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향기를 따라서

이번 신학교의 가을 학기 수련회 장소 중 한 곳은 남원 동광원이었다. 개신교 수도 공동체인 동광원은, 거룩한 삶으로 주님을 따르셨던 이현필이라는 선생님의 영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세워진 곳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거룩한 향기가 있는 곳이다.

지난여름 청년 수련회 때, 동광원을 방문한 청년들이 그 거룩한 향기에 취해 세상을 뒤로한 일도 있었다. 동광원 원장님처럼 예수님을 위해 살려고 인생의 방향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 중에 한 자매는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중 그 학교를 포기하고 영성신학에 1학년으로 입학을 한 것이다. 거룩한 영성은 흐르고 흘러가는 곳 마다 거룩함 샘의 근원지를 만들어 나간다.

20여 년 전부터 그곳을 찾아갈 때면 그곳에 계신 오북환 장로님과 원장님 그리고 여러 수녀님들을 통해 수도적 영성 생활에 대한 많은 경험들을 듣고, 특히 이현필 선생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큰 감동을 받곤 했었다. 특히 이번 수련회에서는 103세 되신 박남금 어머니에게서 느껴지는 거룩한 향기가 마음에 사무치듯 그리워진다.

103세 어머니의 삶의 향기

장미꽃에서는 장미의 향이, 국화꽃에서는 국화의 향이, 들꽃에서는 들꽃의 향이 있듯 사람에게도 향이 있다. 103년을 사신 박남금 어머니, 그분의 향기는 독특하고 진하다. 지금은 주님 품으로 가셨지만 그분의 삶을 돌아보노라면 그 진한 향기에 고개도 저절로 숙여진다.

그곳에 갈 때마다 손을 붙잡고 인사를 하신다. “목사님, 사람은 순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은 깨끗하게 살아야 됩니다. 깨끗하게 사세요. 예수님 잘 믿으세요.” 불끈 잡은 손을 놓지 않으신다. 좋은 음식을 드시지 않고 모으고 모아서 포장하고 포장하여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살며시 주신다. “감사, 감사 하나님 감사” 하시면서…. 상처 난 것 상한 것들을 구하여서 간식 삼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튼튼한 위장과 몸을 주셔서 감사, 감사 감사뿐이야 아무렇지 않아”라며 환한 미소를 머금으신다.

옷 한 벌. 일상의 옷 한 벌, 예배시의 옷 한 벌, 사계절 한 벌이다. “주님께서 옷 두벌 있는 자는 나누어 주라 하셨지 내겐 이 옷이면 족해요. 감사뿐입니다. 감사, 감사.”

양말도 없고, 버선 한 벌. 더러워지면 손수 빨아서 밤에 말려서 아침에 신으신다. 내의는 없다. “죄인이 어떻게 따뜻한 내의를 입고 살 수 있나.” 주님께서 내의를 입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감히 입지 못하시고 사거나 소유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신발도 한 컬레. 그것도 사치로 여기신다. 맨발로 다닐 수 있으면 신발 없이 걸으시는 것을 더 기뻐하시고 감사하실 그 분, “감사, 감사뿐이야.” 언제나 그 말씀만 하신다.

솜이불도 없고, 여름 홑이불 달랑 하나다. 사계절 주님의 보온 덮개로 넉넉하다고 하신다. “더 이상은 사치고 죄야!” 동짓달 긴긴 밤에도 얇은 이불 하나면 천국으로 여기시는 분.

요도 없고 맨 바닥에 허리를 대고 새우잠을 청하신다. “주님은 마구간에서 산에서 기거하셨는데 나는 너무나 부를 누리고 살아! 감사, 감사, 감사뿐이야!” 요를 깔고 편히 누워서 잠 자본 적이 없으시다. 늘 새우잠을 자면서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신다.

장롱을 열어 보니 텅 비어 있다. 옷 한 벌과 홑이불 하나 베개 하나다. 비어 있는 장롱, 103년의 그분의 삶을 말하여 준다. 가슴에 무엇인가가 덜컹 내려 않는다. 그분 앞에, 부요해서, 사치해서, 송구하여서, 부끄러워서 서 있을 수가 없다.

언제나 그리운 분들

할머니 수녀님은 36년 전, 이현필 선생님의 빛 된 삶을 보시고 빛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그때부터 가난으로 순결로 순종으로 사랑으로의 삶을 고수하셨다. 모든 일에 감사의 고백만 하신다. 수도 공동체에서 궂은일을 찾아서 하시고 말없이 없는 듯 사신 어머니, 베푸는 삶이 그분의 삶의 지표셨고 힘이셨다.

103세였던 때도 손수 빨래를 하셨다. “힘을 주셨으니 내가 해야지 움직일 수 없을 때 해주게” 그렇게 사시던 어머니께서 죽음의 준비를 하셨는데, 그 과정 또한 고개가 숙여진다. 돌아가시기 20여일 전부터 음식을 드시지 않으시고 냉수만 드시는 것이었다.

“103년 동안 너무 많이 먹었으니 무슨 미련이 있어. 하나님 나라 갈 때에는 깨끗하게 가야지.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으로 가지 않아! 깨끗함으로 가는 곳이야.”

스스로 죽음의 길을 아시고 마지막을 준비하셨던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신다 하시며 다른 식구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셨던 것이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찬송을 부르시면서 의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 만날 때를 기다리신다고 하신다.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맞이하신다고 하신다. 속히 즉각 주님 품에 들어가기를 열망하시는 할머니는 식구들이 찬송을 부르면 손과 발로 춤을 추시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신다. 그렇게 주림과 기도로 씨름하시던 22일은 그분에게는 천년과도 같은 긴 시간이었다.

힘들어 하시면서도 “이런 삶도 주님께 감사야, 사나 죽으나 주님의 뜻이지 살아도 감사, 죽어도 감사, 감사 밖에 없어” 입술의 열매는 여전히 감사뿐이셨다.

그러기를 20여일이 지나고, 2008년 11월 2일 밤7시. 그분은 그토록 사모하던 주님의 나라로 조용히 마지막 숨을 고요히 쉬시다 돌아가셨다. 할렐루야!

그분의 원대로 세마포 옷을 입혀 드리고 영혼을 위하여 기도를 드렸던 동광원의 식구들. 어린아이와 같이 편히 잠자는 모습…. 영원한 천국에서 선물 받으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 생명의 의의 면류관을 쓰시고 안식을 누리시고 계실 것이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이 전부이셨던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박남금 어머니가 가신 자리는 너무나 깨끗하여서 정리할 짐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앉았던 자리, 누웠던 자리는 너무나 깨끗하여서 식구들의 수고가 필요 없었다고 한다. 남은 우리들을 정신 차리게 하는 삶이셨다. 아! 103세 어머니. 그분은 동광원의 꽃으로 동광원의 향기로 영원히 남아 계시다.

모두가 잠든 동광원. 밤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저 별들처럼 그토록 주님을 사랑하고 닮으려고 몸부림치셨던 믿음의 선진들을 바라보니 눈물이 난다. 고독한 순례자여! 너는 무얼 위해 사는가?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기에 별을 보고 우는가? 깨끗하게 못살고 변화되지 못해서 우는 것이리라.

그토록 깨끗하게 사셨던 이현필 선생님은 밤새워 가슴을 치며 기도하셨고, 우리 선생님은 나무토막처럼 굳어버린 몸으로 40년 병상생활을 그토록 깨끗하게 사셨는데, 구더기처럼 살아온 이 죄인은 어떻게 우리 주님을 뵐는지….

“오, 주님! 이 죄인을 버리지 마시고 불쌍히 여기소서.”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