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설교하는 최첨단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교회와 목회자를 바라보는 기독 청년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충격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 달라’는 요구다. 성경적 진단과 해법이 필요하다.  


청년의 일갈

10월 초 국민일보가 ‘희망터치: 챗GPT와 다음세대’를 주제로 개최한 ‘2023 국민미션포럼’에서 김현아(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국장의 일침이다. “청년들은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교회와 목사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데 항의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사실 아니냐.”며 “교회와 목회자들이 계속해서 이러한 우리 사회의 시선과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고 흐린 눈으로 모른 척할 때 사회성이 결여된 채로 점차 도태되고 말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30대 여성 국장의 입을 통해 청년들의 눈에 비친 한국교회의 민낯을 접한 300명가량의 교회 지도층은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미디어에 넘쳐나는 기독교에 대한 조롱과 멸시에 억울해하고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중견 목회자들의 반응과는 상반된다. 

최근 국민일보 이명희 종교국장의 칼럼을 접하면서 청년들이 생각하는 교회의 현주소가 이 정도라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와중에 세계 도처에서 AI성직자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독일 바이에른주의 성바울교회에서는 챗GPT를 통해 구현된 AI(인공지능)목사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설교하였다. 

현재 세계적으로 종교AI가 확산 추세이다. 2019년 일본 교토의 고다이지 사찰에서는 안드로이드 로봇 관음상 ‘마인다(Mindar)’가 25분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법요를 진행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서 있는 AI로봇 앞에 승려들이 무릎 꿇고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라니 공상과학 영화가 현실로 다가온 듯하다. 

소프트뱅크 로보틱스는 일본의 불교 장례식에서 염불을 외우는 로봇 ‘페퍼(Pepper)’를 개발했고, 독일 개신교회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축복기도를 해주는 로봇 ‘블레스투유(BlessU-2)’를 공개했다. ‘쳇 주님AI’는 이용자의 다양한 고민과 질문에 조언을 해주거나 성경구절과 기도문까지 작성해주고 있다. 

올해 초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의뢰해 19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21%인데 반해 74%가 불신한다고 답했다.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낮아지는데 챗GPT 등 첨단기술은 성직자의 고유영역마저 넘보고 있는 현실이다. 이대로 가면 사람 대신 AI목사가 대세를 이루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AI보다 영성을

모든 분야에 AI가 대세다. ‘세상을 바꾸는 힘’의 저자, RPI 총장인 셜리 앤 잭슨이 미국 대법관 존 로버츠에게 “법정에서 AI판결을 보는 날이 올까요?”라고 묻자, 그는 “그날이 이미 왔다”고 답했다. 근래 법원에 대한 불신과 함께, 사람보다 AI가 공정한 재판을 하리라는 기대로 AI재판에 대한 요구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AI는 학연과 지연과 뇌물에 신경 쓰지 않고, 24시간 일해도 지치지 않고, 지위고하 막론하고 눈치를 보지 않고 정파에도 휘둘리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원리로 AI성직자를 원하는 것일까. 한국교회만 해도 목회자들의 교파 갈등과 분쟁, 돈과 이성과 세습 등 심심찮게 비리가 보도되었다. 세상이 AI성직자를 원하는 것은 기성 성직자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교회 세속화의 주된 원인은 부요해진 환경 때문이다. 초대교회를 생각해보라.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재산몰수, 목숨까지 위협을 받아야 했고, 그야말로 춥고 배고픈 열악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교회가 깨어있어서 마귀의 올무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목회자들은 청빈과 순결과 순종의 주님을 본받아 탁월한 영성으로 모범이 되었다. 

4세기 중엽 안디옥 출신 요한 크리스소톰은 당대 최고의 변호사로서 큰 명성과 부를 얻었다. 그는 많은 재물과 명성으로 날마다 친지들과 어울려 세상 향락을 마음껏 향유했지만, 내면은 공허해졌다. 어느 날 크게 회심하고 예수님을 본받고자 변호사직을 내려놓고 신학을 배우게 되었다. 

예전 생활을 멀리하고 더 깊은 영성생활을 위해 규칙적인 기도, 철저한 절제와 금식, 재산마저 모두 소외된 이웃에게 베풀었다. 그의 영성과 인품이 알려지면서 안디옥교회의 감독이 되었지만, 단 벌과 맨바닥에서 잠을 자는 등 더욱 엄격한 극기와 경건생활에 정진했다. 그런 가운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누렸다. 

이후 콘스탄티노플교회가 그를 감독으로 초빙했는데, 부유한 다른 감독들과는 달리 감독관의 값비싼 물건들을 팔아 가난한 병원에 기부하고 빈자들을 구제했다. 성직자 중에 교회법을 어겨 치부하거나 방탕한 이들은 파면시켰다. 급기야 그의 철저한 삶과 강력한 설교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황금의 입’이란 별명처럼, 그가 이 타락한 도시를 향해 철저한 회개를 촉구하는 강력한 설교는 사치와 향락에 젖은 상류층의 폐부를 찔렀다. 

견디지 못한 유독시아 황후는 동조자들을 모아 요한에게 반역죄를 씌워 감독직을 박탈하고 유배형에 처했다. 그는 3년 동안 걷는 유배형 끝에 60세로,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린다’는 말을 남기고 소천했다. 

그가 비록 가진 모든 것을 버렸지만 오직 주님 한 분만은 소유했기에, 로마제국의 황제도 그의 설교에 떨었다.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으나 세상과 타협하지도 인연에 얽매이지도 않았던 영성의 소유자였다. 양심을 밝히는 말씀을 싫어했던 이들이 그를 죽였지만, 하나님은 황후를 먼저 데려가시고 그녀의 아들이 새로운 황제가 되어 부모 대신 참회하고 요한의 명예를 회복시키도록 하셨다. 

그의 빛된 삶은 지금도 영성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진한 향기로 남아있다. 첨단기술에 밀려나 성직의 고유영역까지 침범당하는 현실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3:11)을 주셨다고 했는데, 주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주의 종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어 안타깝다.      

다행인 것은 영성만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인 것이다. AI의 위협 속에 한국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면서 청년들이 기대하는 교회로 변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해답은 영성이다. 낡고 굳어버려 희망을 보여주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오명을 벗고 ‘다음 세대’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과 동행할 수 있어야 하겠다. 목회자들의 영성의 향기에 취한 청년들이 다시 모이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