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순교의 씨앗이다

초대교회 교부이자 신학자였던 터툴리안은 교회라는 나무는 세 가지 액체를 먹고 자란다. 수고의 땀, 기도의 눈물, 순교의 피다.”라고 말했다. 교회는 언제나 순교자들의 헌신과 희생 위에 세워져 왔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땀과 눈물과 피를 아끼지 않았던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교회가 존재할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한국 교회 안에 십자가의 신학이 꽃피우길 소망 해 본다.

왜 두려워하십니까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침례교회를 맡아 시무하였던 조셉 톤 목사는 루마니아의 공산정권과 독재자들에게 경계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루마니아 정부는 국제적인 여론 때문에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추방하였다.

미국의 여러 신학교에서 설교를 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많은 신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위대한 목회자요 훌륭한 신학자였던 그는 당신의 신학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게는 단 하나의 신학밖에는 없습니다. 나의 신학은 순교의 신학입니다.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신앙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순교의 신앙입니다.”

공산권이 서서히 무너지고 동구권이 개방되던 시기에 미국 복음주의 잡지사의 한 기자가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동구권이 개방되는 것에 대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질문에 저는 두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기자가 의아한 얼굴로 아니, 공산권이 무너지고 당신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나의 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은혜로 여기고 사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핍박을 받더라도 그것 때문에 더 예수님을 바라보고 더 열심을 낸답니다. 하지만 제가 두려운 것은 동구권이 개방이 되어 나의 조국에 돌아갔을 때, 내 조국의 교회가 주님을 위한 고난을 은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만 채워질 까봐 두렵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1:29). 사도바울의 말씀처럼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믿음 위에 높은 건물이 아닌 고난의 탑을 쌓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

한 살 때 고아가 된 리차드 범브란트는 1차 세계대전 기간에 처절한 빈곤을 겪었기에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는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냈다. 유태계 루마니아인으로 태어나 한 번도 기독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고, 어린 나이에 이미 무신론자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늘 이 세상 어딘가에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 줄 마음을 지닌 존재가 있기를 바랐고,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자신에게 그분의 존재를 나타내야 할 의무가 하나님께 있다고 외쳐대곤 했다.

그즈음 루마니아의 한 산간 마을의 늙은 목수는 죽기 전에 유대인을 주님께 인도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는 루마니아의 12,000개의 마을 중 우연치 않게 그 목수가 사는 마을을 지나게 되었고, 건네준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께 무릎을 꿇었다.

이후 공산당이 정권을 거머쥐자 타협의 길을 걷지 않는 참된 교회들은 모두 지하로 숨어들어 갔다. 그는 1948229일 지하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납치되어 그 후 여러 감옥에 있었다. 그들은 잔혹하게 그의 척추와 뼈를 부러뜨렸고, 12군데나 칼자국을 냈고, 18군데의 화상 자국을 남겼다. 그와 아내가 투옥된 후 아들 미하이는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유랑아가 되었다. 미하이를 불쌍히 여겨 몰래 도와주었던 두 자매들도 잡혀가 매를 맞아 불구자가 되었다.

죄인이 아닌 죄인이 되어, 안쪽에 톱날이 선 족쇄로 채워졌다. 거꾸로 매달아 채찍으로 때리는 고문 정도는 예사였다. 그는 냉장고 문을 열기를 꺼리는데, 속옷만 입고 냉동실에 끌려갔던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다. 냉동실에 들어가 얼어 죽을 것 같으면 다시 따뜻한 방으로 옮겨졌고, 몸이 풀리면 다시 냉동실에 잡아넣는 고문을 그는 반복적으로 당했다.

후르레스끄라는 성도는 죽도록 매를 맞았다. 그리고서 붉게 달아오른 쇠갈고리와 칼로 고문을 당한 후, 굶은 쥐들을 감방에 넣어 잠을 자지 못하도록 했다. 2주일 내내 밤낮 없이 선 채로 고문 받은 이유는 동역하는 성도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가 굴복하지 않자, 그들은 14살 난 그의 아들을 데려다 그 앞에서 사정없이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아들아, 나는 이들에게 말해야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차마 볼 수가 없구나.” “아버지, 저는 주님을 파는 아버지를 원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견디십시오. 만약 이들이 나를 죽인다면 나는 예수님과 조국을 위해 죽겠습니다.”

악의에 찬 간수들은 소년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다. 감방 벽은 붉은 피로 물들었고, 소년은 주님을 찬양하며 숨을 거두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고문과 회유를 통해 밀고자가 되게 하기도 하고, 밀고자들의 밀고자가 되도록 제안하기도 하며, 심지어 동료 그리스도인이 다른 그리스도인의 고문자가 되게 하는 극악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고문을 견디어 내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주님을 증거 했다. 한 형제가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간수들이 나타나 고문실로 끌려갔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자, 그 형제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옷매무새를 바로하며 그들에게 여러분, 내가 아까 어디까지 전했습니까?”라고 물으며 다시 복음을 증거 하였다.

지하교회만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남아 있는 유력한 저항세력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는 집어넣을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없앨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철저히 성도들을 핍박했다.

어떤 때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공산주의자들이 감옥에 끌려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면 일반 죄수들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며 그들을 구타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구타당할 위험과 공산당과 한편이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그들을 저지시켰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일주일에 한 조각의 빵과 자신의 생명을 건질 수 있는 약을 이전의 핍박자들이었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채찍질하는 간수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빌립보의 간수들처럼 내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진정으로 그들이 묻게 되기를 바랐고, 또 간절히 기도했다. 실제로 고문하고 핍박하던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우리와 같은 처지에 기꺼이 처해졌다.

기독교 역사를 엄밀히 살펴보면 복음은 고난 받을 때 더 확산되었다. 우리 주님도 죽음의 고난을 통하여 구원의 창시자가 되셨다(2:10). 교회는 예수님의 순교를 시작으로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피로 연결된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다.

교회들이 순교자의 정신으로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고 거룩한 희생의 피로 잃어버린 소금의 맛을 되찾아야 한다. 순교자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이여, 어서 속히 오라.

이하늘