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달랴! 이력서로만 본다면 이 정도의 경력이면 기네스북에 넉넉히 등극할 존재다. 여자로 태어나서 아버지도 왕이고 남편도 왕이고 아들도 왕인데다 본인 자신도 왕이라면 세계 제일의 명예와 권력을 거머쥔 여걸임에 틀림이 없다. 누가 감히 이보다 더 큰 영광을 가질 수 있으랴! 다윗의 수많은 왕비 중에 오직 밧세바만이 왕인 남편에다가 왕으로 아들 솔로몬을 두었을 뿐이다. 네 개의 왕이란 타이틀을 독차지한 그 권력,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면을 파헤쳐보면 이보다 더 수치스러울 수가 없다. 아버지는 이스라엘과 유다 모두에 걸쳐 가장 포악한 왕인 아합이다. 전쟁터에서 활에 맞아 죽었다(대하18:33).
그 남편 여호람은 남유다 왕으로 창자가 터져 나와 이 년 동안 그 아픔을 못 이겨 미친개처럼 떠들다가 죽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난 자’다(대하 21:20). 아들 아하시야는 단 1년을 왕으로 버티다가 예후의 칼에 목 베임 받았다.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면서 묻었다. 의롭다는 왕의 손자가 개죽음이 되었다는 비꼬는 말일 것이다(대하22:9). 그럼 당사자인 아달랴는 어떤가? 다윗의 왕족을 모조리 죽이고 스스로 유다 왕이 된 지 6년 만에 성전 뜰에서 칼에 맞았다(대하23:21). 악명 높은 4인조다. 생애 내내, 징벌을 받느라 정신이 핑핑 돌았을 것이다. 유다왕국은 아달랴를 왕의 명단에서 빼버렸다. 천국의 생명책에서도 물론일 것이다.
이상야릇한 신앙 양태가 왕들 중에 많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않았던”(대하25:2) 아마샤의 경우다. 정직했으나 온전한 마음이 아니었다? 예리한 평가다. 그의 일생은 변덕스러운 일기변화였다. 은 백 달란트나 주고 용병으로 고용한 이스라엘 군사를 돌려보내라 하는 선지자의 말에 순응하여 하나님만 의지하여 에돔을 물리치고 무용을 발휘하여 승전국의 왕이 된 그였다. 그다음 순서는 패배한 적국의 신상을 불태우던지, 아니면 전리품으로 끌고 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패전국의 가증한 신을 가져다가 오히려 그 신을 섬기는, 이상한 형태로 변해 가면서 나라를 괴롭혔던 왕이다.
어떤 왕들은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대하26:16). 강해지면 이상스럽게 하나님을 밀어내고 등지는 족속들이다. 우쭐대며 촐랑거리는 고약한 버릇이다.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대하12:1). 같은 맥락이다.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간음하며”(렘5:7). 왕이나 일반이나 그저 똑같다.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왕상13:26)이 있는가 하면,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는데, 의사가 많은데,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찌 됨인고!(렘8:22, 9:1) 하나님의 탄식이 흘러넘쳐 쏟아 내린다. 키워주신 부모에게 반역을 일삼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의 패륜아다.
선하고 의롭다 하는 자들까지도 예외는 아니다. 악으로 빨아들이는 강한 흡인력은 무슨 힘일까? 금수저 집안이든, 흙수저 출신이든 같은 함정에 푹푹 빠진 서러운 영혼들이다. 인생의 난파선을 탄 자들이다. 교만의 뿌리가 권력의 토양에 깊이 박혀서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음에서 오는 허둥댐이다. 고상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후미진 곳에서 비틀거린다. 가련하고 측은하구나!
“내 백성아!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례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당장 돌이키라는 하늘 아버지의 천둥소리다.
“우리는 뒤로 돌아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