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때문에 웃고 우는 사람들 천지다. 깡통전세로 자살을 선택하고, 돈 때문에 부모·자식·형제간에 원수가 되고, 20·30대 청년들이 일확천금 때문에 필리핀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하여 그 피해자만 5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물질만능, 황금만능에 세상이 온통 흔들리고 있다.    


어른 김장하

모 방송국의 다큐에 나온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 김장하씨는 1944년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19살에 우연히 신문에 난 시험공고를 통해 한약사 자격증을 따고 20살에 함석지붕 아래 허름한 한약방을 열었다. 약값이 싸고 효과가 좋아서 입소문이 나자 원근 각지에서 많은 손님이 찾아왔고, 이른 나이에 큰 재산을 모았다. 

그는 ‘이 재물은 아픈 사람들 통해 모은 것인데 내 것이라 여겨 내 마음대로 써도 되는가’ 고민하다가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다. 39세에 전 재산을 털어 명신고등학교를 설립했다. 7년 후, 당시 100억 원 대에 이르는 명망 있는 학교를 국가에 무상기증하고 학교법인 이사장 자리도 내놓았다. 

학교를 설립하기 전부터 시작된 장학금 지원은 학교를 헌납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1000명이 넘는 수혜를 받은 학생들은 성장하여 대학교수, 경제학자, 헌법재판소의 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어엿한 일원이 됐다. 비단 학생들만 지원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문화예술계, 여성계, 장애인단체, 환경단체 등에도 그의 보살핌이 닿았다. 그는 대통령의 초대도 거절할 정도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일절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어느 기자가 허락도 없이 그의 이야기를 취재해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을 내었다.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은 놀라움, 따뜻해짐, 본받고 싶은 마음이 인다. 밝은 빛이 요구되는 시대, 물질만능의 시대, 무딘 양심의 시대에, 우리 마음을 일깨우고 돌아보게 하는 삶이요 가치관이다. 빛이 되라고 부르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어두운 양심에 환한 빛이 비춰지는 듯하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6-28).

은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평생을 한결같이 베푸는 삶을 보며, 목사라는 알량한 내 양심을 몹시 부끄럽게 한다. 많은 재산에도 불구하고 차도 없이 크고 화려한 집도 갖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서 놀라운 것이 아니다. 이른 나이부터 나만이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진 그의 마음이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성경은 돈에 대한 욕심을 경계하고 있건만 돈을 사랑하여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우리 사회에 마음의 울림을 주는 어른다운 어른보다 탐욕에 눈먼 어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이런 세상이니 다른 사람의 불행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얄팍한 젊은이들이 양산되는 게 아닌가 싶다. 10대의 청소년이 쉽게 큰돈 벌려는 욕심에 온라인상에 불법 음란물을 유포하고, 많은 청년이 도박과 마약에 손을 대고, 주색잡기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른이 필요한 시대

일제강점기 때 도암의 성자라 불렸던 이세종은 믿기 이전에 남의 집 머슴살이도 했지만, 30세에 10년을 작정하여 열심히 일해서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당시에는 보릿고개가 있어 마을 주민들이 이세종에게 집과 논과 밭문서를 맡기고 빚을 얻어 썼지만 갚지를 못하여, 그에게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였다. 이런 그가 어떤 계기로 성경을 읽고 주님을 만나 회심하게 되었다. 

그가 믿음생활 10년 만에 말씀을 읽고 큰 깨달음을 얻고 고민하다가 ‘내가 번 재산이 다 내 것이 아니니 돌려주자’는 결단을 하게 되었다. 그는 즉시 장롱 깊숙이 간직해두었던 빚 문서를 다 내어다가 일일이 찾아다니며, “자 당신의 빚 문서 여기 있소. 다 탕감해주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했다.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재산을 구제에 내어주었다. 

그러자 면사무소에서 그의 덕을 칭송하는 주민들의 민원을 들어 마을 입구에 송덕비를 세워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그가 깜짝 놀라 면사무소를 수차례 찾아가 “내가 이런 칭송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니 제발 땅에 묻어주시오.” 하면서 통사정하여 땅에 묻었다. 

그는 자기가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는 공(空)을 쳤다고 해서 스스로 ‘이공’이라 했다. 수십 년 전에 등광리를 찾았을 때, 마을의 나이 많은 노인들은 이공 선생을 기억하며 “이공은 진짜 믿는 사람이오. 믿으려면 이공처럼 믿어야지.” 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의 성덕이 소문이 나서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찾아왔고, 그의 영성을 따르고자 했다. 자연히 이런 이공의 성덕과 다른 목회자들이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제자들에게 목회자들과 기성교회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일절 금하였다. 행여 그의 사후에도 ‘이세종파’를 만들지 말라고 했다. 이현필 선생이 그의 영성을 이어서 전라도 일대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지금도 그의 제자들이 남원에 동광원이란 작은 수도공동체를 세워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어쩌다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못했지만, 나이와 지위와 항렬이 높다고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그렇게 산다는 생각에 별 문제의식 없이 재산을 축척하고 높은 지위를 얻는다. 사회와 공동체와 역사 앞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도 부끄러움을 모른 채 권력을 휘두른다. 

언론도 정치인도 무서운 것이 있어야 한다는 김장하 선생의 말에 가슴이 뜨끔해야 할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의 삶을 보면서 이세종 성자의 삶이 생각이 났다. 이 각박한 시대에 사람다운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시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주님께 기도해본다.

 

“주님, 제가 아직은 제 앞가림도 못하는 목사지만 다른 사람 탓하지 않게 하시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