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의 <들오리 이야기>에 나오는 글을 읽으면서, 살아생전 아버지를 잘 섬기지 못한 죄송함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랑하는 아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몸이 허약해져 병에 걸리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나를 곁에서 함께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구나. 늙고 힘이 약해져서 음식을 흘리면서 먹고, 속옷을 자주 적시고 옷을 잘 입지 못하더라도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서, 내 모습을 조금만 참아다오. 

우리가 깜빡깜빡 잊어버려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더라도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구나. 네가 어렸을 적 너의 이야기를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훗날에 혹시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너무 무안하게 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그때마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씻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네 어린 시절의 모습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신기술에 한없이 느리고 말이 어둔해서 대화가 원활하지 않더라도 너의 시간을 우리에게 내어 줄 수 있겠니?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맛난 음식도 아름다운 옷도 좋은 주택도 아닌 너와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말을 귀담아 주는 네가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기쁨이란다. 비록 우리가 너희들을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을지라도 우리는 네게 가장 좋은 것을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지난달 95세 삶을 마감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군인정신으로 살아가셨던 나의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셨지만, 매우 용감하시고 성실한 분이셨다.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짐이 될까 봐 힘들다고 일을 미루는 일이 없으셨고,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기도하신 후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조반을 드시고 먼 길을 걸어 나가 버스를 타고서는 재향군인회 사무를 보시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는 오후에는 열심히 밭을 일구시고, 아무리 고단해도 저녁에는 가정 예배를 꼭 드리셨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수요예배를 드리러 가려고 이를 닦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지셨다. 깜짝 놀란 남동생이 119로 연락해서 아버지를 전주 예수병원에 입원시켰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 날 전주로 내려갔더니 아버지의 모습이 주무시는 듯 평온해 보였다. 그러다가 다음 날 새벽 5시 30분에 소천하셨다. 음식도 잘 못 드시고 몹시 쇠약하신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셨다. 죽음은 순서가 없나 보다. 한 번 사는 인생, 나도 아버지처럼 부지런히 주님을 섬기다가 그리스도의 군인으로 북한에 들어가서 장렬하게 죽고 싶다.

4일장을 했는데, 그동안 뵙지 못했던 일가친척들과 동네 선후배들, 공동체 식구들이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에 위로를 해주셨다. 먼 외국에서도 손님이 오시고, 인연을 끊고 살던 사촌 동생도 살아생전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장례식장을 찾아오셨다. 사촌 동생은 밤늦게까지 “우리 동네 제일 큰 어른이셨고, 참 귀한 분이셨는데…”라며 눈을 붉히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내셨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화해의 장을 만들어 놓고 가시는 듯했다. 화장터로 가는 날, 벚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길 위에도 하늘에도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었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용감한 분이셨다. 나라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백마고지의 영웅으로 ‘임실 호국원’에 안장되었는데, 여러 군인이 질서정연하게 나팔을 불며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주셨다. 

모든 장례 절차를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통장을 확인해보니, 사랑의 위로금을 곳곳에서 보내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이름으로 몽땅 감사헌금을 드렸다. 아버지의 섬김과 헌신으로 들어온 것이고, 하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늦잠을 자면 막대기로 때리기도 하시고, 군대식으로 이른 아침부터 깨우는 아버지가 무섭고 몹시도 싫었다. “남자가 약골처럼 비실비실하면 되겠느냐? 사내처럼 강건해야지.” 커서도 엄격했던 그런 아버지가 좀 어려웠다. 그런데 아버지가 천국으로 가신 후에야 아버지의 그 큰 사랑을 깨닫는다. 

늘 불효하는 못난 아들인데도, 나의 영적 스승님을 만난 후부터는 ‘저의 아들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는 나를 다시 사랑으로 품으셨다. 그리고 아들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무슨 권면을 조심스럽게 드리면 즉시 순종하셨다. 

한번은 목사님과 성도들과의 친분도 좋고 많은 정성을 쏟으셨던 다니시는 교회를 떠나 예전의 작은 교회로 옮기시면 어떻겠냐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더니, 눈물을 머금고 나의 권면을 따르셨다. 아버지는 인간의 정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길 원하셨고, 용맹한 군인답게,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사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다. 

광야 여정을 모두 마치고 천국으로 입성하신 아버지와 잠시 잠깐의 작별 인사를 하고 나니 나의 영적 아버지셨던 선생님의 여러 권면이 떠올랐다. 

“은혜를 받으려면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그네 정신입니다. 우리가 몸이 편하고 건강하고 좋은 상태에서 충성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많고 괴로움이 많을 때 맺는 열매가 하나님 앞에서는 더 크고 값진 열매입니다. 그것이 천국의 원리입니다. 건강하고 몸이 편하다고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십시오. 

큰 손해를 보더라도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항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히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훌륭한 성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좁은 길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익은 열매가 되려면 철저한 회개와 엄격한 극기 생활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작은 죄라도, 작은 애정이나 욕망이라 할지라도 깨닫게 되면 진정으로 참회하며 나아가야 하며, 빨리 용서받고 또 다른 열매 맺는 생활을 계속 추구해야 합니다.” 

육신 아버지의 엄격함이나 영적 아버지의 철저함은 모두 아들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었음을 이제는 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신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사도바울은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1,2)는 말씀을 남겼다. 

내 육신의 아버지도 규모 있고 철저한 생활을 내게 가르치셨고, 영적 아버지이신 선생님도 철저한 영성 훈련을 항상 강조하셨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 훈련입니다. 그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 훈련은 게을리하면서 다른 사업에만 열심히 하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구심점을 튼튼히 갖추어야 합니다. 영성 훈련이 약해지면 금방 세속화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성인들의 삶을 꾸준히 본받아 철저히 살아갈 때, 연단을 받고 영적으로 더 빠르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박 목사님, 박력 있는 수도사가 되십시오.”

내게 너무나 좋으신 두 분의 아버지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그 아버지들의 사랑과 은혜를 어찌 다 갚으랴! 다시 천국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사랑하는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보며 다시 결단해본다. “박력 있고 용감하게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그리고 늘 모범이 되셨던 아버지들처럼 저도 하늘 아버지를 열심히 전하며 충성된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게 하소서.”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