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마저
요즘은 특별한 일도 없는 일상인데 괜히 지친다. 시간이 갈수록 영적으로 성장해야하는데 쉽게 변화되지 않는 나를 보는 것이 괴롭다. 공동체의 작은 의무도 무겁게 느껴지고, 주 사역인 믿음의 선진들의 생애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는 일도 할수록 마음이 무겁다. ‘저들은 내 나이일 때 하나님을 위해 그토록 위대한 일들을 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살지 못할까?’ ‘뜨거웠던 나의 첫사랑과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답 없는 질문들을 던지며 괴로워하고 있다.
마음이 곤고해질 때면 찾아보는 ‘강아지 똥’이 생각나 교회에서 함께 모여서 보자고 제안했다.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아이들은 왜 이렇게 유치하고 지루하냐며 보는 내내 푸념이고, 청년들은 연신 하품을 하며 2배속으로 보자고 한다. 그런데도 난 꿋꿋이 눈물을 참으며 봤다. ‘강아지 똥’을 보면 깊은 맘을 거울로 비추는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은따’를 당한 적이 있다. ‘은따’는 ‘은근히 따돌림’의 줄임말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은따’ 당하는 줄도 몰랐다.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나만 생일파티에 초대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운한 마음에 다른 친구에게 찾아가 왜 그 아이가 나를 초대하지 않은 거냐고 살짝 물어봤다. 친구는 네가 ‘은따’를 당하기 때문이라고, 너는 친구들 집에 가면 TV만 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때부터 나는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고, 그것이 목회자인 아버지가 집에서 TV를 못 보게 한 탓이라고 원망했다.
중학생이 되어 ‘은따’의 기억이 잊혀질 즈음, 삼수생이었던 반 친구 두 명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빠른 생년이라 나이도 어리고 키도 작고 통통한 내가 귀엽다며 쓰다듬은 것이 시작이었지만, 장난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졌다. 급기야 쉬는 시간만 되면 나를 불러서 구석으로 몰아 꼬집고 찔러댔다. 수업시간에 한마디만 하면 대놓고 인신공격을 하며 창피를 주기도 했다. 나는 점점 소심해지고 친구들 앞에 서는 것이 불안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 친구들의 괴롭힘에 겨우 벗어나게 됐지만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억눌려져 있을 뿐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넓은 세상에서 인정받고 높임 받는 일들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내가 해낸 일들은 자만하게는 했지만 두려움과 불안에서 해방시켜주진 못했다. 유일하게 가장 편안하고 만족할 때는 하나님 앞에 있을 때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안에 있으면 존재 자체로 인정받아 가장 만족하고 따뜻했다. 평생 하나님 안에만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며 주님의 사역에 뛰어들었다.
뛰어나게 잘하는 일은 없어도 뭐라도 하려고 노력하며 분주한 나를 교회 안에서 인정해주었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 내 행복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일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달란트가 많다며 교만을 조심하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하나님 안에만 거할 수는 없는 것이 나란 존재였다. 교만보다 더 깊은 내면엔 두려움이 있었고 때로 사람들의 평가와 세상의 기준 앞에 나를 세워놓고 은따 당하는 초등학생처럼, 친구들 앞에 창피를 당할까 두려운 중학생처럼 불안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전엔 ‘강아지똥’을 보며 그저 이런 나의 처지가 이입되어 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외의 장면이 다가왔다. 하필 강아지똥 앞에 민들레가 피어났다는 것, 그리고 강아지 똥이 거름이 되어주기 위해 온전히 녹아졌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아지 똥이 하나님의 귀한 존재라고 한들, 그 앞에 민들레가 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거름이 될 수 있었을까. 또한 아무리 똥이라지만 강아지 똥은 자신의 마지막 남은 이름인데, 그것마저 포기하고 거름으로 녹아지는 노력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민들레의 대사는 꼭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렸다. “내가 꽃을 피우려면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단다. 그것은 너의 도움이란다. 네가 나의 거름이 되어주어야만 내가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어.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것이란다.”
하나님은 미련하고 천한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일꾼으로 불러주셨다. 뿐만 아니라 더러운 나의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귀하다고 여겨주셨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제 나같이 천한 자도 귀하게 여겨주시는 분께 기꺼이 자신을 바치라고 하신다. 하필 더러운 나에게 하나님의 진리라는 꽃을 활짝 피워 전 세계로 흩날리는 아름다운 사명을 허락하셨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그런데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선 나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내려놓으라 하신다. 더럽고 추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박하영이라는 옛사람 말이다. 그것까지도 내려놓고 온전히 죽어져야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이뤄지는 것이다.
강아지 똥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민들레와 강아지 똥이 꼭 껴안는 장면이다. 이제는 나도 내 앞에 피어난 민들레를 꼭 껴안고 싶다.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마저 버리는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고 싶다. 하나님나라의 온전한 밑거름이 되어 아름다운 꽃씨를 흩날리는 그때까지.


박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