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여름한철 우리를 시원케 해주었던 선풍기의 사명도 이제 다 한 것 같습니다. 자연 바람보다는 못 하지만 돌리고 또 돌리면서 더위와의 싸움을 맹렬하게 해 주었기 때문에 무더웠던 여름을 잘 버티며 지낼 수 있었습니다. 더운 것을 잠시도 못 참고 선풍기를 즉각적으로 켜는 지난 여름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정욕을 얼마나 극진히도 잘 섬기는지 대통령 섬기듯이 하였던 것 같습니다. 빛으로 익어가기 위해서는 더위 속에서도 자신을 이겨가며 선풍기 바람도 절제해야 함을 알면서도 잘 실천하지 못했던 한철이 지나갑니다.
끝없는 나의 육신과 정욕과의 싸움에서 언제쯤이나 승리할 수 있으려나.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서 에어컨을 안 키고 선풍기를 안 쓴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정욕을 우상처럼 섬기지 않기 위해서 조금만 절제해보자 하는 마음이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 영혼을 깨웁니다. 바로 자신을 이기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무절제한 잠과의 싸움, 성질내고 포악하기 쉬운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인내하기,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기, 기분 나쁘고 우울한 마음이 들 때 빨리 떨쳐버리기, 남편과 자녀들에게 존댓말 쓰기, 하루에 선행 1가지 이상하기, 작은 죄악이라도 바로 바로 회개하기, 집안일과 같은 일상적인 일을 할 때 화살기도하기, 또 미안해요. 감사해요라는 말을 잘 하기, 아침, 저녁으로 경건의 시간 갖기 등 영성의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는 가정생활 속에서도 영적인 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세상 속에서 약고 똘똘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혈안이 되기보다는 경건한 아이로 신앙의 틀을 잡아주는 가정생활이 되어야겠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성적으로 재능으로 평가되고 평가하기 쉬운 시대에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로 또 가르침으로 후대를 세우는 일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세상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또 분주한 가사일로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로 좋은 영혼의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등한시 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바로 경건입니다. 아이들이 고집부리고 투정부리는 모습 속에서 그들을 다스리지 못한 자신의 부족함과 결연한 부모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태우는 기도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약한 나를 추스르고 아이들과 함께 가정생활 속에서 경건의 연습과 훈련으로 나아가야 함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결심이 며칠 내에 곧 무너진다 하여도 오늘 그 결심을 실천하면서 가르치면서 배우면서 가야겠습니다.
무더웠던 여름을 떠나보내며 경건의 훈련을 하기 참 좋은 계절을 맞이합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시간들을 뒤로 하고, 절제와 경건의 훈련으로 매진하고픈 마음을 부어주십니다. 일평생 감자를 깎고 주방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주님과의 깊은 임재의 훈련 속으로 들어갔던 로렌스 형제처럼 무언가 주님을 위해서 큰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강박관념을 뛰어넘어 내 영혼의 성화가 가장 큰 사명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 여름 동안 사역을 감당하느라 뽀얀 먼지 한 번 털어버릴 여유도 갖지 못했던 선풍기의 날개를 닦으며 저 자신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시원케 해준다고 하면서 정작 내 영혼에 묻은 먼지를 닦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갈고 닦는 영성훈련이 약해지면 금방 세속화되기 쉽고, 마귀가 침투하기 쉬운 법입니다. 티끌만한 잘못이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고 회개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겠습니다. 영혼이 깨끗해진 만큼 뙤약볕을 이겨 낼 성령의 바람은 더 세게 불 테니까 말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달려가야겠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사역의 가면과 가식에 찌든 허울을 벗고, 내면의 밝은 빛을 환히 비추고 싶습니다. 에스겔의 마른 뼈가 살아나듯 저의 죽은 행실을 벗어버리고 거룩한 영풍(靈風)을 일으키는 은혜의 날개가 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 뵐 날이 점점 더 임박한 이때에 가정과 일상 속에서 성화의 길을 따르는 작은 구도자의 길을 걷고자 합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