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재림의 날, 그날이 언제일지 모르니 늘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성경의 경고는 모든 성도가 늘 새겨야 하는 말씀이다. 이에 맞는 마지막 때의 징조들은 무섭게 우리의 현실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임박한 주의 재림과 대환난을 준비하지 않고 허송세월로 대책 없이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은 각성해야 한다.  


총체적 난국

지난 8월 전북의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잼버리는 해당 부처의 안이한 대응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폭염으로 인해 한낮에는 바깥에서 몇 분도 못 버틸 지경이었지만, 피할 그늘도, 음식도 부실했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엉망이었으며 해충은 들끓었고 잠자리도 진흙탕에 빠진 수준이었다. 급기야 조기 퇴소하는 몇몇 나라들도 발생했다.

김남중(국민일보·문화체육부) 기자는 이런 생존마저 위태로운 환경에 놓였던 ‘새만금 야영장의 아이들’이 현재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의 모습처럼 보인다고 했다. 마치 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위에서 생존의 위기에 몰린 인류의 모습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는 것이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가 다급하게 위기를 경고하고 있지만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위기를 공감은 하는데 정작 기후대응은 아직도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 해법은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 사용량을 줄여가는 동시에 모든 에너지원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신재생에너지로 바꾸면 된다. 하지만 이 단순한 해법을 실현하기가 너무 어렵다. 경제 성장이라는 신화를 깨뜨려야 하고, 눈앞의 선거가 최우선인 정치적 논리를 넘어서야 하고, 국제간 자국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 문제, 대홍수, 가뭄, 화산대폭발, 초대형산불, 폭염, 재해, 붕괴….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기후문제는 모두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지만 누구에게도 당장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어렵다. 기후문제는 정부, 정당, 지방자치단체, 기업을 망라한 총체적 대응에 나서야만 하기에 인류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인류의 딜레마

한편 대책 없는 딜레마란 점에서 교회들도 닮아있다. 이상기후현상을 계시록 8장에 나오는 첫째부터 넷째 나팔 불어질 때 나타나는 자연전체의 1/3가뭄재앙의 전조임을, 임박한 대환난의 경고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 주님께서 공중강림 하실 때 휴거되기 때문에 자신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7년대환난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믿음이 성경적인 근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번 기울기 시작한 대세는 돌이키기가 어려운 법이다. 이렇게 글로벌 안전불감증에 걸린 21세기의 인류는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대심판을 맞이할 운명인가보다. 

불현듯 주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마24:44-46).

지금은 주의 재림과 대환난이 심히 임박한 말세지말이다. 이런 때에 필요한 양식은 무엇일까. 성경은 성화(聖化) 즉 ‘익은 열매가 돼야 천국 곳간에 추수된다’(막4:26-29)고 증거하고 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이 복이 있다’고 하셨다. 자칫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고 생활에 대한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노후문제에 집착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것이다. 지금은 내 부족함과 죄 때문에 애태우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는 말세지말이다. 


깨어 있으라

카타리나(이태리·시에나)가 10대 시절 동정서원을 하여 가족들로부터 심한 핍박을 받은 적이 있었다. 가족들은 그녀가 빨리 시집가도록 만들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일만 시켰다. 그녀는 이런 거친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한 미움, 원망, 불평하는 마음 때문에 심히 괴로워했다. 가끔 악심 때문에 언행으로 죄를 범하기라도 하면 정죄의식이 가득차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애태우고 아파했다. 주님을 본받아 정결함을 사모하는데 왜 이런 악심이 자꾸 올라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괴로운 심정을 안고 “도대체 주님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탄식했더니, 갑자기 주님께서 “네 안에 있느니라”고 대답하셨다. ‘아니 이렇게 더러운 내 마음속에 주님이 계시다니’ 얼핏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죄 때문에 몸부림치며 애태우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긴 말씀이었다. 사실 자기의 부족함과 죄 때문에 애태우는, 고민이 없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잠든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현실에 얽매여 죄 때문에 괴로워하는 마음이 생기려고 하면 다 쫓아버린다. 이런 죄의식은 약자의 마음이라 치부하며 외면해버린다. 그러나 이런 애태우는 마음과 겸손이 있기에 주님께서 기뻐하신다. 반대로 내가 부요하다고 생각하면 이런 마음이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 자신을 깊이 성찰하여 철저히 회개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주님은 구원받았다고 다 휴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온전히 닮은 성도,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성도들만 추수하신다. 재림하실 주님은 성도들이 성화되기를, 깨끗한 예복을 준비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를 바라신다. 성화된 성도들, 익은 열매만 추수되어 천국 곳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교회시대 동안에 정결해지지 못한 성도들은 대환난에 들어가서 나머지 연단을 받으며 자아가 깨어지고 정결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한국은 새만금에 지구촌 청소년들을 초대해 세계잼버리대회를 열었다. 하지만 부실한 준비와 안이한 대응, 폭염과 태풍이 겹치면서 야영장에서 조기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인류는 이 야영장을 닮은 지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주님은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이상기후현상을 통해 인류에게 경고하고 계시다. 그리고 주의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줄 지혜롭고 충성된 종은 누구인가?’ 물으신다.   

지난 캐나다의 초대형산불과 하와이 마우이 섬의 비극은 하나님의 대심판과 불지옥을 연상시켰다. 앞으로 더 더운 여름, 더 잦은 기상재난이 우리의 지구야영장을 습격할 것이다. 심판주로 오실 그분은 경고하신다.

“아무나 들림받는 것이 아니다. 나는 거룩한 신부들을 맞이하기 위해 내려갈 것이다. 너희는 충분한 기름과 등불을 준비하고 있느냐?”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