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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선교] 최고의 선교 동역자
먼 훗날까지도 미리 알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 선교지에서 더 확연히 깨달아진다. 혼자서는 선교 사역을 원만하게 감당할 수 없음을 선교 현장에서 새삼 느끼고 있다. 선교는 동역자가 꼭 필요하다. 모국과 달리 주변에 동질감을 느끼며 깊이 대화할만한 사람이 없는 외로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모국과 다른 환경을 힘겨워하는 배우자 혹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녀들 때문에 외롭게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나 하나님을 따르는 주의 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식사 준비가 서툰 남자 독신 선교사들은 끼니를 자주 거르다 보니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혼자이기 때문에 겪는 영적, 정신적 문제다. 현지인과 접촉하며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마주치는 문제들과 낯선 나라에서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좋지 않은 감정들이 쌓이게 된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익숙한 모국어로 깊이 있게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현지어에 능통하다 해도 한계가 있기에 현지인들과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대화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는 온갖 황당한 일도 겪는다. 시골 사역지에서, 한 기혼 여성이 자신을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아 달라며 선교사에게 은밀히 접근하는 일이 있었다. 무지와 가난 때문에 또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이 올바르지 않아 생기는 일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나태하거나 잘못했을 때는 서슴없이 견책도 할 수 있는 동역자가 필요한 곳이 선교지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의 지혜를 모아 의논을 거친 후 대처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수도사의 경우도 한 사람은 힘들지만 팀을 이루어 동역할 때 더 큰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본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이 아닐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좋은 선교 동역자를 내게 주셨다. 한국에서부터 함께 오랜 세월 동안 동고동락해 온 사모이다. 선교지에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사모가 선교사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덕분인지 언어 습득력이 뛰어나 내가 설교할 때나 대화할 때 틀린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언어에 재능이 없는 내가 부족하나마 크메르어로 설교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사모와 언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분명 주님께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적성에 따라 역할을 분담한다. 식사와 빨래는 사모가, 청소나 세차 등은 내가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적, 육적 트레이너가 되어 매일 말씀 읽기와 기도, 30분 이상 걷기를 독려한다. 가끔 답답할 때는 메콩강변에 나가 차를 마시기도 한다.
좋은 선교 동역자를 얻은 것은 분명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인간적으로 충족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보내신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선교 동역자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항상 서로 붙들어 주어야 하고, 견책이 필요할 때는 사심 없이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상담자로서 공감하며 삭막한 선교지에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힘들 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묵묵히 사명을 완수하도록 돕는 역할, 그것이 바로 동역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고집을 부려 다투기도 하지만, 이내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아시기에 서로 채우고 협동해 선교라는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예비하신 동역자임을 깨닫고 감사드린다. 또 동역자인 사모를 잘 섬겨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빚을 져서 갚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오늘도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선교사, 좋은 동역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달려간다.
박이삭 선교사(캄보디아)
먼 훗날까지도 미리 알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 선교지에서 더 확연히 깨달아진다. 혼자서는 선교 사역을 원만하게 감당할 수 없음을 선교 현장에서 새삼 느끼고 있다. 선교는 동역자가 꼭 필요하다. 모국과 달리 주변에 동질감을 느끼며 깊이 대화할만한 사람이 없는 외로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모국과 다른 환경을 힘겨워하는 배우자 혹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녀들 때문에 외롭게 사역하는 선교사들도 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되나 하나님을 따르는 주의 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식사 준비가 서툰 남자 독신 선교사들은 끼니를 자주 거르다 보니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혼자이기 때문에 겪는 영적, 정신적 문제다. 현지인과 접촉하며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마주치는 문제들과 낯선 나라에서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좋지 않은 감정들이 쌓이게 된다.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익숙한 모국어로 깊이 있게 대화하고 공감할 수 있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현지어에 능통하다 해도 한계가 있기에 현지인들과 같은 정서를 공유하며 대화하기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는 온갖 황당한 일도 겪는다. 시골 사역지에서, 한 기혼 여성이 자신을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아 달라며 선교사에게 은밀히 접근하는 일이 있었다. 무지와 가난 때문에 또 도덕적 윤리적 가치관이 올바르지 않아 생기는 일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서로 위로할 수 있는, 나태하거나 잘못했을 때는 서슴없이 견책도 할 수 있는 동역자가 필요한 곳이 선교지다. 그리고 어떤 문제에 부딪쳤을 때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의 지혜를 모아 의논을 거친 후 대처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수도사의 경우도 한 사람은 힘들지만 팀을 이루어 동역할 때 더 큰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본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이 아닐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좋은 선교 동역자를 내게 주셨다. 한국에서부터 함께 오랜 세월 동안 동고동락해 온 사모이다. 선교지에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은 사모가 선교사의 재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교에서 영어를 전공한 덕분인지 언어 습득력이 뛰어나 내가 설교할 때나 대화할 때 틀린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언어에 재능이 없는 내가 부족하나마 크메르어로 설교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사모와 언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분명 주님께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적성에 따라 역할을 분담한다. 식사와 빨래는 사모가, 청소나 세차 등은 내가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적, 육적 트레이너가 되어 매일 말씀 읽기와 기도, 30분 이상 걷기를 독려한다. 가끔 답답할 때는 메콩강변에 나가 차를 마시기도 한다.
좋은 선교 동역자를 얻은 것은 분명 축복이고 감사할 일이다. 인간적으로 충족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보내신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선교 동역자는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항상 서로 붙들어 주어야 하고, 견책이 필요할 때는 사심 없이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상담자로서 공감하며 삭막한 선교지에서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힘들 때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며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묵묵히 사명을 완수하도록 돕는 역할, 그것이 바로 동역자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고집을 부려 다투기도 하지만, 이내 하나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아시기에 서로 채우고 협동해 선교라는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예비하신 동역자임을 깨닫고 감사드린다. 또 동역자인 사모를 잘 섬겨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빚을 져서 갚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오늘도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선교사, 좋은 동역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달려간다.
박이삭 선교사(캄보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