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계의 목회자 콘퍼런스에 갈 기회가 되어 여러 가지 일을 제쳐두고 시간을 내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는데 마음이 냉랭하고 은혜가 임하지 않았다. 모두 뜨거운 은혜를 받는 것 같은데 나 혼자만 소외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전 세계 사역자들의 반가운 만남이 이곳저곳에서 이루어지는 중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멀뚱히 앉아있는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작은 집회를 해도 동역자들이 부족하기만 한 나의 소속회와 몇천 명이 모이는 큰 집회를 주관하는 선교단체에 대한 비교 의식도 자꾸만 올라왔다. 

셋째 날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자리에 와서도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나의 연약함을 비추셨다.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며 자꾸만 올라오는 인간적인 생각을 회개하며 임할 은혜를 기다렸다. 여전히 무소식이었다. 집회가 끝나는 날, 맨 마지막 강의 시간이었다. 인간적인 스펙과 기술이 아닌 오직 믿음과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선교하신 한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으며 감동과 도전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는데 인도자의 선포가 들려왔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겠습니다.” 순간 진심 어린 회개가 터져 나왔다. 

항상 내 부족함과 환경의 열악함, 주변 사람들의 연약함을 탓하며 ‘안된다, 못한다’고 말했던 불신에 대한 회개였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울려 퍼졌다. “너는 나의 말씀을 전하게 하려고 부른 나의 종이다.” 그 부르심 앞에, 멈출 수 없는 눈물과 벅찬 감격이 몰려왔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음성은 회개하며 끝까지 기다리는 자에게 임한다는 것을, 또한 그 부르심에 대한 화답은 오직 믿음과 순종이라는 것을. “예! 주님, 저 같은 연약하고 완악한 죄인을 당신의 종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연약함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겠습니다. 환경을, 사람을 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에는 모든 어두움이 걷히고 오직 한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부르심을 묵상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예레미야다.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의 가장 어둡고 절망적일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을 받았다. 대외적으로는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떠오르고 있던 때였으며, 유다의 영적인 타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예레미야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1:5). 하나님의 부르심은 참으로 깊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가 형성되기도 전에 벌써 그의 성격과 기질과 장단점과 쓰임새 등 인격적으로 모든 것을 아셨다.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특별하게 쓰시고자 따로 구별해놓으셨다. 결코 대책 없이 이루어진 즉흥적인 사건이 아닌, 하나님의 오랜 계획과 준비 가운데 이루어진 심원한 작정인 것이다.

하지만 이 부르심에 예레미야는 감사와 기쁨으로 응답하지 못하였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렘1:6). 예레미야는 자신의 부족함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러기에 그 부르심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에다가, 지식도 경험도 능력도 없는 자신의 형편을 볼 때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적 부르심에 대해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는 것은 동문서답이며, 부르신 이가 원하는 답은 오직 한가지였다.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중요한 것은 순종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예레미야의 조건을 보고 택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니다. 그를 부르신 것은 절대 주권이요, 일방적인 은혜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자신의 부족한 조건과 어려운 상황을 핑계로 부르심을 거부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이 누구에게 보내든지 순종해서 가야하고, 무엇을 명하시든지 가서 말해야 한다.

참 많은 시간 동안 주님의 부르심에 대해 ‘슬픔’으로 답해왔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저는 아이라 할 수 없나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제 파악이요 겸손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부르심보다 나의 부족한 점을 주장하고 고집하는 불의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는 죄악이었다. 하나님이 보내시면 누구에게나 가고,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그대로 선포하는 것, 그것만이 나의 갈 길임을 새롭게 고백한다. 부르심을 확신하는 종에게는 오직 믿음과 순종만이 있을 뿐이기에, 오늘도 예와 아멘으로 나아간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