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 머무른 지가 오늘이 벌써 3일째다. 남자가 4천 명이라니 여자까지 합하면 만 명을 넘는 큰 수다. 진리의 핵심을 파고드는 예수님의 신비로운 교훈에 매료되어 따르는 군중들이다. 해가 설핏 기울고 노을이 진다. 제자들은 각 지방에서 몰려온 이들을 흩어 귀가시키려 서두른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일제히 부른다. 열두 제자를 소집하는 것을 보니 중대 사건인 것 같다. 저들을 이대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할 터이니, 먹여서 보내라는 명령이다. 먼 길 떠나는 군중을 굶겨 보낼 수 없다는 단호한 태도다(마15:32). 자비스러운 어머니의 불붙는 마음이다. 선물 받은 일곱 개의 떡과 두어 마리 생선이 있는지라, 나누어 준 결과는 또 감탄이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의 떡을 모으는” 풍요로운 하늘 잔치였다.

어느 외로운 노인이 죽음을 생각하니 두려움까지 밀려왔다. 길에서 어느 전도자가 건네주는 전도지를 받았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러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감화를 받은 노인은 교회에 나가보았다. 마침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어 좀 침통하다. 옆의 젊은이에게 “젊은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묻자 “할아버지, 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아닙니다. 지금 너무나 가슴이 아픕니다.”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허탈한 걸음으로 교회를 나왔다.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가까운 교회에서 경로잔치가 있으니 가보자고 말한다. 교회에 들어서니 음식도 풍부하고 어린이 재롱이 있고 흥겨운 잔치다. 음식을 나르는 부인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물었다. “할아버지, 지금은 바쁩니다. 맛있는 음식이나 많이 잡수세요.” 알고 싶은 예수님을 알려 주지 않는다. 노인은 집으로 오면서 “예수는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봐. 그 전도자를 만나면, 예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해야겠어.” 중얼거린다. 

예수님이 빠진 잔치, 거룩한 주일, 교회까지 왔어도 여전히 허기를 채우지 못한 채 슬픈 기색을 띠고 떠나가는 가련한 성도들, 이러다가 기독교 용사는 언제 배출할까? 자기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통절하게 느낀 하나님의 사람은 애타게 부르짖는다. 영적 무능으로 은혜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발버둥 치며 기를 쓰고 울어 댄다. 심령들을 소생시키고 영적인 기쁨을 풀어주어 맛보게 하려는 갈망으로 다음 같은 애절한 기도를 드린다.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시69:6).

주님은 풍성한데 왜 교회는 궁색기가 들었는가? 광야 40년에도 200만 명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만나를 풍성하게 먹었는데! 왜 오늘의 기독교인은 허약할까? ‘엔학고레’가 있다. 부르짖기만 하면 바로 터져 나오는 물 샘이다(삿15:19). 갈증으로 죽게 된 삼손을 살려낸 샘이다.

2023년에는 우리 가문에서 영적인 아사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친척을 일일이 챙겨라. 당신이 나설 차례다. 우리 교회에 생명의 샘물이 콸콸 흐르게 하라. 만백성이 어느  때나 와서 마시고 먹을 수 있는 요셉의 풍성한 창고가 되게 하라. 기도의 풀무 불을 일곱 배나 뜨겁게 달궈라. 저들을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