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태우는 마음으로 회개할 때


 최근 계속된 집중호우로 팔당댐 주변이 남·북한강 상류에서 떠내려 온 쓰레기가 녹색 이끼와 어지럽게 뒤엉켜 거대한 쓰레기 섬이 되었다고 한다. 팔당호 주변의 쓰레기더미 사진은 내 영적인 모습은 과연 어떨까 하는 마음을 저절로 품게 하였다.


쓰레기더미

지난 7월 한 달만도 쓰레기 860t이 유입돼 수도권의 식수원 역할을 하는 팔당호 수질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물이 빠지는 취수구 주변엔 빗물에 쓸려온 나뭇가지와 옷장 등 가구류, 신발, 스티로폼, 부탄가스통, 폐타이어 등이 둥둥 떠다녔다. 악취가 코를 찌르고, 날벌레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우리의 심령에 쌓이는 죄성과 정욕에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육적인 쓰레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정과 교회, 신학교, 선교회 및 우리가 속한 단체들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회개하고 버려야 될 쓰레기는 얼마나 될까?


철저한 회개생활

쓰레기가 쌓일수록 오염도는 높아지고 악취가 심해지고 처리비용도 늘어난다. 쓰레기를 제때에 처리하지 않고 방치해두면 나중에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흠과 점과 티가 많고 죄가 많은 인생들이다. 하는 일에 덕과 지혜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격도 상당히 부족하다. 따라서 그때그때 회개하지 않으면 심령의 저수지는 오염되고 교만, 태만, 음란, 포악, 질투, 아집, 거짓 등의 악취가 코를 찌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게 된다.

비록 지극히 작은 죄일지라도 크게 느끼고 그것 때문에 애태워하며 1-2시간씩 회개한다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주님은 우리 모두가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고 부족한 죄인인지를 절실히 깨닫기를 원하신다. 회개란 생각으로 깨닫고 크게 뉘우치고 슬퍼하면서, 또 의지로서 결단하고, 말이나 행동으로서 돌이키는 것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범죄나 부족함이 드러날 때는 자꾸 회개하면서 성령의 맑은 물로 씻어야 한다. 먼지가 묻게 되면 자꾸 닦고, 또 닦으면서 한평생 그렇게 살다가 주님 나라에 가는 것이다. 부족한 것 하나 때문에 아파하고 고민할 줄 알아야 고쳐지게 된다. 죄를 지어도 태연한 사람은 쉽게 악습이나 부덕한 행실이 고쳐지지 않는다.

“주님! 어떡하면 좋습니까? 또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비참한 죄인입니까? 주님께서 저의 이런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는데…” 탄식하며 죄 때문에 나타나는 슬픔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좋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자기를 비우는 사람이다.

혹 회개가 시원하게 안 되었다고 생각이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일하면서라도, 어디를 가면서라도 하나님 앞에 좀 더 절실히 시원하게 회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회개를 철저히 하는 것이 익은 열매 즉 성화(聖化)의 지름길이다. 회개생활을 열심히 하면 점점 더 세밀하게 회개하게 되고 더 빠르게 성화되는 복을 받는다.


착각하는 죄인들

안타까운 것은 성도들 중에서도 대부분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고 산다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면 의인이 되기 위해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엄청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예수님의 속죄은총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혹 자신의 심령의 저수지에 영적인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악취가 나고 마귀라는 날벌레들이 들끓어도 무감각하게 사는 것은 아닌가? 쓰레기가 잔뜩 쌓인 팔당댐이 내 영적인 모습은 아닌가?

우리가 늘 말씀 가운데 회개하면서 철저히 사랑실천하고 성경 말씀대로 산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 사랑은 오래 참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자랑하지 않고, 투기하거나 성내지 않고, 모든 것을 참고, 견디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생활이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는 주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어려움은 짊어지려고 할 때 참아질 수 있는 것이고 절제, 겸손, 온유할 수 있는 것이다. 화를 내고 짜증이 나고 욕하기 쉽지만, 참고 견디는 것이 십자가 지는 삶이다.

우리 주님은 인류의 속죄주가 되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비아돌로 로사’를 걸어가셨다. 주님처럼 우리도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 있는 정결한 그릇을 만들어 가신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잘 했더라면, 어찌 ‘개독교’ 소리를 듣겠는가!


애태우는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려면 자신의 부족한 것과 죄 때문에 애태우는 마음이 꼭 필요하다. 애태우는 마음이 있어야 쓰레기를 치우고 정화되기 위해 갈망하게 된다.

분도 성자는 추운 겨울에도 앞가슴을 풀어헤치고 “오소서! 주님, 나 주를 탐하나이다. 주님을 기다리는 이 하루가 저에게는 천년과도 같습니다.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면서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였다. 주님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섬겨볼까 하는 이 마음이 중요하다. 조금이라도 더 잘 해보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잘 해도 하나님을 100%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 단 1%라도 부족하다면 그것 때문에 애태워 해야 한다. 그 부족한 것을 더 온전케 하기 위해서 언제나 간절하고, 목마르고, 굶주린 마음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비결이다. 그 자체가 기도다.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이 곧 애태우는 마음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이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