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여행

여행이 설레는 이유는 새로운 것을 접한다는 것도 있지만, 매였던 것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해방감이 있다. 부는 바람 따라 두둥실 날아올라 어디든 갈 수 있는 솜털 씨앗은 여행자들의 꿈과 같다. 그러기에 진정한 여행자들은 묶이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자유여행을 원한다. 게다가 이런 청명한 가을이 오면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해진다.

젊은 시절 헤르만 헤세의 『피터 카멘친트』를 읽으며 자유가 부러워 나도 사과 한 개와 빵 한 개를 호주머니에 넣고 한없이 걸었던 적이 있다. 어느 날은 맨발로 흙길을 걸으며 별을 보기도 하고, 부드러운 풀숲에 그냥 눕기도 했다.

아! 자유만큼 갖고 싶은 것이 있을까. 그래서 창공을 날고도 싶었고, 마린보이가 되어 바다 속 탐험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맘대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자유가 어느 때부터인가 오히려 구속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못 해서 답답하고, 그런 시간을 어떻게 해서라도 갖게 되면 다시 묶이게 될 것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자유가 아닌 자유. 자유가 아닌 자유를 꿈꾸며 사는 부자유한 사람들.

가을은 구름을 보며 바람을 맞으며 떠나는 여행을 꿈꾸는 계절이다. 사람 반 나무 반인 단풍 여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두려운 올레 길을 말함도 아니요, 빚을 져가며 떠나는 해외여행도 아니다. 그저 가까운 농촌길이어도, 이름 없는 뒷산이어도 분주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위해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께서 만드신 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떠나는 여행이라면 어디든 멋진 가을 여행이 된다.

내면으로의 여행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어느 날 조용히 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가만히 고요함 중에 안으로 걸어본다. 곳곳에 삐죽이며 내밀었던 모난 돌들을 보며, 무언가에 찔려 패이고 곪았던 자리도 보며, 숨겨있던 가시도 냄새나는 벌레도 찾아본다. 그리고는 창을 열어 주님의 밝은 햇살을 받으며 서운함, 놓지 못한 욕심, 무절제함, 육적인 그리움, 게으름 등의 먼지들을 가을바람에 날려 보낸다. 그리고 더 깊이 영혼 속으로의 여행을 나선다. 더 높이 하늘로의 여행을 떠난다.

가을 여행은 도보여행이어야 좋다. 천천히 걸으며 이곳저곳을 살피는 여행이다. 바람소리 속에 실려 오는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여행이다. 붉은 단풍이 얼굴에 묻고 투명한 햇살이 살갗에 스치는 가을은 여행을 떠나야 한다. 주머니에 사과 한 개 집어넣고 숲으로 가자. 땀 내음 물씬한 논둑길을 걷자. 하늘을 담은 호숫가에 앉자. 깊은 숨을 쉬며 깨끗한 냉기가 찰 때까지 호흡하자. 그곳에서 서러움이 감사함으로 바뀔 때까지 나오지 말라. 사랑의 눈물이 터질 때까지 기다려라. 죽어도 좋을 은혜를 부으실 때까지 하늘을 보라. 가을에 떠나는 여행은 아름답고 눈부시다.

박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