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아들이 신학교에서 믿음의 성장 과정에 대한 말씀을 듣고서는 “엄마, 어릴 때부터 연단의 복음을 들려주신 것에 대해 정말 감사를 드려요.”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큰 감동이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이 땅의 부귀와 성공을 좇는데, 자녀에게 하늘의 가치관을 심어주고 연단의 복음을 가르치는 것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고귀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모든 재산을 다 바쳐 교회를 세우고, 세 아들을 목사로 만드신 손종일 장로님은 신실한 믿음의 아버지셨다. 어느 날 아들 손양원이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교장한테 얼굴이 퉁퉁 부을 정도로 매를 맞고 돌아오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님, 이 부족한 것의 미천한 아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쇠는 두드릴수록 강해진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일에 사용하시기 위해 제 아들을 더 큰 망치로, 더 강한 힘으로 두드려 주십시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꾼이 될 때까지 망치질을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 손 장로님은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해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함을 일찍이 아셨다. 그래서 이 땅의 안락과 평안함보다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연단의 흔적이 있기를 더욱 간절히 원하셨다.

그리고 1940년 9월 신사참배 거부로 끌려가는 아들 손양원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셨다. “아비야, 누가복음 9장 62절과 마태복음 10장 37-39절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겨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도, 부모나 자녀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지 않는 자도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 네 목숨을 구차히 얻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주님을 위하여 네 목숨을 기꺼이 잃으면 얻게 될 것이다.”

이후 손 장로님에게 일본 경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들이 몹시 쇠약해져 죽게 되었으니 고집을 속히 꺾고 신사 참배해서 감옥에서 출소하도록 편지를 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 장로님은 “죽으면 죽었지, 신사 참배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하시며 단호히 거절하셨다. 그러자 소장은 부친의 편지가 왔다면서 신사 참배하라고 유혹하자, 손 목사님은 “내가 여기까지 온 것도 아버지의 가르침이었소. 내 아버지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소. 어디 편지 좀 봅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소장은 “이런 독사 같은 아버지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먼”하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 

손 목사님은 5년간 감옥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셨는데, 한 번은 사모님께서 큰아들인 동인이와 함께 면회하셨다. 마침 그때 목사님은 광주 교도소로 옮겨가는 중이었는데, 사모님은 남편을 향하여 성경을 펼치면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여보, 여기 이 말씀 아시지요? 신사참배에 응하면 내 남편 될 자격이 없습니다. 영혼 구원도 못 받습니다.”하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 목사님은 “염려 마오. 열심히 기도나 해 주구려.”라고 답하셨다. 이러한 모습을 본 동인이는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생겼다고 후에 고백했다. 

또 한번은 일본 경찰이 큰아들 동신이에게 신사참배를 하면 아버지 면회를 허락하겠다고 계속 유혹했다.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를 따라 들어갔는데, 마침 경찰이 딴 일을 하는 사이에 절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감옥에 계신 게 무엇 때문인데 하는 죄책감에 부친을 면회하는 장소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시는 손 목사님은 “울지마라 동인아! 우리가 이 땅에서 못 만나면 나중에 하나님 보좌 앞에서 만나면 되지 않느냐?”라고 하셨다. 

이후 온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큰아들 동인은 남해 깊은 산골로, 사모님과 막내아들은 장씨 집으로 그리고 둘째 아들 동신이는 나환자들이 사는 곳으로, 막내딸은 애린원으로 가게 되었다. 큰아들 동인이는 나무껍질, 산 열매 따위로 허기를 달래면서 지냈고, 둘째 아들 동신이는 나환자들과 비참한 생활을 하면서도 조금도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에 함께 지내던 고모가 잠에서 깨어나 보니 조카 동신이가 없어진 것이었다. 한참을 찾고 있는데, 산속에서 기도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하나님, 나약한 마음에 용기를 주십시오. 믿음으로 받는 고난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제게도 그런 담대함을 주십시오. 아버지, 어머니, 동인형과 같은 강하고 굽힘 없는 용기를 주십시오. 지금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으나 이 또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요 축복인 줄 압니다. 좌절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옵소서.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마다하지 않고 지겠나이다. 이제 저는 아버지께서 돌보시고 섬기시던 나환자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동안이 될지 알수 없으나, 저분들에게 폐가 되지 않고 오히려 신앙의 협력자가 될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저분들과 생활하다가 이 몸은 나병에 걸려 문둥이가 되어도 좋사오니, 다만 저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강건한 믿음을 내려 주시옵소서.” 당시 동신이의 나이는 15세였다. 

“기독교 신앙이란 연단을 통해서만이 더욱 밝아진다.”라던 손 목사님은 자신의 고난에 대해선 함구하셨다.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이나 한상동 목사님 같은 분들은 감옥에서 심한 고문을 당하셨는데, 아버지는 어떠셨어요?”하고 여쭈어보면 “나는 괜찮았단다. 감옥에서 아무 고생 없이 잘 쉬다 왔단다.”하실 뿐이셨다. 그리고 고난의 가치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여보! 나는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보다 욥의 고난과 인내가 더 귀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는 타락의 매개가 되었으나 욥의 고난과 인내는 최후의 영화가 된 까닭입니다. 죄악으로 얽힌 육체의 껍질을 벗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연단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며, 지상에서 두 번 돌아오지 못할 세상의 고난의 맛은 하늘의 천사도 부러워합니다. 부귀영화의 뒤끝은 다시 섭섭하나 고난의 뒤는 위로와 기쁨의 다음 차례가 되는 법입니다. 하물며 주안에서의 고난은 진리가 아니리요.” 

손종일 장로님은 만주에서 해방 4개월 전, 천장에 달린 줄을 붙잡고 밤새도록 기도하시다가 그대로 운명하셨다. 손양원 목사님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셨고, 그의 두 아들도 ‘하늘나라 밝은 길’을 부르며 용감하게 순교하셨다. 손 목사님은 감옥 안에서도 “갖가지 고난이여! 올 테면 다 오너라. 괴로움 중에 내 주를 체험하리라.”라며 참된 믿음의 길을 보여주셨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하늘에서 별과 같이 빛나게 된다(단12:3). 사도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하였다. 무명의 성도이고자 했던 어느 위대한 영성가는, 고난의 가치를 삶으로 드러내며 제자들에게 “연단의 불구덩이로 뛰어드십시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하늘의 소망을 갖게 하며,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케 한다(롬5:3-5). 수없는 연단으로 고통 가운데 있어도 두려워 말 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연단 받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값진 선물이며 축복이라는 것이다. ‘고난 없이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라는 손양원 목사님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에게 깊이 새겨지길 소망해 본다. 역경과 시험을 거쳐 단련된 믿음 뒤에 주님이 주시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기다리고 있기에 오늘도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