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빌려드릴까요

교회 사역을 하면서  17, 16, 8살의 트리오 형제들을 만났다.  8살 아이는 집에 몇 번 가서 함께 밥을 먹다보니 친해졌다. 셋 중 막내라 그런지 먼저 말도 걸고, 뭘 하면 호응도가 가장 높은 편이다. 반면 두 녀석은 수다쟁이 아줌마처럼 이름을 부르고, 질문 공세를 퍼부어야 한마디 답변을 해준다. 그런 이유인지 막둥이의 재잘거림이 싫지만은 않다.

이 형제들과 만나면 만날수록 점차 고민이 쌓여간다. 아빠와의 갑작스런 사별로 인하여 생활터전에 뛰어든 어머니. 그로인해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아이들. 그들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특히 8살 막둥이는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시기인데, 며칠에 한번 꼴로 엄마를 만나니 마음이 짠하다. 호기심 많고 말수도 늘어갈 시기에 얼마나 마음이 춥고 힘들까.

바람도 점점 더 차가워지는데. 어둑해진 저녁, 그들의 집을 나오는데 막둥이가 공부방에 가야 한다고 따라 나왔다. 나서자마자 자연스레 내 차가운 손을 잡았다. 처음엔 고사리 같은 손이 닿자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손이 좀 예민한 편이다. 손에 뭐가 묻으면 찝찝해서 당장 씻어야 하고, 자주 비누로 손을 씻는 편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막둥이는 내 손을 자연스레 잡고 얼굴에 함박꽃을 피웠다. 아이의 손에서는 하루 종일 놀고 씻지 않은 냄새와 감촉이 느껴진다. 뿌리칠 수 없이 내 오른손엔 고사리 같은 손이 포개졌다. 어느새 손도 마음도 따뜻해지면서 사랑의 꽃향기가 한참 내 곁을 맴돌았다. 아이의 마음이 궁금해져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아이가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절 사랑해 주세요. 전 아직 사랑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예요. 전 사랑에 굶주려서 춥고 배가 고파요. 저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줄 수 있나요?”

공부방 앞에서 신나게 손을 흔드는 아이와 작별인사를 한 후 혼자 걷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복잡하게 들었다. ‘나의 사랑과 관심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 아이들에게 의무가 아닌 진심을 담아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해야 하는데, 나는 얼마만큼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예수님과 마더 데레사의 손이 떠올랐다.

마더 데레사는 인도 켈커타 빈민가에서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다. 얼굴엔 깊게 패인 주름과 기도하기 위해 모은 손은 말발굽처럼 거칠고 딱딱했다. 그녀는 자신의 두 손을 평생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사용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루어놓으셨다.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많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낮아지셨다. 문둥병 환자의 몸에 손을 얹어 기도해주시고, 냄새나고 천한 앞이 보이지 않는 거지의 눈에 진흙을 발라 눈을 뜨게 해주셨다. 굶주리고 있는 오천 명에게 떡과 고기를 떼어 나눠주셨고, 고결한 손을 모아 습관적으로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하셨다. 순간 나도 그분들의 발뒤꿈치라도 따라가는 숙제를 받았다는 생각에 감사가 흘러나왔다.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자선 사업가였던 오드리 헵번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이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맡겨진 숙제를 훌륭하게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마음은 접어두고, 주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대로 힘을 다해 보잘 것 없는 내 손을 스스럼없이 내밀어 보자. 내 작은 손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몽당연필이길 바라면서.

허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