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아! 세상이 좋아하는 것 좋아하지 말고, 세상이 구하는 것 구하지 말라. 내 영혼아! 세상을 따라 주를 멀리하지 말고, 사람을 두려워하여 주를 섭섭게 말자. 세상이 너를 버린다고 슬퍼한다면 세상의 환영 중에서 영생 얻을 줄로 생각했느냐!”

 

산유화 꽃망울이 활짝 터지는 봄날, 예수님의 향기를 진하게 날리며 밝은 빛, 좁은 길로만 달려가셨던 이용도 목사님(1901-1933)이 몹시도 그립다. 33년의 짧은 생을 사셨지만, 그분의 삶이 너무도 귀하기에 세월이 이토록 많이 흘렀음에도 이용도 목사님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 젊음과 열정이 가득했던 신학생 때, 변종호 목사님이 쓰신 이 목사님 전집 10권을 읽고, 가슴이 너무나도 벅차 삼각산에 올라가 밤새 울며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하나님 아버지, 저도 이용도 목사님처럼 주님께 미치게 하옵소서.” 목사님처럼 살고 싶은 마음에 이 목사님이 사셨던 서울 서대문 현저동 옛터를 찾아가 보기도 하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엎드려 자주 목사님이 기도하셨던 인왕산 바위에 올라가 목놓아 주님을 부르짖기도 하였다. 

60년 전 인천 내리교회 부흥회에서 이용도 목사님께 큰 은혜를 받으셨던 장로님 부부를 만났었는데, 장로님께서 “나는 일평생 신앙생활 하면서 이용도 목사님처럼 훌륭한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라고 고백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만남을 인연으로 장로님 내외랑 감리교 신학교에서 열리는 이용도 목사님 세미나에 함께 참석하여 이 목사님을 아시는 여러 목사님과 지인들도 뵙게 되었다. 목사님과 의형제처럼 가까웠던 이호빈 목사님의 회고담도 듣게 되었고, 이후 미국에 계신 김영철 목사님, 피도수 목사님도 만나게 되었다. 한 분 한 분 모두가 이용도 목사님의 삶과 인격에 깊은 감화를 받으신 분들이었다.

당시 106세로 연로하셨던 피도수 목사님은 목멘 목소리로 “나는 이용도 목사님을 만나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영적인 세계를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라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셨다. 옆에 계시던 둘째 따님이 심장이 좋지 않으신 아버지를 계속 만류하는데도, 피목사님은 “내 한가지 소원은 내가 만난 이용도 목사님을 한국에서 가서 전하는 거예요.”라며 말씀을 계속 이어가셨다. 비행기를 타기는 어려운지라 LA의 어느 신학교에서 집회 날짜까지 잡아놓았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집회를 열지 못한 게 지금까지 한이 된다. 

이용도 목사님을 그분들처럼 눈으로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목사님의 말씀을 읽고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냉랭한 내 가슴이 뜨거워진다. 먹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 일이나 직분 등 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오직 예수님께만 미쳐서 예수님을 부르면서 주님을 전하다가 죽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하루라도 빨리 신발도 전대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탁발하면서 저 만주벌판을 지나 압록강을 넘어 두만강을 건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서 죽든, 들판에서 죽든, 매를 맞아 죽든, 굶어 죽든, 얼어 죽든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다가 하루라도 빨리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아버지여, 나의 혼을 빼내시고 예수님의 혼을 넣어 나로 아주 미치게 하소서. 오, 주여, 나에게 육신의 평안과 생활의 평범을 거두어 주소서. 그리고 주님께서 몸소 받으신 고난의 생활을 나도 당해 볼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늘의 영광과 기쁨을 얻게 하소서. 오 주여, 나로 하여금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다만 주님과 주님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게 하소서.”

이용도 목사님은 주님을 사랑하기에 육신의 평안보다 늘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길 원하셨다. 또한 사랑을 아는 데만 그치지 않고,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는데 온 정력을 쏟으셨다. “이불속에서 있느니 가다가 죽더라고 주님의 길을 따르겠습니다.”라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지쳐 쓰러져도 말씀을 끝까지 전하셨고, 피를 토하면서 사랑을 외치시며 그렇게 사시려고 노력하셨다. 또 그렇게 사시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완덕을 향해 변함없이 좁은 길을 걸어가셨다. 신앙과 생활은 하나이고, 그 연결선은 사랑이므로 사랑으로 하지 아니한 모든 말과 행실은 상급 없는 허위라 하시며,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하셨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다른 노릇 다 하면서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노릇 다 그만두고 다른 생각은 다 내어 버리고서야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넥타이가 바로 매어졌나 해서 거울을 몇 번이고 보는 사람의 성경책은 먼지가 푹 쌓이게 됩니다. 얼굴에 바른 화장품 닦여지지나 않았나 해서 거울을 들고 다니면서 길에서까지 보는 여자의 마음에는 예수님이 안 계십니다. 교회까지 와서는 옷을 제대로 입었나 자꾸 잔등만 만지작거리는 그 마음속에는 주님이 계시지 못합니다. 누더기를 입고 세수를 안 했으면 어때요. 새 옷을 입어 곱게 차리고 옷에 정신이 빼앗겨 주님을 잊는 것보다는 마음대로 엎드리고 되는대로 뒹굴 수 있는 헌 옷이 주님에게는 얼마나 곱게 보이는가요. 

나에게 가장 원하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입는 옷 한 벌 그대로 손에 성경, 찬송가만 들고 끝없이 나그네의 길을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찬송하고 사람을 만나면 전도하고 저녁해가 서산에 지면 바윗 틈에서 마음껏 정성을 다해 기도드리다가 곱게 깔아놓은 잔디밭 위에 누워 고운 별을 바라보다가 주님 품에 잠드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

목사님은 겉치레와 허례와 위선을 매우 싫어하셨고, 순결과 고난과 가난과 아픔을 통해 진리를 더 깊이 깨우치길 원하셨다. “고(苦)는 나의 선생(先生), 평안할 때보다 고통 속에서 참된 진리를 배우고, 빈(貧)은 나의 애처(愛妻), 가난은 사랑하는 아내처럼 나를 떠나지 않고, 비(卑)는 나의 궁전(宮殿), 비천은 내가 처하여 있을 궁전이고, 주(主)는 나의 구주(救主), 돈, 학벌, 사랑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다.” 

세상의 평판이나 사람의 평가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으셨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조건 없이 사랑하시다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예수님처럼 무참히 버림당하셨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불편을 각오하는 것이고, 고난을 사모했기에 육신의 평안은 아주 멀리했다. 

“영이 평안하려면 육에 고통을 주라. 영이 귀해지려면 육을 천하게 하라, 영을 즐겁게 하려면 육을 슬프게 하라. 육신의 환난은 영의 비애니라. 먹어야 좋고 입어야 만족하고 남녀가 어울림으로 얻는 기쁨은 육의 속한 일이니라. 육에 죽고 영에 살고 땅에서 천하고 하늘에서 귀하자.”

‘육을 죽이고 영을 살려주옵소서.’라는 이용도 목사님의 고백이 속은 비고 겉만 거대해진 한국 교회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심령에 깊이 울려 퍼져야 한다. 예수님의 영성이 살아나려면 위대한 신앙인들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 교리보다 사랑을, 신학보다 삶을 강조하신 이용도 목사님의 신앙을 적극적으로 좇아야 한다. 고칠 것은 고치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어버리고 곧 오실 예수님을 간절히 소망하며 전진해야 한다. 

33년의 짧은 인생이셨지만, 누구보다 주님만을 사랑했고, 주님만을 위해서, 오직 예수님만을 닮기 위해서 피와 땀과 눈물로 거룩한 삶을 사셨던 목사님. 자신은 헐벗어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을 다 벗어주었고, 유학 가는 친구에게는 전세금을 빼주면서 사랑을 실천하셨던 목사님. ‘예수님의 피를 내게 주소서. 그래야만 내가 살겠나이다.’ 영적으로 메마르고 갈급한 내 심령에 불을 붙이고 거룩하고 순결하게 살라고 나를 깨우시고, 나를 울게 하신 목사님. 오늘도 그 목사님을 그리워하며 수도원 뒷마루에서 예수님을 목놓아 불러본다. 

“오 하나님 아버지, 예수만을 사랑하길 원합니다. 이용도 목사님처럼 제가 주님께만 온전히 미치게 하소서. 나의 전부이신 나의 예수님, 이 한 가지 소원이 저의 죽는 날까지 이루어지게 하소서. 할렐루야, 아멘”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