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도 얼마 전 한파 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새벽의 기온이 영상 20도에서 17도 정도 떨어질 것이라고 추위에 대비하라는 예보다. 이러한 날씨는 12월과 1월에 열흘 정도다. 북반구에서 온 우리에게는 꽤나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런 서늘한 날씨 탓인지 요즘 주변에 나이가 많은 노약자들이 다른 때보다 많이 사망한다. 오랜 세월을 열대지방에서 적응하며 살아온 이들에게는 이 정도의 기온도 힘든지 두꺼운 점퍼를 껴입고 다니기도 하고 체크무늬가 있는 캄보디안 스카프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많이 보게 된다.
현재 캄보디아에는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때로는 사역지가 겹쳐서 선교사 간에 분쟁이 발생한다. 그래서 선교사회가 단체 카톡방을 만들어 중요한 정보나 선교사회 소식을 주고받는 창구로 운용하고 있다. 카톡 회원이 400명을 넘겼다. 물론 가입을 안 하고 활동하는 선교사도 많다. 선교사 숫자가 많다보니 단체 카톡방이 바람 잘날 없다.
얼마 전 어느 선교사는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켜 프놈펜에 있는 병원에 갔으나 여기의 의료시스템으로는 치료가 불가하여 인근 국가인 태국으로 응급용 비행기로 초를 다투면서 긴급 수송한 일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거의 중계하듯이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소식을 주고받는다. 현대사회 SNS(사회관계망)의 위력을 보는 것 같다. 한 여자 독신선교사는 자신의 차를 몰고 주일 아침 사역지를 가다가 메콩강을 도강하기 위하여 바지선에 승선 중 차가 강물에 추락하는 바람에 유명을 달리한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어느 선교사는 자동차를 몰고 시엠립에 약속된 세미나를 인도하기 위하여 급히 가는 도중 원치 않는 사고를 일으켰다. 안타깝게도 12살 된 현지 어린이가 현장에서 사망을 했다. 전하는 말로는 피해자가 갑자기 도로로 튀어 나왔다고 하는데 정확한 상황은 알 수가 없다. 선교사가 선교국가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정말 난처하고 황당하기 그지없다. 그 사건도 카톡으로 즉시 기도요청과 함께 공지사항으로 모든 선교사들에게 전달되었다. 빠른 사고 수습과 대처 방법에 대해서 이런 저런 조언들이 카톡에 올라왔다. 그런데 내용들이 한결같이 어떤 방법을 써야 경찰서에서 빨리 풀려 나올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피해자의 슬픈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제 식구 감싸는 식으로 사려 깊지 못한 글들이 올라왔다. 한국인의 약삭빠른 기질이 비록 선교사라 해도 예외 없이 나타나는 듯하다.
이런 가난하고 엉성한 후진국에서는 돈이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법과 정의나 인권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건처리에 경험이 있는 한국교민이 현장에 달려가서 돕고 하여 그 가해 선교사는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바로 풀려났다. 물론 돈의 힘이다. 이곳의 현지인들 간에 사망사고 시에 보상금이 아주 헐값이다. 그리고 외국인이 가해자인 경우 비교적 많은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 가해 선교사의 석방소식이 알려지자 어느 선교사는 나팔을 부는 이모티콘과 함께 “할렐루야, 축하합니다!” 글을 올렸다. 이건 아니다 싶어 나도 글을 올렸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불행한 사고들과 고난은 비록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마귀들의 역사로 발생했다 할지라도 일단 그런 일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해야 할 귀중한 생명이 도리어 우리 선교사들의 기도 부족으로 인해 희생되었음을 생각하고 지금은 모두 회개하면서 자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어서 어느 선교사도 슬픔을 당한 현지인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선교사들의 태도와 언행에 대해 다소 분노하며 질타의 글을 올렸다. 그런데 그 선교사 자신이 8년 전에 교통사고로 이곳 캄보디아에서 아들을 잃었다고 한다.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외출했는데 행방불명이 되었고 며칠 후에 절에서 시신을 찾게 되었다 한다. 이 나라의 무질서하고 위험한 도로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여기는 연고자가 없는 시신은 모두 절에 가져가서 화장을 한다고 한다. 다행히 화장 직전에 겨우 시신을 찾은 것이다. 아들의 시신을 보는 순간 그분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힘들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스러운 일들의 초점을 어디다 맞추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달라진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영적으로 유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악한 자에게도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분이다.
박이삭 목사(캄보디아 프놈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