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不老長生)의 꿈은 인간 최대의 욕망이 아닐 수 없다. 중국 황제 진시황은 영원한 삶을 살려는 욕망으로 불로초를 찾고자 했다. 생명 연장의 욕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들이 진시황의 후예를 자처하며 생명 연장 사업에 너도나도 투자하고 있다.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을 심판하셨던 창세기의 바벨탑 사건처럼 심히 우려스럽다. 


갑부들의 위험한 질주

지난 9월 6일 영국 언론은 아마존의 창업자 베이조스가 불로장생을 위한 유전자 리프로그래밍 스타트업인 ‘알토스 랩스’에 최소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와 영국에서 올해 초 설립된 알토스 랩스는 베이조스와 함께 유명 IT 기업가인 유리 밀너가 투자한 회사다. 알토스가 투자받은 돈은 최소 2억7000만 달러 규모다. 알토스의 리프로그래밍 기술은 세포에 단백질을 주입해 인간의 수명을 50년간 연장하려는 연구다. 

므두셀라는 969세까지 생존한 성경 인물인데, 영국의 이론 생물학자 오브리 드 그레이 박사는 인간이 1000살까지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2000년 생명공학 연구재단인 ‘므두셀라 재단’을 설립했고, 온라인 결제서비스 페이팔의 창업자인 피터 틸은 므두셀라에 350만 달러를 기부했다. 

구글의 CEO인 래리 페이지는 2013년 노화 방지 연구를 위해 자회사 칼리코(calico)를 세웠다. 오라클의 공동창업자 래리 엘리슨도 1997년 엘리슨 의료재단을 설립해 불로장생에 4억 달러의 자금을 내놨다. 구글의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도 1억5000만 달러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최근 딸을 얻고 ‘더 나은 세상에서 크기를 바란다.’라며 52조 기부를 약속했다. 세계 갑부들의 불로장생을 향한 위험한 질주는 시작되었다. 


버림으로써 이기다

4세기 중엽 안디옥에서 태어난 요한 크리스소톰은 당대 최고의 학문을 하고 젊은 나이에 유명한 변호사가 되어 큰 명성과 부를 얻었다. 그는 많은 재물과 명성과 권세를 가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 향락을 마음껏 향유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점점 더 공허하고 메마른 내면을 안고 번민하고 방황하게 된다. 그러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회심하였다. 그는 예수님의 청빈과 순결과 순종의 길을 본받고자 변호사를 사직하고 신학을 배우게 된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는 자신을 위해 좋은 의식주를 찾지 않았고, 더 깊은 기도 생활을 위해 자주 금식하였으며, 가진 것을 모두 이웃과 나누었다. 안디옥교회의 감독이 된 이후에는 단벌옷을 살았으며 맨바닥에서 잠을 잤다. 놀라운 것은 변호사로 호사스럽게 지내던 때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후 당시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되어, 타락한 도시를 향해 하나님의 빛을 담대히 증거하면서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얻었다. 그는 부하게 살았던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값비싼 물건들을 팔아 가난한 병원에 기부하고 빈자들을 위하여 사용했으며, 자신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절제했다(고전9:25). 

성직자 중에 교회법을 어겨 치부하거나 방탕한 이들은 파면시켰다. 그의 철저한 삶과 강력한 설교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샀다. 사치와 향락에 젖어있던 황후 유독시아는 권위와 영광을 더 얻고자 자신의 은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도록 하였고, 장관들과 귀부인들은 사치와 향락을 계속하였다. 급기야 그들은 반역과 허위로 날조된 죄목을 붙여 요한의 지위를 박탈하고 유배시켰다. 3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다가 60세에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린다’며 숨을 거두었다. 

 

무너지는 바벨탑

오늘날 21세기도 당시의 콘스탄티노플처럼 ‘세상을 사랑하면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된다’(약4:4)는 말씀을 잊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났다’(딤전6:10)고 했다. 부귀영화는 다 누려봤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성역인 인간수명까지도 넘보려 하는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유전자 연구는 바람직하지만, 돈으로 불로장생을 얻고자 하는 것은 빗나간 인간의 욕망일 뿐이다. 갑부들의 영생 프로젝트는 자칫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온 땅의 구음과 언어가 하나였던 시절, 당시 인간들이 노아 홍수 이후 ‘땅에 흩어져 충만하라’(창9:7)는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탑의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던 인간의 오만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셨다.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사람들은 흩어졌고 바벨탑은 무너졌다. 그리고 ‘바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교만을 경고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7년 대환난으로 죄악세상을 심판하신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두뿔짐승이 본부로 삼던 큰성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성바벨론이여’(계18:2). 화염에 휩싸여 파괴되고 있는 빌딩들, 아우성치는 사람들, 멀리서 이를 보며 탄식하는 사업가들과 정치인들, 재벌들. 

이 죄악세상은 언젠가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성도들은 의식주와 노후문제로 염려에 빠질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주님께 맡기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자(마6:33). 

요한은 주님을 위해 스스로 세상 부귀영화를 버리고 무소유가 되었지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은 확실하게 소유했기에, 로마제국과 황제는 그의 설교에 떨었고 두려워했다.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으나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았다. 당시 세계의 중심지요 환락의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플에서 하나님의 청빈과 순결과 순종의 빛을 밝게 비추었다. 빛을 싫어하던 사람들(요3:20)은 그를 죽이자, 세상이 잠시 그를 이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죽음을 기다리던 황후를 먼저 데려가시고 새로운 황제가 된 그녀의 아들이 요한의 명예를 회복시키게 하셨다. 황제는 요한의 유해를 수도로 옮겨 자신의 부모가 저지른 죄악을 대신 참회했다. 죽음으로써 세상을 이기고 지금도 수많은 그리스도인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있다.

주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여, 돈으로 쌓은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인본주의 사상과 철학이 난무하고 동성애를 합법화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세상을 경계하자. 불꽃같은 하나님의 눈이 감찰하고 계신다. 죄악이 관영하면 언젠가 행한 대로 심판하시고 대적하는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