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고백
왕권을 강화한 솔로몬은 다윗의 소망에 따라 성전을 건축한다. 성경은 성전건축을 일컬어 출애굽 한 후 480년 만의 역사적인 일임을 말하고, 솔로몬 재임 기간의 가장 큰 업적으로 보여준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과 친분이 있던 두로 왕 히람과 함께 성전건축을 위한 재료를 모으고 일 할 사람들을 준비한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탈출한 지 480년,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년 만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7년 만에 성전을 완성한다. 성전을 건축해서 하나님께 봉헌하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솔로몬이 드린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한다.
열왕기상을 보면, 성전을 완성한 후에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맺은 약속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셨음에 감사한다(왕상8:23). 아버지 다윗 왕이 부탁한 일이었지만(대상22:11)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했고(대상22:8-9), 약속을 지킨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또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라는 말로 성전보다 크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이어서 “하나님이여 만약 내 백성이 이러저러한 죄악을 저지르고 나서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하면 그 기도를 듣고 그들을 용서해주소서”(왕상 8:30, 34, 36, 39, 50)라는 기도를 드리며 백성 편에 선 선하고 지혜로운 왕의 면모를 보여준다.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에 자신이나 민족을 자랑하며 교만한 마음에 빠지지 않고 모든 중심에 하나님과 백성을 두며 겸손하게 엎드린다.
이스라엘이 이웃에게 범죄 한 자를 용서해 달라, 이스라엘이 적국에게 패해서 주께 돌아오면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 범죄로 인해서 이스라엘에 가뭄·기근·전염병·병충해·재앙·질병이 들었다가 죄를 떠나면 그들을 용서해 달라, 적국에게 포로로 잡혀갔다가 그 땅에서 회개하고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면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기도 중에는 이방인들을 위한 기도도 등장한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알게 되고 성전을 향해서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를 들어 달라고 기도한다(왕상8:41-43). 영광의 순간에 드려진 기도의 내용은, 겸손하고 진실했으며 아름답고 사랑이 넘쳤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기도요 고백이었다.
하나님의 성전, 교회
솔로몬의 고백에 이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말씀하신다.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고백에 응답이라도 하듯 솔로몬 성전에 대해, 눈과 마음이 항상 머무는 거룩한 곳이 될 것이란 축복의 선언을 해 주신다.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이른바 성전을 청결하게 하는 일이었다.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할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고 있는 당시 종교인 지도자들을 향한 날카롭고 거룩한 선포였다. 기득권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비판이며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신 사건이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성전은,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모여 예배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이다. 바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인 성전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오늘날 교회를 세우신 이유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다. 교회가 감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이다. 그 일을 위해 교회를 지켜내야 했고, 그것이 성도의 절개로 이어졌다.
개역성경에 교회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클레시아’(ekklesia)로 ‘부름받아 나온’, ‘부르심’, ‘택함 받은’ 등의 뜻이다. 신약에서 교회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후 예수님께서 교회가 세워질 것을 말씀하실 때 처음 사용되었다(마16:18). 초대교회는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의 기도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이 생겼고 교회가 시작되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령 충만했고, 은사를 행하며 복음을 전파했고 교인수도 늘어갔다.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하지만 박해도 더해졌다(행5:17-42).
오늘날 대부분 교회는 초대교회가 당했던 극심한 박해를 받지는 않는다. 오늘날의 교회가 초대교회와 다른 점이며 초대교회처럼 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박해가 있을수록 성도는 강하여지고 성령충만 하게 된다. 박해를 통해 순전한 교회를 완성해 가기 때문이다.
신앙의 절개로 사는 교회
1945년 8월 19일 해방 후 처음 맞이하는 주일, 5년 동안 닫혔던 산정현교회 예배당 양쪽 문이 시원스럽게 열렸다. 출옥성도들은 물론 산정현교회 강단을 그리워했던 수많은 교인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오정모 사모 옆에는 주기철 목사 장남인 주영진전도사도 앉아 있었다. 예배는 시종일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복구된 산정현교회 당회는 한상동 목사를 주기철 목사 뒤를 이을 담임목사로 청빙하였고, 방계성, 주영진전도사를 전임 교역자로 시무토록 했다.
사택에서 쫓겨나 셋방을 전전해야 했던 주기철 목사 가족들에게 적절한 예우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집을 마련해 주고 땅을 사줘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당회와 제직회는 오정모 사모에게 내용을 전달했으나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마음은 정말 감사하나 그 같은 교회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물질을 의지하면 신앙이 약해지는 까닭이요 둘째, 그 돈을 받으면 저는 남편을 팔아먹은 여인이 되기 때문이며, 셋째, 아비를 팔아서 혜택을 받아 자라는 자식들은 병신과 같은 정신 상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절대로 받을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오정모 사모는 절대 주기철 목사의 이름을 팔아서 혜택을 보거나 출세를 하거나 잘살아 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네 아들들에게도 누누이 강조하였다. 비록 오정모 사모의 완강한 태도로 가족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하는 일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주기철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일만은 반드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다수 교인들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주기철 목사의 순교 기념비와 동상을 교회 정문 앞에 세우고 그를 추모하는 기념관을 설립해 후세에 길이 기념하도록 하자는 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이때도 오정모 사모는 나서서 이를 결사반대하였다. 이번에도 교회는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정을 번복하였다. 그 대신 돌박산 공동묘지에 있는 주기철 목사 묘소 앞에 자그마한 순교 기념비를 세우게 되었다. “기독교인 주기철 목사 순교 기념비”라고 쓰인 비석 위에 빨간 십자가를 그려 넣었고, 뒤에는 가족들의 이름을, 좌우편에는 성경구절과 약력을 기록해 두었다.
얀 후스(Jan Huss, 1373-1415)는 옛 체코 보헤미야의 후시네츠에서 태어났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면제부 판매를 비판하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받아 1415년에 화형을 당했다. 그는 순교 현장에서 “지금 당신들이 거위 한 마리를 불태우지만 한 세기가 지나면 태우지도 끊이지도 못할 백조를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100년이 지나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평양신학교 실천신학교 교수였던 곽안련(Charles A. Clark, 1878-1961) 박사는 주기철 목사를 후스와 루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1941년 8월에 조선을 떠나 미국에 도착한 후 이런 글을 남겼다.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은 평양에 있는 언덕 위의 평양에서 가장 큰 교회 중의 하나, 아름다운 벽돌 예배당의 주기철 목사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지난 5년간 거의 모든 시간을 감옥 안에서 보냈고 셀 수 없을 만큼 매를 맞았음에도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했다.
'주기철의 일사각오 순교신앙' 발간사에 기록된 내용들로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기록들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성전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우신 교회들을 돌봐주시면서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성전 되기를 바라신다. 주기철 목사님과 같이 일사각오로 세상을 이기는 헌신된 삶을 촉구하신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머무는 거룩한 전으로 우리 몸을 드리고, 축복의 통로로 날마다 세움을 입기를 소원한다.
이순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