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구름과 별을 보며

잠시 누워서 구름을 보고, 별을 보며 먼 나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어른은 유아스러운 것일까? 모든 분주함을 중단하고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일은 어디서 해야 하는 일일까? 바람이 그리는 가을 하늘을 무심히 보는 것이 사람의 일인가? 눈부신 빛의 산란을 숲에서 보는 일이 무의미할까? 굵어가는 열매를 쓰다듬고 꽃을 어루만지는 일이 유치한 일인가?

창조하신 만물과 교감하며 사랑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고상한 일이다. 베푸신 은혜를 순간마다 느끼며 자신의 초라함과 무자비를 고백하는 일은 그 사랑을 위한 전주곡이다.

때때로 우리는 왜 이리 오만한가? 너무 쉽게 즉각적으로 판단한다. 상대의 말은 듣기도 전에 할 말을 다 해버린다. 날 넘어 생각하고 추측을 그대로 믿어버린다. 육감만으로 평가하고 단정 짓는 일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쉽다. 이 오만과 편견이 행복을 선사하는가?

온 우주에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가?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아는 이보다 더 성공한 사람을 볼 수 있는가? 그 증거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고 따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윤동주 청년은 세포 하나하나에 이를 느끼며 서시에서 소름 돋는 고백을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9살의 젊은 나이에 일제의 옥중에서 생체실험으로 마루타가 되어 죽어갔다. 고통이 극에 달했지만, 그는 가치로웠다. 생애 목적을 발견하고 그 여정을 걷던 이로써의 삶은 성공이었던 것이다. 아팠지만 뜨거웠고 짧지만 굵었다. 그의 삶은 사랑이었다. 


가장 허무한 삶은 사랑을 떠난 삶이다. 아무리 호사를 누려도 가슴에 따듯한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가엾다. 온갖 소원을 다 성취하고 만물을 다 가져도 그 안에서 사랑을 퍼 올릴 수 없다면 한없이 불쌍하다. 부자든 학자든 유명인이든,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든 사랑이 주제가 될 수 없는 이들이 제일 초라하다.

만물을 이용하는 실리보다, 사람을 운영하는 재치보다, 사랑하는 삶이 가치 있다. 만물을 즐기며 행복감을 누리는 것보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조물주를 사랑하는 삶이 더욱 행복하다. 세상의 이치를 다 밝혀 아는 것보다 세상을 사랑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다. 그 사랑 속에 섬세한 사랑을 배워가는 삶이 가장 아름답다.

오늘 밤에 누가 바람에 스치우는 별을 보려나. 누가 한 점 부끄러움으로 괴로워하려나. 모든 죽어가는 것을 누가 사랑하려나. 누가 하나님 사랑으로 죽어가신 예수님을 사랑하려나.

구름이 파란 하늘을 채색한다. 가을 햇살이 열매들을 물들이고 있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