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과거의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만 남기려는 심리를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고 한다. 일종의 기억 왜곡 현상으로 과거를 실제보다 아름답게 포장하여 추억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므두셀라가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회상할 때 좋은 기억만 떠올리고, 좋았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는 낭설에 의해 므두셀라 증후군이라는 표현이 탄생했다. 주로 60대 이상 노년층에 잘 생기는데, 현실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과거를 미화하고 추억하는 것은 비단 노년층에게만 생기는 병은 아니다. 아담의 후손인 타락한 죄인들은 늘 과거를 미화시키고자 한다. 우리의 거울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틈만 나면 노예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워했다.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수 있도록 내버려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는 낫겠습니다.(14:12).

성경은, 애굽 시절 이스라엘 자손은 고통하고 탄식했으며, 모세를 따라 나온 그들의 발걸음은 누구의 명령도 아닌 자신들의 의지였음을 기록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현실의 어려움이 닥치면 옛 기억을 변형시켜 위안 삼는 죄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애굽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기억이 생생한데, 부추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만나 밖에 없구나”(11:5-6). 누가 이 투정이 전직 노예들의 것이라고 생각이나 하겠는가. 어떤 전과자도 감옥시절의 식단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억상실증 환자들은 애굽에서의 삶에 어떠한 고통과 억압도 없었던 듯이, 비이성적으로 불평하며 모세와 하나님을 괴롭게 한다.

때때로 예수님을 만나기전, 주님의 제자로 가까이 따르기 전의 삶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해내어 한참을 품고 있는 나또한 다르지 않다. 곱씹고 곱씹다보면 어느새 주님 없이 즐거웠던 그때가 마치 인생의 행복이었던 양 그리워하고 있다. 현재의 고난은 이전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비성경적인 추론도 서슴지 않는다. 넉넉했던 물질, 풍요로웠던 인간관계, 편안하고 안락한 환경 같은, 마음에 드는 조건들을 조합한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 내는데 재주가 좋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었던 일들을 마치 자신의 업적인 양 되새기기도 하는 이 어리석은 회상은 현재의 감사를 빼앗아 가며 다가올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기대하지 못하게 한다.

사실 성령의 빛으로 조명해 본다면, 과거는 죄와 불순종으로 가득한 부분이 훨씬 많다. 특히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상태는 오직 은총이 아니었다면 회생하지 못할 끔찍한 모습들이다.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며 흐뭇한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회개와 감사의 제목뿐이며,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곱씹을 가치는 없는 듯하다. 지나간 과거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고, 다가올 미래는 섭리에 맡기며, 오늘 내게 주신 사명에 충실 하는 것만이 살길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앞만 보고 달려갔던 사도바울은 누구보다 자랑거리가 많았다. 로마 시민권자로 많은 혜택을 누리던 젊은 시절, 가말리엘 문하에서 석학들과 어깨를 겨누며 공부하던 일들은 애써 미화하지 않아도 뿌듯한 과거였음이 분명했다. 주님을 만난 뒤의 그가 이룬 일들은 또 얼마나 대단했나. 감옥에 갇히기 전에도 그의 행보는 전무후무한 전도자로서 추앙받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바울은 분명히 선포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아직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여러분에게 한 가지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내가 과거의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목표를 향해 힘껏 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3:13).

천국 푯대를 향해 부름 받은 자는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상만을 바라보며 달려가야 한다. 마귀는 과거에 매여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 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는다. 추억에 젖어 과거를 미화하다가는 사단의 꼬임에 빠져 경주로에서 이탈하기 십상이다.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며 감사드리는 것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원토록 할 일이다. 지금은 오직 허락하신 경주를 힘껏 달리자. 때론 무거운 짐처럼 옭아매는 지나간 일들까지도 떨쳐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며 믿음의 선한싸움을 싸우자. 푯대를 향하여!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