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다리십니까   - 박상태


오랜만에 시골로 내려 왔다. 이곳에선 도시에선 들을 수 없는 여름이 가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여치와 쓰르라미도 요란하지만, 무엇보다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에 가득 쏟아집니다. 7년여를 땅속 굼벵이로 살다 매미 되어 날아올라 일주일의 짧은 생애를 혼신의 힘을 다해 삶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는 가히 감탄할 만합니다. 작은 곤충이 어찌 저리 지치지 아니하고 저렇게 시끄러울 정도로 노래할 수 있을까… 그는 이제 곧 생을 끝내야 함을 아는 가 봅니다. 그래서 분초가 귀하고 하루가 아쉬운 듯, 사력을 다해 울어댑니다. 기다림의 생애가 만들어낸 찬란한 마지막 사랑의 노래인 것입니다.
2주전 설교가 “환난의 징조와 준비”였는데, 지난 주 장로님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교회와 저희 집 텃밭에 심은 호박이 하나도 열매 맺지 못했어요.” 어떤 권사님은 “어라, 작년까진 저 집 넝쿨 박이 많이 열렸었는데, 올해엔 하나 밖에 안 열렸네”라며 놀라셨습니다. 꿀벌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이제 바다 건너 먼 나라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에 쑥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예고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는 4년 내에 멸망할 것이다.”
신문은 매우 자주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고, 바다를 떠도는 100여개의 유빙들이 이제는 1000여개로 늘어났고,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이제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어제 신문에도 우리나라의 바다 수면 온도가 50년 관측 이래 가장 높다고, 그것도 이제는 떨어질 사이클인데 그 순환이 깨어져 버렸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 태평양에는 우리나라 6배 정도 되는 거대 쓰레기 섬이 두 개나 형성되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썩지 않고 버려진 플라스틱과 비닐의 섬입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커다란 지구 파괴적 생산물입니다. 아마존을 비롯한 곳곳의 산소 생산 지대들은 돈벌이를 위해 대규모로 벌목되거나 불태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과 함께 막을 수 없이 발생되는 온실 가스들은 지구의 온도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의 예고처럼 이제 지구는 대자연의 강제적인 활동으로라도 정화되어야 할 시간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투모로우의 영화처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정확한 예언은 요한계시록 8장에 있습니다. 7년 대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1~4째 나팔로 인해 전 세계의 땅과 바다와 강 전체에 1/3의 가뭄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태양과 달도 1/3이 어두워지고, 모든 환경들이 가뭄이 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금처럼 서서히 준비되다가 하나님의 예정하신 때에 결정적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고하신 종말과 재림은 코앞에 닥쳤습니다. 물론 그 날과 그 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징조를 보아 알라 하셨으니 진정 이 시대는 깨어 근신하며 기도할 때입니다. 성경의 모든 종말의 예언들이 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토 귀환, 만국에 복음 전파, 10나라에서 나오는 적그리스도의 출현, 교통과 지식의 고도 발달 등 그 어느 것 하나 준비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당신은 지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다섯 처녀처럼 준비하고 있습니까? 참매미처럼 마지막 시간을 불사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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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새 울음소리


겨울보다 더 일찍 동이 트긴 하지만, 뒷산에서 맞는 3월의 아침은 여전히 춥습니다. 바람은 매섭고, 공기는 차갑습니다.
이곳 작은 산 밑으로 이사를 온 지도 근 6년이 되어 갑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일은 노년의 일만은 아닙니다. 그동안 베푸신 주님의 은혜를 헤아리고자 하는 일이요, 더욱 새롭게 되고픈 까닭입니다.
다시 맞고 싶은 많은 기쁨의 일들과 다신 겪고 싶지 않은 슬픔의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랑을 나눈 일들과 아픔을 주고받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어리석고 속이 좁아 좌충우돌하며 지내온 세월들이니, 그러고도 산다는 것은 옆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전적인 주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새벽은 참으로 신기하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수년 동안을 새벽 예배 길에서 듣던 궁금한 소리가 있었습니다.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무슨 공장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한 그것은 조금은 날카롭고 긴 단음이었습니다. 어떨 때는 금요기도회가 끝나고 교회를 나올 때에도 들렸지만, 캄캄한 새벽녘이면 영락없이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소리가 기도 바위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라 쳐다 본 것은 옆의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비둘기 보다 약간 큰 검은 새였습니다. 거리가 한 4미터 정도였을까. 더욱이 길게 울 때마다 열려진 부리도 보였습니다. 아직은 따뜻한 봄이 아니니, 짝을 부르는 소리는 아닐 텐데 저 새는 무엇 때문에 이 밤을 지새웠을까… 그리움이 없다면 저렇게 울 수는 없는데, 저리 울며 찾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울다가 밤을 지새운 날이 있는 가… 나는 저보다 더 주님을 찾았던 때가 있는가. 이 새벽에 여기까지 왔지만 내게 진정 주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이 저만큼은 있는 걸까. 한 밤 동안 주님을 목 놓아 부르다가 새벽을 맞은 날이 있었는가…. 여러 가지 상념이 일어나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시린 코가 더 시큰해졌습니다. “휘이~, 휘이~” 바람과 함께 새 울음소리는 더 예리하게 제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깁니다.
아, 주님, 사랑합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이제껏 저는 저렇게 애절히 주님을 부르지 못했습니다. 새벽예배 때문에, 다음 날 분주한 일정 때문에 밤을 지새 지 못함을 위안으로 삼았었습니다. 23세의 데레사는 잠을 한 숨도 자지 않고 주님과의 친밀한 대화를 죽는 날까지 계속 하였다는데, 저는 이 나이를 먹도록 무엇을 한 것입니까. 밤을 허비한 시간이 너무 많고, 인생을 쓸모없이 낭비한 것이 많습니다.
주님께서 제게도 저 새에게 주신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을 밤새워 부르다가 죽을 은혜를 주시옵소서. 제 속에 끌 수 없는 사랑의 불을 붙여주시고, 막을 수 없는 연가를 주시옵소서. 잠들 수 없는 사랑! 호흡마다 기도가 되고 심장의 박동마다 노래가 되는 그 사랑을 주시옵소서!
박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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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부는 바람   박상태

쌀쌀한 한기가 느껴져도 조금은 피하고 싶어도 가을에 부는 바람은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합니다. 이렇게 사는 곳 가까이 시원한 바람을 맞을 호수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허무가 찾아올 때 이곳에 오면 언제나 시원한 바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팔을 들어 가슴을 활짝 펴고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습니다. 깊이 심호흡을 합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총을 들이마시고 저의 옹졸하고 이기적인 마음들을 뱉어냅니다.
시원한 바람은 자기 연민의 사슬들을 풀어내고 겹겹이 싸인 가식과 허례의 옷들을 벗겨냅니다. 정욕에 묻힌 세속의 사연들도 날려 버립니다. 귀를 털어 봅니다. 듣지 못할 것을 들으면서 답답하여 쌓였던 귀지를 털어냅니다. 보지 못할 것을 보던 눈도 비벼봅니다.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한 입도 크게 벌려 봅니다. 그리곤 세차게 불어오는 깨끗한 가을바람에 씻어버립니다. 바람은 주님의 보혈을 날라줍니다.
사람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왜 그리 많은 사연들을 안고 사는 건지… 왜 그리 한 길도 안 되는 그 속이 그리 복잡한지… 좁은 속에 왜 또 그리 많은 서운함들은 구석구석 꾸겨 놓고 사는 건지… 그러다 잠시 후면 쉬 꺼져 버릴 인생이거늘 왜 그렇게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고 살아야 하는지….
그러기에 순결을 사모하며, 영원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은 복되고 복됩니다. 자주 자신을 씻고 영혼을 닦는 이들은 복됩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마음을 살피고 성찰하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바람의 유익을 알고 있습니다. 넉넉하신 주님의 은혜를 압니다.
39세에 주님을 만나 의사면허증을 찢어버리고, 30억의 전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홀로 20여명의 비행청소년들과 함께 살며, 생애의 후반전을 멋지게 치루는 박보영 목사님을 안수하셨던 할아버지 목사님의 유언이 생각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해라!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라!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겨라! 변명하지 말라!”
가을바람이 넓은 호수 너머에서 불어옵니다. 죄악을 날려버리는 성령의 바람도 불어옵니다. 그래서 주님 사랑으로 활활 타올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품을 수 없는 사람을 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불어라, 불어라! 바람아! 살을 에고 뼛속 깊이 시려도 좋으니, 불어라 바람아! 내 속에 꺼져가는 사랑의 불을 지피려무나. 다시금 활활 타오르도록 더욱 세차게 불어오라! 내 너를 환영하고 환영하니 어서 불어오너라! 나를 안아, 보고픈 주님 곁으로 날라다오!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으니 어서어서 나를 불어 예수님 사랑의 불 속에 던져 넣으려무나. 탈대로 다 타 재가 되도록 어서 불어 오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