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겠네” 찬송가 87장 가사의 일부다. 과연 그렇다. 돌연 모든 인생의 걸음들이 삽시간에 영원과 잇대어지는 순간이 닥쳐온다. 생수의 강이 넘쳐흐르는 찬란한 천국과, 끝없는 흑암의 지옥으로 쫙 갈라선다. 최후 약속이 성취되는 바로 그날이다. 천사들의 우렁찬 합창 속에 그립던 우리 예수님의 열렬한 영접을 받을 것이다. 나에게 그렇게 사랑을 퍼부어 주셨던 우리 어머니를 품에 꽉 안을 것이고 아버지의 굵직한 포옹을 받을 것이다. 세상여행을 일찍 끝내고 제일 먼저 천국 입장권을 타신 우리 누님을, 누님! 하고 소리치며 만날 것이다. 세포 속에 스며드는 감동적인 설교만 하셨던 우리 형님도 감격 속에 얼싸안을 것이고, 우리 식구 다 여기 모였네~~. 웃음 속에 일제히 예수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몇 만 번이고 불러댈 것이다.
어느덧 떼지어 달려오는 무리가 있다. 내가 섬겼던 교인들이다. 45년간 목회했던 그 얼굴들이 한꺼번에 내 손을 꽉 잡는다. 그저 영광, 영광, 하나님께 영광하며 소리친다. 평소 교회를 애먹였던 몇 분들도 천사로 변했다. 철저히 회개했단다. 탈진 상태에서 사명을 포기할 뻔했으나, 예수님의 손을 꽉 붙잡고 주님의 그물망은 떠나지 않았단다. 감격의 눈물을 줄줄이 쏟는다. 계시록에서 보았던 네 생물의 찬양이 기묘하기만 하고 이십사장로들의 면류관을 벗어 찬송하는 그 광경은 그저 찬란함이다. 천사들의 드높은 노래는 온 천지를 울리고 흰옷 입은 성도들의 힘찬 함성 역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천국을 디자인하시고 창설하신 하나님의 빛나는 영광은 온 우주를 가득 메운다. 아침 빛같이 뚜렷한 예수님의 생명의 빛은 모든 사람을 황홀하게 만든다. 성령님의 감싸주시는 따스한 빛은 가슴속을 파고들어 사랑으로 곱게 싸매신다. 그저 찬송과 감탄, 영원과 생명, 사랑과 평안, 면류관과 승리다. 여기에 들어오지 못한 안타까운 생명들! 천국 티켓을 쥐고 사소한 일로 포기한 어리석은 생명들! 왜 그랬을까, 정말 묻고 싶다. 예수님을 포기하고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교회가 부패하고 악취가 나서 그럴까. 그렇다. 허물투성이 인간들이 모여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욕탕 물이 더럽다고 아기까지(예수님) 버리는 어리석음은 파멸임을 아는가?
없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있다. 정말 많이 있다. 질펀한 지루함도 전혀 없고 걱정도 근심도 없다. 아픔도 죽음도, 의심과 불신도, 불면증과 우울증도, 불치병의 뼛속까지 쑤시는 아픔과 신음도, 살인도 자살도, 모략도 중상도, 거짓과 속임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고독도 외로움도 영영 이별이다. 배신당함도 속임수도 없다. 마귀와 흑암의 세력은 얼씬 못한다.
지옥을 비웃고 황당한 이론을 고집하는 인간들아! 지옥의 존재 이야기는 우리 예수님이 가장 많이 곱씹어 경고했는데도 그 진리를 대항하는 근거는 무엇이더냐? 생명이 달린 문제인데 감히 쉽게 웃어넘긴 그 위험한 신념은 어디서 나왔는가? 당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싶어서인가?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14:1).
시간이 짧다. 주님께 당장 무릎 꿇어라. 아직은 기회가 남았다. 사명을 기피하고 있는가?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사명의 옷을 다시 입어라. 폭삭 망해 거덜 난 사나운 볼품은 하나님의 가족에게 적합하지 않다. 기다리시는 주님의 넓은 품에 평온히 안겨라. 영혼의 창조력을 키워라.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