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의 나라 네팔은 천혜의 자연을 가졌지만, 세계 빈민국 10위 안에 꼽힐 만큼 가난하고 척박한 나라입니다. 국교로 지정된 힌두교는 네팔의 가난한 사람들이 심각한 질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기보다는 죽음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도록 합니다.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18년째 의료선교를 펼치며 죽음과 맞서 생명을 살리는 한국인 의료 선교사가 있습니다. 외과의사 양승봉 선교사 부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료 달란트로 현지인들의 아픔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하는 양승봉 선교사는 네팔에 와서 대단한 일을 한다거나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한 적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구멍 난 곳을 메워주면서, 그 자리를 채워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정말 힘이 닿는 데까지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것이 그 사람들을 돕는 거죠. 한국에서 한 달 열심히 도와주는 양 하고 여기서 일주일 도와주는 양을 비교하면 여기 일주일이 훨씬 더 많은 거 같아요. 여기가 나를 더 필요로 합니다.”

네팔의 ‘나마스떼’는 우리나라의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입니다. 이 말은 “당신의 마음에 있는 신에게 경배를 드립니다.”라는 속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끼리는 “저이머시”라고 인사하는데 저이는 승리, 머시는 메시야를 뜻합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의 승리자가 되십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에 물집이 생기고, 피곤에 지쳐 쓰러지는 순간조차도 그는 가난한 네팔의 영혼들을 향하여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저이머시’의 주님을 순간순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면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원망 불평하거나 힘들다고 엄살을 피울 틈이 없습니다. 안녕과 평화를 깨트리는 것은 고통과 역경이 아니라 원망과 불평 섞인 게으름임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그곳의 불편한 환경과 가난과 굶주림과 추위, 온갖 전염병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주님 때문에 많은 것을 나누어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가난함이 천국을 소유하는 은혜의 통로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가난함을 영적인 부요함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손길을 믿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5:3). 아무런 대가 없이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며 ‘저이머시’의 삶을 살아가는 그의 굳은 살 배긴 손에는 승리의 상징, 종려가지가 높이 들려져 있는 듯 합니다.

육체의 반을 잃어버렸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저이머시’ 삶을 전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소유자 한분을 또 소개할까 합니다. 2008년 9월, 교회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서 남편과 함께 복음신문으로 전도 하던 중 J성도님과의 처음 만남이 시작되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신문을 받으셨는데 살짝 보니 화사한 복사꽃이 핀 것 같은 발그레한 볼을 지닌 분이셨습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50대 초반으로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소녀 같은 외모를 지닌 분이셨습니다. 제 옆에 서있는 남편의 불편한 몸을 보더니 소곤거리며 사정을 물으셨습니다. 희귀병으로 투병중인 남편과 아이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마치 자신의 아픔 인 냥 무척 안쓰러워 하셨습니다.

J성도님은 13년 전 스키를 타던 중 사고로 인해 허리 아래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사고 당시 의사선생님은 희박한 생존 가능성과 회생하더라도 목 아래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오랜 병상생활을 털고 상반신을 움직일 수 있는 기적을 체험하셨습니다. 친정집은 사찰까지 운영하는 불교 집안인데 용감히 기독교로 개종을 선포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습니다. 비교적 큰 교회에 출석하며 구역예배가 은혜의 통로가 되어 믿음의 싹이 자라났습니다. 그러던 중 이동의 불편함과 생방송 설교에 대한 목마름 속에서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따뜻한 마음과 탁월한 언변으로 J성도님과 함께 하는 점심식사 시간은 늘 웃음꽃이 핍니다. 깊은 배려심과 타인의 좋은 점만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언어로 힘을 북돋아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이 불문하고 눈높이를 맞추는 능력도 최상급입니다. 불편한 몸이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지만 있는 자리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감싸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을 통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얼마나 섬세한지 실감합니다. 근래 말기 암 판정으로 투병중인 노모께서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 그분의 모습이 향기가 된 듯합니다.

불편함과 약함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 겉 사람은 후패할지라도 속사람은 더욱더 강건해짐을 그분의 삶을 통해 다시 보게 됩니다. 가난해도 병이 들어도 예수님과 함께라면‘저어머시’의 삶이 우리 삶 가운데 계속 이어짐을 또한 보게 됩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55:8). 때때로 뜻하지 않은 불행과 역경 앞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어 울 때도 많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은 크고 위대하십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기만 하면 우리의 연약함이 부끄러움이 아님을, 고통이 짐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도리어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는 못하는 탐욕과 영적 무지함이 부끄러움이요 떨쳐버려야 할 짐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인도하심과 허락하심 속에 삶의 선교일기를 쓰는 선교사라 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간다고 생각합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감당하고 기도하며 다듬어 가는 이들입니다. 때로는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과 불편한 관계, 더 좋고 더 높은 신분으로의 욕구, 소외됨의 고통을 거부하는 내면의 고투를 거쳐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면의 고투를 통해 우리를 마음과 행실이 정결한 그릇으로 빚어 가시고 깨끗한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생명을 담아주십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의 큰 구멍을 메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오늘도 외쳐봅니다. “저이머시!”

박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