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팥앙금을 해서 보내주시면 납작납작하게 펴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팥칼국수를 해 먹습니다. 처음에 결혼해서 팥죽에 칼국수가 들어 있는 것이 너무나 이상했는데, 지금은 아이들도 다같이 잘 먹는 별미가 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인가 사서 먹는 칼국수보다 집에서 직접 해 먹는 칼국수가 힘은 들어도 경제적으로나 맛으로나 우수하단 걸 알고부터는 반죽을 해서 곧잘 먹곤 합니다. 또 멸치국물 우려서 감자, 호박, 파를 넣고 끓여 먹는 수제비도 속을 후련하게 해 주는 별미 중 하나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부침개도 우리의 입맛을 당기곤 합니다.

이처럼 우리 음식문화와 너무나 가까운 밀은 성경 속에서 많이 등장합니다. 창세기 18:6에 아브라함이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대접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라는 고운 가루로 그들을 대접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밀가루입니다. 밀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식물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중요한 곡물입니다(신8:8). 하란 고원은 밀의 풍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11~12월에 파종하여 4~5월에 수확합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고 총리가 되어, 7년 풍년 때 곡물을 비축하여 다가올 7년 흉년을 대비하였는데, 그 때 비축한 곡물도 주로 밀이었습니다(창41:48).

고대 바벨론이나 시리아, 팔레스틴에는 관개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 강우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기근에 허덕이는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셉 때나 룻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관개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농사가 잘 되었기 때문에 기근으로 허덕이는 이웃나라들을 돕는 곡창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부는 나일강의 물로 재배한 밀의 선물이라고도 했을 정도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요12:24). 씨 뿌리는 비유에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마13:3~8)는 말에서 그냥 과장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밀은 보통 한 알에서 평균 30배의 수확이 되며, 옥토에서는 지금도 100배의 수확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은 바로 한 알의 밀과 같은 사명이셨습니다. 요한복음 12:24의 말씀의 표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썩지 않고 그냥 있으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한 알의 밀이 땅에 심겨져 썩어지면 그 결실을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한 알의 밀이셨던 예수님께서 죽음으로서 새로운 새 생명을 낳게 되는 천국건설 사업의 영혼수확 법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와는 너무나 상반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기보다는 얼마나 자기를 지키고 자존심을 세우는지 예수님의 말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멉니다. 나 하나 희생하면 가정이 평화롭고, 교회가 잘 되는 비결을 잘 알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못할 때가 많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의 삶이 우리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처럼 조금도 손해 보지 않고 주의 길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회생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경제적인 큰 어려움이나 육신의 질병이나 뜻하지 않는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이는 우리의 자아를 깨드리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입니다.‘나와 함께 죽으러 가자’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방망이로 찧지 않으면 밀이 반죽이 되지 않듯, 불쑥불쑥 올라오는 우리의 자아는 연단의 도가니에 들어갈 때 비로소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매순간순간 우리의 자아가 죽기 위해서는 광야연단이라는 과정을 꼭 거쳐야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해 늘 가슴 아파하는 삶의 현장에서 오늘도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바라봅니다. 썩어져 없어질 이 땅의 것에 연연해하지 말고, 비록 바람한 점 없는 뜨거운 태양 볕을 계속 걸어갈지라도 이 길만이 생명의 길이기에 끝까지 인내하며 달려가렵니다. 자아가 깨어질수록 빛과 어두움을 분별하여 빛의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알이 다 부서지지 않고서는 즉 자아가 깎여지는 고통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결핵 말기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하천풍언은 한 알의 밀이 되고자 고베 빈민가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철저히 밑닦이의 삶을 사셨습니다. 강도, 깡패, 도박꾼, 마약, 고아 등 빈대가 들끓는 그곳에서 그는 안락한 삶과 자신의 모든 공명심도 땅에 묻은 채, 오직 빛의 열매를 맺고자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깡패에게 얻어맞아 이빨이 부러지고, 단벌의 옷마저 빼앗기고 여자 옷을 입어야 했고, 폐결핵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다가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오후마다 고열이 났지만, 부모 없는 아이들하고 놀아주다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까지 가면 그제야 자리에 눕곤 하였습니다. 더 이상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그로 하여금 어떠한 손해나 희생이라 할지라도 감내하도록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관념, 체면, 위신, 명예, 권력, 인기, 건강, 부 등 모두 땅에 묻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자아가 다 깨어져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역경과 불 시험의 방망이로 두들겨 맞을 때마다 ‘나 죽기 싫어요. 살살 때리세요.’라고 아우성치기보다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주무르시는 반죽으로 점점 변화되어가길 소망합니다. 자아가 고운 가루처럼 빻아지지 않으면, 결코 빛의 열매를 30, 60, 100배 맺을 수가 없습니다.

곧 애굽 땅에 임했던 것 같은 전무후무한 대흉년(7년 대환난)이 우리에게 불어 닥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며 영적 훈련을 잘 받아야 하겠습니다. 영혼의 양식이 없어 허덕이며 갈팡질팡 헤매는 이들에게 누룩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무교병의 양식을 나누어줄 수 있도록 진리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영혼의 곡창지대인, 하나님이 영원히 다스리는 메시야왕국과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굳건히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