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b5e9b2c9.JPG내가 어렸을 때 부러워했던 대상이 있다. 긴 생머리에 창백한 얼굴,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린 몸매, 왠지 모르게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여자들이다. 드라마나 소설을 자주 보다보니 사랑받는 여자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연약한 여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실제로 친구들 중에서도 그런 아이들은 항상 남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때로 운동장에서 조회라도 하는 날이면 잘 쓰러져 항상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 되었다. 병으로 입원 한 번 한적 없는 건강한 체질을 가졌지만 마음은 여리고 소심해서 친구들의 사소한 장난에도 눈물을 삼켰던 나는, 사람들의 도움에 둘러싸인 연약한 여인들이 부러웠다. 나는 연약한, 아니 연약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런 바람과는 다르게 개척교회 목회자의 딸로 자라며 나는 홀로일 때가 많았다. 수요일,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놀다가도 예배에 가야 했고, 아파도 교회에 가서 아파야 했다. 예능계 중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자 혼자가 되는 일이 더 많았다. 함께 연습을 하다가도, 공연을 하다가도 늘 먼저 빠져나와 교회로 가야 했다. 친구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서는 발걸음에 익숙해져야 했다. 대학만 가면 해방일 줄 알았는데, 미팅이 가장 많이 잡히는 금요일 밤 나는 혼자 교회로 가는 지하철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주님, 제 인생은 왜 이런 거죠?”

나를 가장 잘 아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의 섭리는 눈물자국을 남긴 지하철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교회로 가는 지하철에서 한 신앙서적을 읽다가 빛을 발견했다. 책에서는 고난의 날에 이렇게 기도하기를 권고하고 있었다.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그 뒤부터 나는 내 인생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들 때마다 이 기도를 올렸다. 이 짧은 고백은 나를 강하고 담대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 고백을 올릴 때 내 마음이 주님을 의지하여 강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을 의지하기 좋아하고 연약해보이고 싶어 하는 천박한 내면이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 한 분만을 굳게 의지하고 싶은 거룩한 소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 생기자, 나는 더 이상 눈물의 지하철을 타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과 있다가 교회에 가야 할 때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발걸음으로 단호하게 돌아섰다. 진로를 포기하고 부모님을 선교지로 보내며 혼자 수도회에 입회하기까지 인도하신 주님. 여전히 연약하고 부족함 투성이지만, 타락한 세상과 죄악된 본성이 만들어낸 가치관을 벗어나 말씀 위에 서서 목표를 향해 흔들림 없이 전진하는 굳센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날마다 인도하고 계시다. 


워치만 니는 17세에 구원받은 후,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주님께서 그에게 만일 네가 믿음으로 살지 못한다면 너는 나를 위해 일할 수 없다.”는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18세가 되던 어느 날, 그는 호주머니에 4원밖에 없었고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돌아갈 돈이 없었다. 그날 저녁 그는 하나님께 반드시 자신의 여비를 주셔야 한다고 기도했다. 마귀는 다른 사람에게 차표를 대신 사달라고 하여 목적지에 도착한 후 갚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기다렸다. 출발시간이 다가왔지만 그의 손에는 아직 돈이 없었다. 그의 일행은 짐을 꾸리고 인력거를 탈 준비를 했다. 인력거가 약 40미터 정도 갔을 때 뒤에서 한 노인이 니 선생, 잠깐 기다리시오.”하며 외쳤다. 그 노인은 음식 한 보따리와 봉투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고는 가버렸다. 봉투를 열어보니 4원이 들어 있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안배에 매우 감격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에게 이러한 체험은 14년 동안 계속되었다. 어릴 때부터 물질의 공급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운 그는 어떤 사역의 문제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고백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체험하였다. 오늘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끊임없이 증언되고 있는, 살아 있는 고백이다 


성경과 신앙서적에서만 보던 고백이 내 일기장에 쓰이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연약함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즐겨하는 내면이 활개를 치지 못하도록,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는 연약한 의지를 미련 없이 내쳐버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고정된 눈과 믿음의 발걸음 위에 기도의 깃발을 펄럭여야 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용사로 거듭날 때까지.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