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 맞았던 시골의 시원한 바람이 더 좋아졌다. 몹시 추운 겨울의 삭풍은 소리만으로도 두려움이 일었지만, 봄철의 세찬 바람은 모든 풀과 가지들을 흔들어대며 춤추게 해 언제나 즐거운 손님처럼 반가웠다.

더구나 나뭇가지의 소란스러운 춤사위를 피해 용케도 날아다니는 경쾌한 새들의 비행은 몹시 부러웠다. 특히 제비의 물수제비를 뜨는 재주는 절로 경탄이 났다. 그래서 ‘나도 새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맘껏 가고 싶은 곳에 날아다니고 참 자유로웠을 거야….’ 생각했다. 그게 매우 부러워서일까, 종종 하늘을 나는 꿈까지 꾸었다.

좀 커서 영혼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땐, 상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읽으며 나도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처럼 높이 오르며 고고히 살리라 다짐했다. 바닷가에서 그저 종일 먹이나 주워 먹고 짝짓기에만 열중하며 자기 자리나 지키는 그런 갈매기는 되고 싶지 않았다. 짝을 위해 구애의 춤을 추며 동료들과 싸움까지 하는 그런 바닥의 삶이 아닌 높이 날아 멀리 보며 무엇보다 눈 부신 빛을 받으며 순백의 태양을 향해 비상하는 조나단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영혼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치로운 일이라 여겨졌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나 헤르만 헷세, 빅토르 위고,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의 작품에 심취했다.

그러다 영성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땐, 그야말로 생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땅이 갈라지고 바다가 뒤집혀 육지가 되고, 또다시 쪼개지고 융기되어 거대한 산이 되었다. 천지개벽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함이리라. 생의 모든 가치와 존재 의미와 목적이 완벽히 새로워졌다. 그동안 믿고 있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일치 합일이 가능하다는, 아니 하나님의 거룩한 뜻은 바로 그것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비상이라는 진실에 가슴이 벅차올라 더는 의문이나 다른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온전하고 진실한 것을 알면서 아직도 종종 어린 시절의 몽상이나 청년 시절의 지적 유희를 즐기려는 성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때때로 좁은 방이 답답하고 똑같이 이어지는 하루하루가 권태스러워서일까. 아니지, 거룩한 목표를 향한 소망을 잃은 까닭이다. 그것을 이루는 것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잊었기 때문이다. 

참된 소망은 확고한 신뢰에서 일어난다. 하나님에 대한 그 신뢰는 모든 것을 주기 원하여 아들을 희생시키신 그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 사랑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뢰이다.

그런 자는 골방 속에서도 자유롭다. 족쇄에 묶인다고 할지라도 그가 비상함을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다. 세상 그 어느 것도 주님의 사랑으로 부어 받은 그의 사랑을 흔들 수 없다.

오늘도 바람이 세차다. 어린 시절에도 청년의 때에도 불었던 바람이다. 이 바람 속에 지금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날아오르고 싶은 소망은 사랑하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부터 온다. 몸의 무게와 중력도 무력하게 하는 주님 사랑의 블랙홀, 빨아들이심이다. 그 사랑의 바람이 세찬 날에 날개를 편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