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아래서 부르는 주님


나의 어린 시절 꿈은 계절이 바뀌듯이 자주 바뀌어갔다. 아주 어릴 때는 사설탐정이 되고 싶었고, 조금 커서는 바둑기사가 되고 싶었고, 더 커서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다 꿈으로 끝나고 말았다. 철이 들고 청년이 되면서는 더 현실적이고 확실한 삶에 눈뜨고, 꿈보다는 더 확실한 무언가를 잡아야 했다. 그러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 지금까지 달려왔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아무것도 성공한 것이 없는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

가정에서는 좋은 남편이 되지 못했다. 자녀들에게는 좋은 아버지였어야 하는데, 어느 구석을 보아도 결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실패한 가장이 되고 말았다.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오직 외길 목회자의 삶을 달려왔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결국 실패한 목회자가 되고 말았다. 이 악한 세상에 빛으로 무장된 좋은 성도들을 양육시켜 놓은 일도 없고, 번듯한 교회를 건축하여 하나님께 드린 목회자도 되지 못했다. 교회를 성공적으로 부흥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린 일도 없다. 신학교에서 후배들을 양육하는 일을 했지만 그것도 흡족한 마음이 없다.

영성생활의 열매를 맺어보려고 이리저리 몸부림도 쳐봤지만 열매는 아무것도 없다. 결국 영성생활에서도 성공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실패자가 되고 만 것이다. 주님의 뜻이라 생각하며 미국으로 이민도 갔지만 그것도 결국 성공하지 못하고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실패, 실패, 실패,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되새긴다. 되지도 못하고 된 줄로, 어쩌면 될 줄로 착각하며 살아온 것 같다. 떡줄 사람은 꿈도 안 꾸고 있는데, 떡을 먹겠다고 떼를 쓴 것은 아닐까? 진실로 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하는 척만 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척, 믿는 척, 온유하고 겸손한 척, 기도하는 척, 아는 척, 잘나가는 척, , , , . 정과 욕심을 오래 끌어안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실패하고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지금 여전히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는 삶으로.

갈릴리에서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던 베드로가 자꾸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주님, 저는 어디에다 그물을 던져야 합니까? 저에게도 말씀하여 주십시오.” 주님보다 먼저 갈릴리로 돌아가서 물고기 잡던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는데, 무슨 면목으로 그 얼굴을 대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난 지금 세 번 정도가 아니고, 수없이 주님을 부인했던 심정이다. “주님 저에게도 오른편이든, 어디든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해주십시오.” 밤새도록 고생한 제자들을 위해 주님은 떡과 고기를 준비해 놓으시고, ‘애들아, 와서 조반을 먹자.’ 부르신 것처럼 저도 불러주십시오. ‘네가 나를 더욱 더 사랑하느냐?’ 저에게도 말씀하여 주십시오.

멀리 미국의 여정이 잡혀 달려왔지만, 무너진 실패자의 마음은 달랠 길이 없다. 돈이 없어 싸고 싼 중국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중국 공항에서 하루 지나고 LA에서 비행기가 취소되어 또 공항에서 하룻밤, 결국 집을 떠난 지 정확히 삼일 만에 목적지에 왔지만, 내 마음에 주님의 음성은 들리지 않고, 실패자라는 무거운 마음만 짓누른다.

주님 어디 계십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던 주님, 로뎀나무 아래 엘리야를 위로하셨던 주님. 여기 실패의 나무 아래 제가 서 있습니다. 저는 이 실패의 나무 아래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입니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그 세미한 음성을 저에게도 들려주십시오. 다시 살아야만 되겠습니다. 전에 들리던 그 청아한 음성으로 말씀하여 주십시오. 아직도 괴로운 세상에 할 일이 많아 살아야만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는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만 하기를 원합니다.”

어떤 분이 외양간의 소 이야기를 해주었다. 외양간에 불이 났는데, 소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더란다. 소의 주인이 오더니 외양간 안에 있는 여물통을 엎어버렸단다. 그제야 소는 외양간을 나오더란다. 더 이상 거기에는 먹을 것도 없고, 소망이 없기에. 불이 나서 타서 죽는 줄도 모르고 여물통에만 관심 있는 어리석은 소. 그게 우리 인생들이 아닐까. 바로 내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실패는 여물통에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나님이 타 죽지 않도록 끌어내주시기만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 제 여물통을 엎어 주십시오. 타 죽지 않게요.”

삼손은 실패 속에서 마지막 힘을 부여받았다. 나에게도 마지막 힘이 필요하다. 이제 피 흘리기까지 싸우도록 마지막 힘을 부여해 주시길 소원한다.

이안드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