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소소한 기쁨 중 하나는 필사이다. 매일 자기 전, 한글과 영어 성경 그리고 영적인 서적을 한 페이지씩 필사하고 있다. 사람마다 말씀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나에게는 필사가 잘 맞는다. 

필사는 한마디로 베껴 쓰는 것이다. ‘손으로 책 읽기’라고도 하며 ‘가장 속도가 느린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필사하면 하루 동안 분주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오롯이 말씀에 집중하게 된다. 눈이나 소리로만 읽다가 쉽게 지나치던 말씀들도 필사할 때 새롭게 다가온다. 필사는 말씀을 온몸으로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다.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성경이 우리의 손에 쥐어진 것은 바로 성경 필사의 힘이었다.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옮겨 적었고, 이것을 엮어 모아 성경이 되었다. 기록할 종이조차 마땅하지 않던 시절의 성경 필사는 파피루스에서 이루어졌다. 파피루스는 식물의 줄기로 만든 자연물인데, 가볍고 저렴하게 구할 수 있어 성경을 기록하는 데 적합했다. 영어의 성경인 바이블(Bible)이라는 단어도 파피루스의 중심 무역지인 고대 페니키아의 항구 ‘비블로스’에서 유래됐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성경 필사를 위해 ‘필사실’(Scriptorium)을 만들 정도로 필사를 중요한 일로 여겼다. 필사는 훈련받은 수도자들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활동이었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오랜 성경 사본 중 대부분이 수도회가 보관해오거나 수도원에서 발견된 필사 성경들이다. 수도사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성스럽게 성경을 필사하면서, 필사가 단순히 말씀을 복제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기도임을 깨닫게 되었다. 슈폰하임 수도원 원장이었던 요하네스 트리테미우스는 성경 필사를 통해 “소중한 시간이 가치 있게 쓰이고, 성경에 관한 이해가 높아지며, 믿음의 불꽃이 밝게 타오르고, 내세에 큰 보상을 받게 된다.”고 전했다. 

세상의 유용성과 실용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필사는 그다지 추천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굳이 있는 내용을 똑같이 옮겨 적는다는 것, 그것도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은 시간 낭비처럼 보인다. 어떤 경제적 가치도 얻을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또한 필사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조금만 딴생각하면 틀리기가 쉬우므로 급하게 할 수가 없다. 먼저 쓸 내용의 문장을 머릿속에 담고 입으로 되뇐 뒤, 천천히 옮겨 적어야 한다. 옛 성경 필사자들도 아주 느리게 진행했다고 한다. 파피루스 한 장에 140단어를 담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한 장을 필사하는 데 2시간가량 걸렸으니 보통 느린 속도가 아니다. 

많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필사는 결코 무용한 일은 아니다. 말씀을 받아 적는 시간은 놓치고 살았던 하나님의 마음을 듣는 시간이요, 신앙의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다. 어떤 눈에 보이는 성과와 보상도 기대하지 않고 그저 작은 글씨 하나에 정성스레 마음을 담아 드릴 때, 은밀한 곳에서 기쁨이 솟아난다.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내 인생에 하나님과 가장 교통이 풍성했던 때를 돌이켜보면 항상 곁에 필사 노트가 있었다. 10여 년 전, 하나님께 내 인생의 전부를 드리겠다고 결단했던 때에 성자 성녀들의 책과 만났다. 잔느 귀용, 소화 데레사, 우찌무라 간조, 바실레아 슐링크 등 하나님과 합일된 경지에 들어가신 분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주옥같은 글들은 놀라운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필사하기 시작했고, 노트는 점점 늘어갔다. 노트에 담긴 말씀들이 너무나 귀하고 보배롭게 느껴져서 ‘보물상자’라고 이름을 붙여놓았다. 마음이 힘들거나 어려울 때면 ‘보물상자’를 열어보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보물상자’를 열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하셨다. 말씀을 이미지로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메신저로 전달하자, 은혜는 더욱 커졌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책을 필사하는 일이 소홀해졌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을 만나도 핸드폰으로 찍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나중에 옮겨 적어야지 했지만, 노트는 채워지지 않았고 잉크와 함께 마음의 은혜도 말라갔다.

최근 필사를 다시 시작하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채우지 못한 것은 노트만이 아닌 하나님과 함께했던 시간이었다. 꾹꾹 눌러 담은 것은 글씨만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고 싶은 내 갈망이고 기도였다. 다시 작은 글씨 하나에 정성스럽게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보실 수 있는 나만의 노트를 채워간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시는 시간, 나의 갈망이 작은 글자 하나에 담기는 이 순간이야말로 오늘 내 삶에 가장 쓸모 있는 시간이다.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