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난후 하얀 대접에 담겨져 있는 은행을 까먹기 위해 투명비닐에 은행을 한주먹 넣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딱딱한 은행 껍질이 뻥뻥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아이보리색 겉옷을 벗은 은행이 초록빛 나는 살갗을 살짝 드러내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반쯤 벌어진 은행, 아주 조금 입을 벌린 은행,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은행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몇몇 자매들과 은행을 한 알 한 알 까먹는데, 입을 꼭 다문 은행을 손으로 벌리려고 하니 쉽지가 않다. 결국은 방망이를 가지고 와서 은행을 두들기자 뿌드득 하고 이곳저곳에 금이 갔다.

곧이어 깨진 은행을 껍질에서 쏙 빼먹는데, 한 자매님께서 “은행 알은 참 예쁜 것 같아요.”라고 말씀을 하셨다. “네. 정말 예쁜 것 같아요. 맑고 투명한 것 같으면서도 푸른 녹색 빛이 감도는 은행을 보면 계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열두 기초석의 각색 보석 중의 하나인 녹보석이 생각나요. 은행도 어쩜 저희와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처음에는 냄새가 엄청 지독했지만 박박 문질러서 겉껍질을 벗겨내고 불에 달군 후 딱딱한 속껍질을 벗겨내면 냄새와 독성도 빠지고 다 익은 은행이 예쁜 녹색 빛을 띠는 것처럼 말이에요. 마치 정욕과 원죄로 말미암아 아주 고약한 냄새와 독성(원죄)을 가지고 있던 몹쓸 죄인들이 세 차례의 연단의 불을 통과하여 모든 겉 사람이 다 깨어지면 원죄가 뿌리 뽑히고 정결해져서 예수님의 생명을 영안에 담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하하, 정말 그러네요.”

아침 식탁에서 잠깐 오고가는 대화였지만, 주님께 나는 어떤 빛깔로 비춰질까 두려움이 일었다. 죽은 송장과 같은 검푸른 빛깔은 아닐까? 아니면 심한 악취를 풍기는 더러운 오물의 누런 빛깔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주님이 오시는 날 자기 옷을 다 빨아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고 했는데, 정작 나는 아직도 덕지덕지 오물딱지가 붙은 시커먼 옷을 겉(육신)과 속(마음)에 걸치고 때 국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더구나 요즘은 익은 열매라는 영적 목표도 잃은 채 영성생활이 느슨해져 버렸다. 작은 방망이로 조금만 두들겨도 “왜 때려요. 그만 때려요. 아프단 말이에요. 이제는 정말 그만 맞고 싶어요. 여기 금이 이만큼 간 것 안 보이세요.”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얘야, 자 보렴. 이제 빗금 하나밖에 그어지지 않았단다. 너의 단단한 자아가 가루가 될 정도로 부서지고 깨어지려면 아직 멀었단다.”

이만하면 많이 맞고 많이 깨지고 어느 정도 성장했다는 안일함속에서 나타와 천박과 자만이, 선한명분을 앞세운 허례와 위선이 독버섯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익은 열매라는 목표와 더불어 엄격한 절제, 복음적 가난을 사모하며 지극히 작은 죄에도 민감해 하며 애통해 하던 마음들이 식어져 버렸다. 철저한 회개생활을 등한시하고 가볍게 여기고 있다. 어쩜 이렇게 느슨해져 있는 때에 큰 야구방망이에 한 대 얻어맞고 머리에 다른 사람들이 다 볼 만큼 큰 혹이 나도 아무런 할 말이 없는 영적걸인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어쩜 애통해 할 만한 연단의 불이 없고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하는 때가 더 무서운 것 같다. 영적으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냄새가 나는 겉 사람을 벗기 위해서는 연단의 방망이가 꼭 필요한 것이다. 여러 가지 환경과 조건 속에서 이리저리 얻어맞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큰 바윗덩어리와 같은 단단한 우리의 겉 사람 즉 자아를 깨트리기가 쉽지 않다. 불순물이 다 제거될 때까지 시험의 불구덩이 속에 던져져 단련을 받아야 한다. 비록 시험이 고달프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성령의 맑은 물로 빡빡 문질러 내고, 뜨거운 불에 달궈져 육체와 영혼의 모든 독성이 다 빠져야 한다. 뜻하지 않은 일이 뻥뻥 터져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온갖 창피와 수모를 겪을지라도 연단의 도가니 속에 던져져 이리저리 닦여져야 한다. 방망이에 맞아 고통과 아픔의 눈물을 흘릴지라도 그 모든 것을 달게 받아야 한다. 영혼이 예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 연단만큼 더 가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