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 자유게시판에 ‘살려주세요.’라는 글이 뒤덮여 있다는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쟁 사회로 내몰려진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적잖이 고민이 된다. 

청소년 5명 중 1명이 “행복하지 않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OECD 주요국 최하위이다.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론 학업, 경쟁, 진로, 학원 등 시간적 스트레스를 겪는 아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를 연구한 염유식 연세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했다. “처음 조사를 시작한 2009년만 해도 행복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가족이나 건강이라고 응답한 학생들보다 많아지는 지점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올해는 중학교 3학년까지 내려왔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습득해야 하는데,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으면 불행한 어른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수능 만점자였던 4명에게 “수능 만점 비결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4명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만점을 위해 문제를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풀었다는 것이다. 수능 만점자들은 한결같이 공부가 너무 싫었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에 회의가 계속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를 푸는 테크닉만 배운 학생은 인생을 배우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삶의 만족도를 점점 잃어가는 요즘 청소년들을 보며 한 고등학교의 신선한 직업 십계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 월급이 많은 곳보다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3. 승진 조건이 없는 곳으로 가라. 4.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아니라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이는 곳으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는 곳으로 그러나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 7.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변방으로 가라. 9. 주위 사람과 배우자가 반대하면 틀림없다. 그곳으로 가라. 10.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단두대가 있고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위의 글은 유명한 대학의 부학장을 마다하고, 시골에 있는 거창고등학교에 부름을 받은 고(故) 전영창 교장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대부분 학교가 오로지 입시공부에만 매달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하여 매진할 때, 이 학교는 미션스쿨로 학생들에게 농사일은 물론 교직원과 학생들의 합동 눈싸움에, 예술제에 야영 활동까지 해가며 공부를 시킨다. 그런데도 전인교육은 물론 놀라운 정도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교이다. 그 학교의 정원 벽에는 “No cross No crown”(십자가 없이는 왕관도 없다)이라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영광의 자리보다 좁은 길을 가라고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그곳을 졸업한 학생들은 “3년 내내 행복했다.”라고 고백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한 제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형제여! 고위 성직자든 아니든 언젠가 만일 누가 넓고 수월한 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라고 당신에게 설득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을 믿지 마시오. 그 길을 받들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그가 기적으로 그것을 보증한다 치더라도 도리어 고행과 한층 더한 고행과 모든 것에서의 이탈, 만일 그리스도를 차지하고 싶으면 절대로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낮은 곳은 사람들이 꺼리는 길이지만,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조지 워싱턴 카버(1860~1943)는 남북전쟁 당시에 흑인의 아들로 태어나 전쟁으로 부모를 다 잃고 이름도 없는 고아가 되었다. 당시 흑인들은 공립학교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일주일에 16Km를 걸어 다녔고, 온갖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갖은 고생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카버는 1885년 하일랜드 대학에 합격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한다. 그러나 포기치 않았고 결국 심슨대학 역사상 최초 흑인 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되고,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이오와 농과대학의 교수까지 되었다.

어느 날 터스키기 흑인학교를 운영하는 부거 T. 워싱턴은 조지 카버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이나 명예, 지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단념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곳의 현실은 아주 열악하고 모든 시스템이 불안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희의 소망을 채워 주시고 계십니다. 저희에게 조지 교수님은 꼭 필요한 분입니다.” 

카버가 안정과 성공이 보장된 아이오와 농과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모든 것이 불안한 대학으로 떠나려고 하자 동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마다 조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처음부터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성공이나 돈, 명예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려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해야 할 수많은 일을 준비하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려는 것뿐입니다.”

그는 터스키기에서 개발한 농사법을 흑인 농민들에게 직접 방문까지 하면서 전수해 주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최초 초봉으로 책정했던 125달러의 월급만 받았다. 낡은 창고에서 연구하고 남루한 옷을 입었지만, 매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 목화 재배로 척박한 남부지역에 땅콩을 심어 비옥한 땅으로 탈바꿈시키고, 땅콩으로 음식 및 다양한 물품을 개발한 그를 사람들은 ‘땅콩 박사’로 불렀다. 조지 카버 묘비에 쓰인 글이다. “그는 명성에 부를 더할 수 있었지만, 어느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았고, 오직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에서 행복과 명예를 발견한 사람이 여기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좁은 길을 선택한 그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였다. 성공과 스펙을 좇는 현시대에 카버는 무엇이 가치 있고 중요한 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좋은 스승이다.  영어학원 자유게시판에 ‘살려주세요.’라는 글이 뒤덮여 있다는 한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쟁 사회로 내몰려진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적잖이 고민이 된다. 

청소년 5명 중 1명이 “행복하지 않다”라고 대답할 정도로 우리나라 청소년의 행복지수는 OECD 주요국 최하위이다. 개인 차이는 있겠지만 전체적으론 학업, 경쟁, 진로, 학원 등 시간적 스트레스를 겪는 아이들이 더욱 많아졌다. 

한국 청소년 행복지수를 연구한 염유식 연세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우려를 표했다. “처음 조사를 시작한 2009년만 해도 행복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학생들이 가족이나 건강이라고 응답한 학생들보다 많아지는 지점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10년이 지난 올해는 중학교 3학년까지 내려왔습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습득해야 하는데,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으면 불행한 어른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수능 만점자였던 4명에게 “수능 만점 비결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하자 4명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고 한다. 만점을 위해 문제를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풀었다는 것이다. 수능 만점자들은 한결같이 공부가 너무 싫었고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삶에 회의가 계속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문제를 푸는 테크닉만 배운 학생은 인생을 배우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된다. 

삶의 만족도를 점점 잃어가는 요즘 청소년들을 보며 한 고등학교의 신선한 직업 십계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 월급이 많은 곳보다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라. 3. 승진 조건이 없는 곳으로 가라. 4. 조건이 갖추어진 곳이 아니라 황무지를 택하라. 5. 앞다투어 모이는 곳으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는 곳으로 그러나 기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가라. 7.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라 존경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변방으로 가라. 9. 주위 사람과 배우자가 반대하면 틀림없다. 그곳으로 가라. 10.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단두대가 있고 십자가가 있는 곳으로 가라.”

위의 글은 유명한 대학의 부학장을 마다하고, 시골에 있는 거창고등학교에 부름을 받은 고(故) 전영창 교장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다. 대부분 학교가 오로지 입시공부에만 매달려 합격률을 높이기 위하여 매진할 때, 이 학교는 미션스쿨로 학생들에게 농사일은 물론 교직원과 학생들의 합동 눈싸움에, 예술제에 야영 활동까지 해가며 공부를 시킨다. 그런데도 전인교육은 물론 놀라운 정도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학교이다. 그 학교의 정원 벽에는 “No cross No crown”(십자가 없이는 왕관도 없다)이라는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영광의 자리보다 좁은 길을 가라고 아이들을 가르치지만, 그곳을 졸업한 학생들은 “3년 내내 행복했다.”라고 고백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한 제자에게 보낸 편지이다. “형제여! 고위 성직자든 아니든 언젠가 만일 누가 넓고 수월한 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라고 당신에게 설득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을 믿지 마시오. 그 길을 받들어서는 안 됩니다. 비록 그가 기적으로 그것을 보증한다 치더라도 도리어 고행과 한층 더한 고행과 모든 것에서의 이탈, 만일 그리스도를 차지하고 싶으면 절대로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를 찾아서는 안 됩니다.”

낮은 곳은 사람들이 꺼리는 길이지만,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조지 워싱턴 카버(1860~1943)는 남북전쟁 당시에 흑인의 아들로 태어나 전쟁으로 부모를 다 잃고 이름도 없는 고아가 되었다. 당시 흑인들은 공립학교에 들어갈 수 없어서 그는 학교에 다니기 위해 일주일에 16Km를 걸어 다녔고, 온갖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갖은 고생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카버는 1885년 하일랜드 대학에 합격했으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한다. 그러나 포기치 않았고 결국 심슨대학 역사상 최초 흑인 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되고,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이오와 농과대학의 교수까지 되었다.

어느 날 터스키기 흑인학교를 운영하는 부거 T. 워싱턴은 조지 카버에게 편지를 보냈다. “제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이나 명예, 지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단념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곳의 현실은 아주 열악하고 모든 시스템이 불안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희의 소망을 채워 주시고 계십니다. 저희에게 조지 교수님은 꼭 필요한 분입니다.” 

카버가 안정과 성공이 보장된 아이오와 농과대학 교수직을 버리고, 모든 것이 불안한 대학으로 떠나려고 하자 동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때마다 조지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처음부터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성공이나 돈, 명예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저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려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해야 할 수많은 일을 준비하고 계시리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가려는 것뿐입니다.”

그는 터스키기에서 개발한 농사법을 흑인 농민들에게 직접 방문까지 하면서 전수해 주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최초 초봉으로 책정했던 125달러의 월급만 받았다. 낡은 창고에서 연구하고 남루한 옷을 입었지만, 매사에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했다. 목화 재배로 척박한 남부지역에 땅콩을 심어 비옥한 땅으로 탈바꿈시키고, 땅콩으로 음식 및 다양한 물품을 개발한 그를 사람들은 ‘땅콩 박사’로 불렀다. 조지 카버 묘비에 쓰인 글이다. “그는 명성에 부를 더할 수 있었지만, 어느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았고, 오직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에서 행복과 명예를 발견한 사람이 여기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좁은 길을 선택한 그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십자가의 길을 제시하였다. 성공과 스펙을 좇는 현시대에 카버는 무엇이 가치 있고 중요한 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좋은 스승이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주님께서 걸어가신 한 줄기 길로만 걸어가야 한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 고난의 길이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길이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7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다가 옥중에서 순교하였던 주기철 목사님은 사명자의 길을 이렇게 표현했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 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고 올라가세.” 

한국 강토를 회개의 물결로 물들인 이용도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홀로 주님을 따라갑니다. 나의 자랑의 머리도 깎아버리고 겉치레의 옷도 벗어버리고. 그것은 세상의 자랑이요 호사는 되되 주님께는 거리낌이 되니까요. 홀로 향해서 가는 곳, 남이 아는 듯 모르듯 듯 다만 골로다로만 주의 뒤를 따라갑니다. 주님께서 우셨으니 나도 그 눈물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참 길을 가르쳐야 한다. 넓고 편안한 길보다 좁은 길을 선택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상석보다는 말석을, 영광의 자리보다는 단두대를, 부와 안정과 성공의 자리보다는 낮은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설령 모양새가 나지 않아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좇아가야 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낮은 길로 가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요 행복의 지름길이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주님께서 걸어가신 한 줄기 길로만 걸어가야 한다. 십자가의 길, 좁은 길, 고난의 길이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길이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7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다가 옥중에서 순교하였던 주기철 목사님은 사명자의 길을 이렇게 표현했다.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 복락 얻으려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고 올라가세.” 

한국 강토를 회개의 물결로 물들인 이용도 목사님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홀로 주님을 따라갑니다. 나의 자랑의 머리도 깎아버리고 겉치레의 옷도 벗어버리고. 그것은 세상의 자랑이요 호사는 되되 주님께는 거리낌이 되니까요. 홀로 향해서 가는 곳, 남이 아는 듯 모르듯 듯 다만 골로다로만 주의 뒤를 따라갑니다. 주님께서 우셨으니 나도 그 눈물의 자취를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참 길을 가르쳐야 한다. 넓고 편안한 길보다 좁은 길을 선택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상석보다는 말석을, 영광의 자리보다는 단두대를, 부와 안정과 성공의 자리보다는 낮은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설령 모양새가 나지 않아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주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을 좇아가야 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낮은 길로 가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요 행복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