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도 출생기, 유아기, 성장기, 장년기, 노년기를 거쳐 죽음을 맞듯, 인류의 문명과 역사도 시작과 끝이 있다.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원치 않든 원하든 지금은 말세지말이다. 주님 오실 때가 매우 가까웠다. 마지막 때에는 선으로 익은 알곡은 천국 곳간으로, 쭉정이는 불타는 지옥으로 던져져 영벌을 받게 될 것이다. 

2023년 여름, 지구촌 인구 81%가 지난 7월 폭염을 경험했다는 연구 분석 결과가 나왔다.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여름이 올 것이다. 폭염과 폭우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가뭄, 산불 그리고 겨울 폭설까지 이상기후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난 몇 년간 온 세계가 몸살을 앓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후 팬데믹’을 맞을 날이 머지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백신을 통해 치유됐지만 기후 팬데믹은 고칠 수 있는 백신이 없다. 지구는 망가지면 끝이다. 기후뿐만이 아니다. 마지막 때를 알리는 신호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그때에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흐르고 돈을 사랑하고 뽐내고 교만해지고 악담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무자비하고 남을 비방하고 무절제하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만으로 부풀어 있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할 것이며”(딤후3:1-4). 

악에 치달아 하나님의 심판이 선고되었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백성들. 극상품의 포도를 심었건만 온갖 썩은 들포도를 맺으며 점점 멸망 길로 나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하나님의 고독과 외로움과 눈물을 보았던 예레미야 선지자. 악한 현시대를 바라보며 흘리실 우리 주님의 피눈물과 고통과 아픔이 보이는 듯하다. 

세상의 것은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들의 풀들처럼 시든다. 이집트 문명은 일찍이 나일강의 자연조건을 잘 활용하여 고대 근동의 문화를 선도했고, 부를 이루었다. 파라오는 자신의 부와 권력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며 피라미드를 세웠지만,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북이스라엘도 여로보암 2세 때 전성기를 이루었다가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고, 남유다도 다윗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 활짝 폈다가 후대에 결국 바벨론에 의해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그러나 극악무도했던 앗수르 군대도 하루아침에 18만 5천명이 죽어 나갔다(사37:36).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하루밤에 수많은 쥐 떼가 나타나 앗수르 군의 활과 그 밖의 무기를 갈기갈기 쪼아 놓았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는 성경의 예언대로 홍수가 범람해 도시 위로 6m 토사가 쌓여 깊은 땅속에 묻혀 버렸다. 

난공불락의 성을 자랑했던 바벨론은 고대 근동의 작은 도시 국가로 이루어졌던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했고, ‘황금 제국’으로 불렸던 페르시아는 헬라에, 온 세계를 제패했던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는 말라리아로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맞이했고, 헬라는 로마에 의해 무너졌다. 강력한 철의 나라, 대제국 로마도 야만족인 서고트족에 의해 폐망의 길로 들어섰다. ‘제국이여, 영원하라’는 구호를 외쳤으나 모두 하나같이 멸망했다.  

12사도, 사도 바울 등의 선교로 기독교가 지중해 세계로 확산된 이래, 초기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제국의 반역자, 종교의 적, 사회에 해를 끼치는 자라는 누명을 썼다. 어떤 이는 원형 경기장에서, 십자가에서, 화형대에서 그리고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맹수들의 밥으로 던져졌다. 이때 수많은 기독교인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햇볕 하나 들지 않는 어둡고 습한 지하동굴로 숨어들었다. 신앙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하늘의 해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이들이 짐승의 밥으로, 화염 속에 휩싸여 죽어갔지만, 그때의 기독교가 가장 순수했고, 생명력이 넘쳐났다. 

마침내 수많은 박해를 지나 콘스탄틴 대제가 AD313년 기독교를 국가종교로 인정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때부터 기독교는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교회 건물은 점점 커져 왕궁처럼 변했고, 가난했던 성직자들은 귀족들이 즐겨 입는 화려한 옷을 찾았고, 성도들도 안일함에 젖어 들었다. 박해가 없어지고 많은 특혜를 누리다 보니 교회는 점점 사치와 안락에 빠져 기득권자들의 대변자로 전락했고, 그들의 액세서리와 같은 종교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유럽 교회는 더 이상 기독교 사회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의 쇠퇴를 경험하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70%가 되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20%대로 줄었다. 현재 유럽 전체 인구의 5% 정도만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한 실례로, 영국은 지난 30년 동안 5천여 개의 교회가 문을 닫고 체육관, 술집과 나이트클럽으로 대체되고 있다. 일 년에 세 차례(부활절, 성탄절, 성례식 주일)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그래도 신앙을 유지하고 있는 교인으로 분류된다. 유럽 교회는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스스로 복음을 포기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가 국교였던 러시아는 교회가 부유해지자 성직자들과 대지주들이 서로 결탁하여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착취하면서 혁명이 일어났고, 사회주의로 전락하며 기독교도 쇠퇴했다. 청교도 정신을 자랑했던 미국의 교회들도 경제적인 부와 명예를 좇자 점점 노인들만 모이는 곳이 되어 가고 있다.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학교가 사라져가고 있다. 작금의 현실에 해외로 파송된 선교사님들 중 다시 한국에 역으로 선교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워하고 계시다. 예수님의 청빈과 순결과 순명의 정신을 잃어버리니 기독교가 점점 쇠퇴기로 접어들고 있다. 

‘살륙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렘9:1) 밤낮으로 울었던 예레미야 시대처럼 점점 악으로 치닫는 시대가 되었다. 아니 그보다 더 악한 세대이다. 하나냐와 같은 거짓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이 세상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달콤한 속삭임에 속지 말자. 성경에 나타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알리야 운동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고, 적그리스도가 준비되고, 다니엘이 말한 바 교통과 지식의 고도의 발달로 전 세계가 자연재해, 기후변화 등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우리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시면 익은 열매를 추수하시고, 죄악 세상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대환난으로 반드시 심판하시고, 메시아 왕국을 열어주실 것이다. 

그날과 그때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지만,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주님이 오심을 깨어 준비해야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궁핍과 핍박과 갇힘과 외면이 따를지라도, 마지막 때 임박한 심판을 적극적으로 알리며 거룩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울자! 드리리다. 드리리다 이 목숨이나마 주님께 드리리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느냐? 나는 저 칼날을 향하여 나아가리라.”고 담대히 외치며 전진했던 주기철 목사님처럼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신앙을 위해 하늘의 해를 포기했던 저 카타콤의 믿음의 선배들처럼, 주님의 나라를 위해 세상의 것을 적극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외쳤던 세례요한처럼, 부드러운 옷이 아닌 거친 옷과 거친 음식을 먹으며, 척박한 광야 같은 생활을 살아내야 한다. 

아침 이슬과 같이 사라질 헛된 세상의 부와 명예에 조바심 내지 말자. 배부르고 편안하면 주님과 멀어진다.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만이 영원하다. 주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대충대충 버리고, 적당히 믿어서는 안 된다. 전무후무한 환난에 우리의 믿음을 굳게 지키고 하나님 앞에 서려면 지금부터 크고 작은 고난들을 참아내야 한다. 이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했던 예레미야의 외침과 눈물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척박한 사막을 묵묵히 걸으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길을 평탄케 했던 세례요한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박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