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골 마을 곳곳에서는 장 담는 냄새가 구수하게 피어오른다. 초봄에, 날벌레들도 아직 나오지 않고 더 이상 장독 깨지는 추위도 없을 때 마을은 분주해진다. 한 해 동안 먹을 장들을 담그려는 부지런함이다. 냄새가 사라질 즈음 뒷 뜰 장독대에는 담벼락 쪽으로부터 큰 항아리엔 간장이, 중 항아리엔 된장, 그리고 제일 앞쪽 낮은 곳엔 고추장 항아리가 선다. 물론 게으른 집엔 장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공장에서 만든 것들을 사 오면 끝이니 불편함은 없다.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들은 보는 모습도 그렇지만, 시골 아낙네들의 정성과 수고로움으로 더욱 정겹다.

어릴 적엔 왜 그리 이런 냄새가 싫었는지. 왠지 더러운 것 같고, 구닥다리 같고, 경제적이지 못한 미련한 수고로 여겨졌다. 간단하게 살 수 있는 것을 시간을 낭비한다고, 훨씬 더 싼데 인건비도 안 나올 것을 위해 투자할 필요가 있냐 하면서. 그곳에서 술래잡기하고 장독에 앉은 잠자리를 좇았던 정다운 추억은 다 잃어버린 채, 지금도 경제적 동물의 감각으로 이해타산에 분주하다. 그래서 남는 시간엔 무얼 할건가.

무엇보다 고맙고 소중한 건,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깨끗한 장으로 가족들을 건강하게 먹이려는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다. 여러 날 동안 메주를 띄워 그것으로 간장도 된장도 담고, 식혜를 만들어 메주와의 절묘한 배율로 고추장을 담는 수고는 1년 이상 가족들의 건강지킴이가 된다. 고마운 어머니들.

하지만 허리까지 다 집어넣어 장독을 힘써 씻는 모습은 이젠 점점 사라져 간다. 이 바쁘고 재빠른 시대에 그런 미련한 수고를 누가 하겠는가. 만든다 해도 맛을 더 내겠다고 콜라나 사이다를 붓는 신세대들은 오래 갈 수 없다.

그런데 이것과 비교도 안 되는 한없는 수고가 있다. 우리를 익혀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수고이다. 생짜배기 거칠고 못된 성질이 가득한 우리를 닦으시고 익혀 장처럼 깊은 맛이 나는 인격으로 만드시는 주님의 희생은 참으로 진하고 고귀하다. 역겨운 냄새를 오래 참으시면서 향긋한 내음으로 만들어 가시는 그 사랑은 값으로 계산할 수 없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사람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거룩하고 숭고한 작업이다.

씻다가 간혹 장독이 깨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이 정결케 하고 익히시는 작업을 거부한다면 어찌 될까? 그런 영혼은 주님을 팔아버린 가롯 유다처럼, 세상이 좋아 진리와 사명을 떠나버린 데마처럼 한없이 불행하다. 냄새나는 과정이 생략된 향기만을 꿈꾼다면 그것도 불행하다. 참고 견디면서 장인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을 좇는 것, 굳은 신뢰심으로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미련한 듯한 순박함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이 냄새를 향기로 바꾸시는 그분의 작품이 된다.

봄에 퀴퀴하지만 이런 구수한 냄새가 곳곳에서 났으면 좋겠다. 장맛은 손맛이라 하지 않던가. 우리를 담가 최고의 장을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면 그 맛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훗날 천국에서 주님 보좌 앞에, 맛깔스러운 향기 가득한 영혼들로 서서 주님을 기쁨으로 찬양할 날을 소망한다. 햇볕을 가득 받으며 가지런히 선 장독대의 항아리들처럼. 간장독, 된장독, 고추장독….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