나 트럭들로 인해 약간의 위압감도 들지만, 찬양을 들으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왠지 모르게 신이 난다. 퇴근길에는 제법 가파른 언덕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그럴수록 페달을 더 힘차게 밟는데, 집 앞이 가장 난코스다. 다리에 힘도 많이 들어가고 끙끙대며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등과 목에 땀이 흥건하다. 아직 한 여름이 아님에도 갈증에 목이 타고 허기가 진다. 자전거를 재빨리 세워놓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부엌으로 직행을 한다. 컵에 물을 한가득 담고 삼킨다. 물이 정말 달다.
목을 축이며 의자에 앉아 땀을 식히던 중 며칠 전 들었던 어느 목사님의 설교 한 대목이 귓가에 조용히 울렸다. “종교적 중독 증세가 있습니다. 은혜의 홍수 속에 살다가 정작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사라졌습니다. 종교적 활동은 많아졌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나 관심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내 모습이 그러했다. 그 누구보다도 밝은 빛 된 말씀이 가득하고 은혜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이 내 안에서 사라졌다. ‘주님, 주님만을 더 원합니다. 내 안의 모든 더러운 죄를 말갛게 씻겨주시고 하나님과 거룩한 일치를 이루게 해주소서.’ 눈물 콧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을 애타게 찾던 때가 있었다. 길을 걷다가도, 일하다가도, 밥을 먹으면서도, 잠자리에 들면서도 주님을 향한 갈급함에 목이 탔다. 의에 주리고 목이 말라 내 연약함 때문에 숨죽여 많이 울기도 하였다. ‘오 주여, 나의 전부여!’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게 하소서.’ 주님만을 뜨겁게 갈망했던 성인들의 생애를 읽으면 마음에 불꽃이 튀었다. 나도 그분들처럼 세상에 대한 모든 갈망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사랑하고 그렇게 죽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안에 그러한 간절한 갈망도 목마름도 없다. 눈멀고, 벌거벗은 라오디게아 목회자처럼 미지근하다고 주님께 책망받을까 두렵다. 마음이 가난하고 춥고 배고프고 고난이 함께 할 때는 주님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 있었다. 우리는 너무 부유해서 주님을 향한 목마름과 갈망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로보니게 여인, 삭개오, 중풍병자의 네 친구, 세리의 공통점은 주님을 향한 목마름과 배고픔이 있었다. 그들 모두가 심각한 갈증을 느끼며 주님께 간절히 매달렸다. 목마름, 갈망이 사라지면 영혼은 힘을 잃는다. 갈망이 식어지면 그리스도인은 타락한다. 위기의 순간은 영적으로 무덤덤해지는 것이다. 기도와 찬양의 열기도 사라지고, 말씀도 무미건조해진다.
아무리 목사가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도 청중들이 목마름이 없으면 좋은 설교를 하기가 어렵다. 설교가도 성도도 모두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과 갈망이 있을 때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일어난다. 최고의 설교가도 영적인 굶주림에 있는 청중들에 의해서 일어난다. 교회가 불같이 일어날 때는 성도가 영적 기갈이 있을 때이다. 영적인 목마름을 가지고 있는 성도가 복된 성도이다.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많이 가지고 있는 단체가 살아있는 신앙 공동체이다.
이용도 목사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강대상 앞에 엎드려 밤을 지새우는 일이 허다했다. 서너 시간을 열변을 토한 후에도 열정적으로 성도들을 돌보았고 성경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다음 날에도 새벽을 필두로 다시 밤낮으로 집회를 하셨다. 목소리가 안 나와도 집회는 계속 이어졌다.
목사님의 북진 집회 소식에 성도들은 그곳이 어디쯤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길을 나섰다. 거리는 얼마나 되며 밥은 어떻게 먹을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나선 길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포기하고 돌아가는 이가 없었다. 가다가 힘이 들면 ‘천당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 찬송하면서 그렇게 몇 시간을 걸었다. 밤이 되었는데 인가나 불빛이라고는 없는 으슥한 산고개가 눈앞에 가로 놓였다. 좀 자다가 쉬어가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그러면 내일 집회 참석이 어렵다고 하니 모두 다시 일어나서 또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를 걷고 다시 밤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강물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이 추운 밤에 강물을 보니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물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한 발을 들여놓으며 찬송을 하니 40여명 모두는 넘실거리는 물속에 발을 넣으며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에 손을 붙잡고 기어이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겠으나 성령의 이끌림과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이 그들로 하여금 강도 건너고 산도 넘게 하였다.
이틀 밤을 새우며 230리 길을 걸어서 북진에 도착하니 그들을 맞으신 목사님은 터지고 냄새나고 더러운 발을 씻어 주시고 약을 발라 주시면서 “아! 글쎄 무얼 하려고 300리 길을 이렇게 고생스럽게 걷고 난리들이오! 숙천에도 평양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소!”하시며 기도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갈망은 산도 강도 배고픔도 추위도 뛰어넘게 하였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즐거워할 때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더욱더 간절해지고 거룩함에 대한 목마름은 억누를 수 없게 되는 것을 느낀다. 오, 거룩해질 수만 있다면! 오, 내 영혼이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다면! 오, 이 기분 좋은 고통이여! 그로 인해 내 영혼은 더욱더 하나님을 추구하게 된다. 오, 이 지속적인 갈급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가는 길에 늦어지지 않고 오히려 온갖 ‘가나안 땅의 포도송이’에 새 힘을 얻어 하늘의 유업을 충만히 누리고 소유하기 위해 좁은 길로 힘차게 전진할 수 있다면! 오, 천국 가는 길에 머뭇거리는 일이 없기를.”
다윗은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주님을 찾기에 갈급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르광야에서 삼일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해 목이 갈했다. 마라의 물마저 매우 쓴지라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 백성들이 원망을 쏟자 모세는 그때 여호와를 간절히 찾으며 부르짖었다. 주님께서 우리를 심한 갈증의 현장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눈물 골짜기로 몰아가심은 눈을 들어 하나님만을 갈망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시84:6).
메마른 광야가 비록 길고 무미건조할지라도 맑고 투명한 눈으로 거룩한 하나님을 갈망하자. 다시 힘을 내자. 성인(聖人)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자. 얍복강 가에서 환도뼈가 부러져도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던 야곱의 갈급함이 우리 앞에 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그 은혜의 강가로 나아가자.
그대는 아직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는가. 늘 하나님을 목말라하는 영혼만이 살아 움직인다.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과 갈망이 멈추지 않는 한 마침내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은총을 덧입게 될 것이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