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셨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신다(마6:33). 그리하면 이 모든 것(차선의)을 저절로 얻는다고 하시며 풍성해지는 비법을 말씀하셨다. 서기관의 얄궂은 질문에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는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핵심적 순서임을 선포하심으로 비중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을 알려주셨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소원은 언제나 버금으로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우선순위 일 번으로 두셨기에 하나님께 기쁨을 드렸고, “다 이루었다!”하시는 후회 없는 승리자 그리스도가 되셨다. 여호와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를 찾은 사울은 안타깝게도 왕위와 목숨을 유지하지 못한 채 버림을 받았고(대상10:14), 회복할 기회를 주고 싶으신 하나님의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자백만 하면 되었을 것을 잡아떼기로 일관한 가인은 지옥 불 화염 속에서 얼마나 가슴 치며 통곡하고 있을까.

어느 날 교수가 항아리를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교탁 위에 그 그릇을 놓고 미리 준비된 큰 돌을 책상 밑에서 하나씩 꺼내어 거기에 가득 넣었다. “이젠 다 채워졌나?” 묻는 말에 학생들은 “예!”라고 답을 했다. 이어 교수는 조그마한 조약돌을 꺼내어 사이사이로 집어넣어 아귀까지 메웠다. “다 찼을까?”하는 질문에 속지 않으려는 학생들은 “글쎄요”라고 답을 했다. 교수는 다시 모래를 꺼내어 부었다. 사이 사이로 “쏴” 하며 빈틈을 메워가며 입까지 덮었다. “이제는 다 찼지?”하는 답변 요구에 “아니요!”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마지막으로 교수는 물통을 집어 물을 부었다. 막힘없이 그릇에 부어졌고 넘쳐흘렀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지혜로운 스승은 황금 교훈을 던졌다. “작은 것부터 먼저 채우면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큰 것부터 저장하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환상 중에 지옥에 떨어지는 인간이 얼마나 많은지 함박눈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것을 목격한 분도 라브르는 세상 영광을 즉시 포기하고 13년간 수도사로 고행하면서 주님만을 흠모하며 살았다. 짧은 35세 생애에도 전 로마시를 감동시킨 거지 성자로 숨을 거두었고, 보다 더 나은 진지한 인생을 설계하라고 절규하는 것 같다.

쓰레기 같은 불순물을 삶의 시간 속에서 그리고 선교 현장과 교회 내에서 처리해야 할 순간이 된 것 같다. 교회의 우선순위 일 번이 선교와 구제라면 차선에 불과한 운영비를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짜인 차선 때문에 최선의 선교를 못한다면 차선은 최선의 적이 아닐까. 어서 바꾸라. 주님의 호령이 무섭지 않은가. 눈을 뜬 후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예수님의 심정을 품고 주의 일에 가담하자. 자신의 생애가 조각가의 예술품처럼 향기롭고 보람된 생애로 풍성한 삶을 누리자. 

대기업에 들린 어떤 나그네가 기업의 대성공 비결이 있다고 제안하면서 거액을 요구했다. 실행해 보고 돈을 주겠다고 약속을 한 후 과연 그 방안이 회사에 획기적인 발전이 된 것을 본 사장은 엄청난 대금을 선뜻 지급했다. 그 비책은 회사의 일과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행하라는 평범한 상식이었다.

예물을 드림보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 하신다(마5:24). ‘먼저’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라(롬12:10)하시며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셨다(막13:10).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최선, 급선무가 있다. 극상품 포도 열매를 기대하시는 분이시다(사5:2). 최상의 종자와 자료를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이동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