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8:7).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의 용맹을 춤추며 기뻐했던 여인들의 즉흥 노래 가사였다. 위기에서 벗어난 온 국민의 축제였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임금만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천이고 다윗은 만?” 나라의 첫째인 왕의 권위가 무시당한 느낌이었다. 즉시 다윗을 죽이려는 살인마로 변했다. 반면 애굽의 바로는 일부러 차석으로 내려앉는 지혜를 보였다. 새 총리 요셉에게 “너보다 높은 것은 보좌뿐이다”(창41:40).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웠다. 최후 결재권을 미련 없이 넘긴 것이다. “네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창41:44). 왕의 권위와 통수권을 고스란히 요셉의 것이 되게 했고, 자기는 보호막이 되었다. 그의 2등 정신의 너그러움으로 애굽의 살인적인 7년 흉년을 거뜬히 넘길 수 있는 복을 받았다./ 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앉다가 충이 먹어 죽은 헤롯 왕(행12:23)들은 계속 같은 함정에서 몰사당하고 있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이다. /세계 테니스 결승전에 오른 영국 선수는 유리하게 굴러오는 운 좋은 공을 내리치기만 하면 금메달을 목에 거는 황금 기회를 맞았다. 승리는 틀림없이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부러 공을 높이 올려주어 맞수로 충분한 기회를 이용토록 짬을 주었다. 상대방은 힘껏 내리쳤고 승리는 그에게로 돌아갔다. “바다 건너 저 멀리서 온 선수가 우승컵을 안고 가야 되지 않을까요?” 2등으로 내려앉은 그의 명성은 1등 선수보다 몇 배 더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케 했다./ 뒤로 힘껏 또 힘껏 후퇴해야 이기는 운동이 있다. 줄다리기다. 현명한 또 하나의 처세술이다. 한사코 2등이 되어야 산다는 진리다.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2등 정신은 예수님 정신이다. 하나님 뜻대로만 되기를 원했고 그 뜻을 따르기로 작심하셨다(마26:39). 자의로 말씀하신 일이 없고 아버지로부터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고 하신 분이다(요16:13). 하나님과 동등해지는 것은 더더구나 원치 않으셨다(빌2:6).한 조각 감미로운 글을 소개한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아직 프러포즈를 못했거들랑 이렇게 한번 말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나는 당신을 세상에서 두 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왜 두 번째냐고 물어오겠지요. 이렇게 답하십시오. “내 사랑이 아무리 뜨겁다 한들 당신의 부모님만이야 하겠습니까. 나는 그분들은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분들 말고는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사랑은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 1885년 인천에 도착한 두 선교사(언더우드, 아펜젤러)는 이 나라의 첫 선교사라는 오만함을 갖지 않기 위해 손잡고 똑같이 배에서 내렸다고 한다. 2등 정신은 연합 정신이다. 공동 정신이다. 부디 2등 정신으로 살기 바란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