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초, 주님과 함께 날아가고파

얼마 전 푸른 빛 맑은 바다를 낀 한 섬에서 귀엽고 예쁜 덩굴식물 풍선초를 보게 되었다. 하얀 꽃을 피우는 데 어찌나 작은지 가만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더구나 오후쯤엔 꽃잎을 닫아버리고 숨어버린다. 그 작은 꽃들이 지면 작은 씨방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씨방은 정말 풍선이라도 불듯 시간이 지나며 점점커지기 시작한다. 언뜻 꽈리모양과 흡사하기도 하지만, 씨방의 모습은 하트 모양의 입체이다. 진녹색의 껍질이 노릇하게 익어감과 동시에 씨방에서는 씨앗이 땡글땡글 영글어 간다. 다 익은 씨방의 열매를 열어보면 콩알만 한 씨앗의 중앙에 또렷한 하얀색 하트가 있다. 하트를 품은 씨앗에 눈 코 입을 그려 놓으면, 모양이 꼭 아이 얼굴 같다.

“어린 시절의 재미, 당신과 함께 날아가고파”라는 꽃말을 가진 풍선초는 씨앗 중앙의 흰 부분이 하트모양으로 되어있어서 “heart-seed”라 부르기도 한다. 잎을 빻아서 종기에 붙이면 부기를 감소시키기도 한다. 풍선초의 꽃은 매우 작지만 향기가 참 진하다. 풍선덩굴도 사방으로 빨리 뻗어나간다. 동심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처럼, 풍선초 하나를 터트리면 퍽하고 소리가 나서 어린이들 놀이로도 좋다.

껍질도 하트, 알맹이도 하트. 풍선초는 온통 사랑인가보다. 그러고 보니 풍선초는 누구에게 사랑해 달라고도 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떠들썩거리지도 않지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듯하다. 사랑의 씨앗을 품고 저 하늘 높이 곧 날아오를 것만 같은 풍선초를 한참 들여다보니 마음이 맑아진다.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비한 사랑의 숨결이 느껴진다.

“하나님의 사랑이 나와 함께 자랐습니다.” 예수 아기의 성녀, 작은 꽃 데레사(1873-1897)의 말이다. 그녀는 매우 짧은 생애를 사셨지만, 영적 어린이의 길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불태우며 완덕에 이르셨던 분이다. “영적 어린이의 길은 신뢰와 사랑의 길입니다. 저의 사명, 그것은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듯 사람들도 주님을 사랑하게 하고, 저의 작은 길을 영혼들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완덕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 나는 한 가지 방법밖에 모른답니다. 그것은 사랑뿐이에요.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순간, 그 유일한 순간들을 이용합시다. 매순간, 순간만을 바라봅시다. 그것은 보물입니다. 한 번의 사랑의 행위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더 잘 알도록 해 줄 것이며, 영원한 그분께 다가서게 해 줄 것입니다.”

어린이로 있다는 건, 자기가 뭘 좀 할 것 같아서 실천한 덕을 가지고 제 것인 양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대로 쓸 수 있게 어린이의 손안에 쥐어 주신 하나님의 보화인줄을 바로 알아보는 것이다. 또 자기의 실패와 약함을 보아도 실망치 않고, 자신은 잊혀 지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작은 꽃이지만 진한 향기를 내는 풍선초처럼, 그녀는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작은 덕행들을 찾아서 은밀하게 실천하였다.

수녀원에 자기 식대로 일하기를 고집하고 성가시게 하는 약간 괴팍스러운 수녀가 있었다. 이 때문에 모두가 그녀를 꺼려하며 피해 버렸지만, 데레사는 매일 몇 시간씩 일을 도와주었고, 그녀가 지시하는 대로 모든 것을 다 해주었다. 불쾌감이 들 때마다 그 수녀에게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오랜 기간 그 일을 계속하였다. 공동 일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힘들고 분주한 몫을 언제나 골랐으며, 가장 덜 편한 자리를 택함으로서 남들이 그 자리에 가지 않도록 해 주었다. 추운 겨울 동료 수녀의 부주의로 더러운 물이 튀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남들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대지도 않고 불편한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오해로 인한 핀잔에도 변명을 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랑이 아니었다. 하트를 마음에 품은 그녀는 매순간순간 모든 이들에게 진실한 사랑으로 다가갔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며 단순하게 하나님께 바치었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랑, 머리 따로 가슴 따로인 사랑. 이기적이고 편협적인 나의 거짓된 사랑, 시기와 교만으로 가득 찬 자기중심적인 사랑, 여전히 계산적인 사랑으로 인해 난 아직 주님과 함께 저 영원한 나라로 날아오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세상의 모든 소유를 아낌없이 몽땅 비워야 하는데, 주님이 오시는 그 날 날아오르기는커녕 영혼이 너무 비대해서 금방이라도 뚝 떨어질 것이 뻔하다. 알맹이는 물론 겉 행실도 아직 사랑의 모양조차 갖추지 못했으니 말이다.

나의 마음 밭에 성령의 맑은 물도 뿌려주시고, 따뜻한 빛의 말씀도 비춰주시고, 보혈의 피로 상처 난 종기(자아)도 치료해주시고, 세상의 부기인 욕심도 순간순간 가라앉게 해주셨건만, 여전히 심령 안에 사랑을 새기는 일에는 더디니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애달프실까.

우리 주님은 드러나는 많은 사업 활동보다 숨어서 되는 작은 일을 기뻐하신다. 많은 일보다 겉과 속이 같은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랑을 원하신다. 풍선초를 들여다보며 다시 한 번 마음에 사랑을 품고 주님께로 힘차게 날아 올라가야겠다는 결단을 해본다. 겉과 속이 온전히 정결케 되어 예수님의 사랑이 영안에 새겨져 흰옷을 입는 그날까지. 정말이지 사랑의 씨앗을 품고 높이높이 날아올라 순결한 어린아이로 주님 품에 안기고 싶다.

이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