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오후(summer afternoon)는 나에겐 언제나 영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단어.”라고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말했다. 내게 여름 오후는 바다와 시간을 같이한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은 서해안의 바닷가 마을이다. 갈릴리 바다를 닮은 곳에서 어부였던 아버지와 책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여름 오후엔 불어오는 바람도 덥고 습해서 턱턱 숨이 막히고 아무 일을 할 수가 없다. 땅도 불로 달궈진 듯 열이 올라오고, 바닷모래는 신발을 신고도 걸을 수가 없다. 그 뜨거운 여름 오후를 딛고 서는 이들은 우리 아버지와 같은 어부들이다. 아버지가 생선을 잡아 돌아오는 시간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던 오후였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만선의 기쁨을 안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배를 보면 멀리서도 기쁨과 소망이 가득했었다. 그래서 뜨겁고 지치는 그 여름 오후가 내 기억엔 수확의 기쁨을 경험하는 시간이었고 아버지의 땀이 성실함으로 빛나던 순간이었다. 여유롭고 느슨하지만, 행복했고 사랑으로 빛나던 날들이었다.
충성의 가치
충성스러움의 가치를 다룬 잠언 말씀에 보면 “충성된 종은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25:13)라고 하였다. 여기서 ‘종’은 주인의 일을 맡아 하는 중요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때 충성스러운 종의 가치는 ‘추수하는 날의 얼음’에 비유된다. 고대 이스라엘의 추수 때는 더운 계절이었다. 따라서 얼음이 담긴 냉수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무더위를 식혀 준다. 종이 그 역할을 훌륭히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효과는 더운 여름날에 얼음냉수를 한잔 마실 때의 시원함과 견줄 만하다고 일컫는 것이다.
팔레스틴의 독특한 자연환경을 반영하여 비유로 교훈하는 본 절에서,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역할로 드러나는 종은 신실하고 지혜롭다. 사실 팔레스틴의 고지대인 레바논이나 최고봉인 헬몬산에는 추수철인 5, 6월의 무더운 계절에도 눈이나 얼음이 있었다. 왕들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실제로 그곳의 얼음을 가져와 음료수에 타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왕으로서 솔로몬도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있었을 것이며, 신하들 가운데 원하는 이상으로 일을 처리하여 기쁨을 주는 신하가 있는 반면, 전혀 그렇지 못한 신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솔로몬은 주인의 마음에 합하게 일을 처리하는 자를 가리켜 무더운 추수 때에 마시는 얼음냉수와 같이 주인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케 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종으로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보여준다. 즉 의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까지도 읽어 주인이 원하는 이상으로 일을 처리하는 지혜로운 종이 되어야 하며, 더 나아가 주인이 신뢰할 수 있는 종이 되어야 함을 교훈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착하고 충성된 종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백 세 되어 얻은 아들의 신붓감을 찾아오라는 명을 받고 떠났을 때, 기도하며 리브가라는 훌륭한 신붓감을 데리고 돌아왔다(창24장).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라는 사명을 받고 이를 죽기까지 완수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시내산에 섰을 때, 모세를 보내셨던 하나님의 기쁨은 얼마나 시원하셨을지 상상이 된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사무엘, 다윗과 엘리야, 다윗,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을 통해 무수히 발견되고 신약 시대에 예수님을 통해 그 절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계획하셨던 구원의 계획을 예수님과 그 종들을 통해 온전히 이루셨고, 그 종들은 어떠한 역경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기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고 헌신하였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칭찬과 상급을 베푸셔서 하나님의 기쁨을 드러내셨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12:3)고 하셨고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25:21)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나를 지금 이곳에 보내셨는가를 깊이 생각하여 주어진 사명을 헤아려 보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수확 때의 얼음냉수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창세로부터 예비하신 놀라운 상급과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행한 일들은, 은밀히 행한 일들까지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상급이 된다. 이는 결국 종 된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다주는 가치가 되는 일이다. 누군가를 위하여 일하지도, 어쩔 수 없이 일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을 위한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회복과 치유의 시간
요한복음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라”라고 하신다. 머문다는 말은 어떤 장소가 아닌 하나님 사랑 안을 의미한다. 어느 곳이든 떠날 수 있지만, 그곳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어서 당당히 걸어갈 수 있고 거기서 그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가면 거기서 치유가 일어나고 회개와 결단이 일어난다.
교회에서 6월부터 새벽 작정 기도를 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 동안 교회에서 하는 새벽기도를 잠시 쉬고 있었는데, 한 집사님의 결단으로 쉼이 마무리되고 다시 시작되었다. 기도하던 중, 이번에는 전도사님이 자신의 악습을 끊고 영적으로 새롭게 충전하여 육체적으로 힘든 성도님을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싶다며 금식을 선포하였다. 그러자 다른 성도님이 밤 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다른 집사님도 자신의 악습을 끊는 작정 기도를 시작하겠다고 하였다. 정말 목사인 나만 빼고 다들 결단하고 금식이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참여는 다 하고 있지만 부끄러운 맘이 들었다.
그런데 기도가 시작되고 금식이 끝난 첫 주에 작은 변화들이 시작되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 기간 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던 성도들이 돌아왔고, 마음이 세상으로 향해 있던 성도로부터 마음을 정리하고 교회에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인색하던 성도가 물질 작정을 하기도 하였다. 영적인 흐름과 부흥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었다. 누군가 불을 붙이면 그 불이 또 이어지고, 누군가 받으면 또 이어지면서 꺼지지 않게 타오르는 은혜가 있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시간이 얼마나 달고 오묘한지 모르겠다. 그간 살피지 못하고 게을렀던 목회자로서의 나태함을 회개하며 마음 다해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아픈 분들을 위해 기도하게 된다.
나는 그간 참 게을렀다. 고집스럽고 교만했다. 어둡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질책에도 결단하지 못하니까 성도들을 통해 일깨우시고 부끄럽게 하신다. 아직 살아 있으니 저 또한 결단하고 다시 무릎을 꿇으며 주님 앞으로 간다. 회개하며 매일 강단을 적시고 있다.
주님이 조금 시원하시려나 싶지만, 아직 멀었다. 이것은 정말 작고 작은 한 줌이다. 하나님 마음에 여름날 얼음냉수 같은 사람이 되려면 정말 너무 멀고 또 멀었다. 기도하면 할수록, 강단에 서면 설수록 그나마 느껴지는 것이 다행이다 싶다. 전적인 주님의 은혜임을 감사한다.
언젠가 선배 목사님께서 ‘나 같은 목사에게 우리 교회의 착한 성도들을 붙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분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목회자를 만나면 훨씬 많이 변화되고 더 성장할 텐데 그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라고 고백하던 기억이 난다. 이제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정신 차리고 살자. 나 때문에, 나로 인해, 느려지거나 게으르지 않도록, 방해가 되지 않도록 더 깨어 기도하자, 결단하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 주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막연하게 내가 할 일을 주님 탓으로 넘기지 말자. 매일 결단하자. 주님 마음이 시원하실 수 있도록. 여름날 얼음냉수 같은 사람으로 주님 마음에 쉼을 드리자. 우리 모두 그러하자.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