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간 퇴근하는 길, 버스를 타기 위해 서 있는데 체육복을 입은 남녀 학생들이 우르르 정류장으로 몰려왔다. 그때 한 여학생이 전도지 신문과 마스크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한 할머니께서 갑자기 호통을 치셨다. “빨리 줍지 않고 뭐하냐? 빨리 주우라니까. 얼마나 어렵게 준 것인데, 물건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지.” 그러자 여학생이 다소 귀찮다는 목소리로 “아. 네. 네에.”라고 답변하였다. 곧이어 버스를 타더니만 옆 친구에게 대뜸 하는 말이 “신천지인가 봐.”라고 하는 것이었다. 뒷좌석에서 여학생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데, ‘너는 뭘 하고 있느냐? 덕과 사랑으로 나를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며 내 어깨에 또 작은 멍에가 올려지는 듯했다.

무거운 멍에를 짊어지는 것은 쉽지 않다. 많은 인내와 수고와 섬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그 멍에는 가벼워진다. 내 힘과 능력과 재능으로, 물질과 건강으로, 의무감으로 감당하려면 무거운 짐이 된다.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던 베드로처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이 친히 일하신다. 우리 주님은 한 영혼을 찾아 친히 이 땅에 내려오신 가장 위대하신 사도이시다. 그러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꺼이 멍에를 짊어진다. 또한 손에 쟁기를 굳게 잡고 우리 주님처럼 자기 부인의 길을 걷는다. 

허드슨 테일러는 17세 때, “나를 위하여 중국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 기꺼이 가겠다는 고백을 드렸다. 그리고 즉시 육체적 고난을 겪어야 하는 삶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깃털 침대를 매트리스로 바꾸었으며 음식을 먹을 때도 자제하기를 연습했다. 편안한 숙모 집을 떠나 가난한 항구도시 헐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곳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2년간 교제하며 사랑했던 연인이 결별을 선언하였다. 그때 유혹자 마귀는 속삭였다. “왜 하필 머나먼 중국을 가려 하느냐? 일생 의무감의 노예로 수고하고, 멍에를 짊어지고 고통의 길을 자청하는 이유가 뭐냐? 지금 포기하라. 아직도 늦지 않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다.” 그는 슬픔을 달래며 긴 시간을 홀로 울었지만, 주님 앞에 나가 모든 흉금을 털어놓고 교제할 때,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받는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어머님, 저의 열심에 대해서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선교사의 일이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가족과 이별하고 멀리 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서 우리가 가진 것을 포기할 수 있을 때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얼마나 선교사가 되기를 갈망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그에게 합당한 신부감을 주셔서 함께 중국선교를 하게 되었다. 그가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 북쪽 지방의 어린아이들이 수천 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었고, 처녀들은 종으로 팔려 남쪽 도시로 떼 지어 실려 가고 있었다. 테일러는 이들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힘을 쓰며, 그 빈민가를 찾아가 엄마 노릇을 할 여자 지원자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테일러는 부인에게 말했다.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나에게 먼저 이런 마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당신과 아이들이 멸망해 가는 수백만의 이곳 영혼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영생을 누릴 사람들이 아닙니까?” 

십자가의 멍에를 기쁨으로 지는 이들을 통해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시작된다. 그 멍에를 짊어질 자를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신다. 

내 열정은 어떤 장애물을 만나거나 고통이 닥치면 쉽게 사그라지지만,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은 절대 식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열심이 다시 내 안에 가득 부어져 기쁨으로 멍에를 지고 갈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11:28-29).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